▲ 황기돈 한국고용정보원 선임연구위원

2016년 세계경제포럼(WEF) 이후 4차 산업혁명은 갑자기 미래의 먹거리, 국제경쟁력 유지·강화의 유일한 기반으로 평가되고 있다. 신기술의 경제적 잠재력 실현이라는 기술·경제논리에 모든 사회·정치 주체가 복종해야 한다는 규범적 당위성이 몰아치고 있다.

그런데 경제적 합리성이라는 규범이 강해질수록 노동의 관점에서 대안 마련 요구도 커지고 있다. 기술·경제물신주의가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하는 데 채 2년이 걸리지 않은 것이다.

국내외 다양한 전망 결과에 따르면 경제와 노동세계의 기술적 재조직화는 생산요소, 직업·직무, 고용형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게 분명하다. 기술의 노동력 대체로 대량실업이 발생할 가능성보다 단순반복·정형화된 직무와 중간수준 숙련의 감축이라는 직무·숙련구조 변화 가능성이 더 크다. 플랫폼 경제 활성화로 크라우드(crowd) 노동과 플랫폼 노동, 기그(gig) 노동이 확산할 전망이다. 중간 숙련 노동자 감축과 프리랜서 등 열악한 일자리 확산은 이미 위험 수위에 도달한 고용·소득 불평등 심화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노동의 질 악화가 경제적 선도자(first mover)로 도약하는 데 필수적으로 동반되는 현상 혹은 그 전제조건이라면 기술·경제논리와는 다른 대안 마련은 지극히 당연한 사회적 과제다.

4차산업혁명위, 경제논리에 가려진 노동 다뤄야

대안 찾기는 두 가지 원칙을 따라야 한다. 첫째, 신기술의 노동세계 투입에 따른 기회와 위험은 사회경제적 약자 집단에 유리하게 나누어져야 한다. 둘째, 경제와 노동세계의 디지털화를 기술적·경제적 논리에 일임하기보다 사회·정치적으로 형성해 나가야 한다. 이 원칙의 함의는 4차 산업혁명이 제공하는 다양한 기회와 잠재력, 그리고 위험을 국민과 노동자 삶의 질 향상과 경제의 지속가능성 확보라는 원칙에 따라 사회정치적 주체들이 함께 기획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원칙을 구체화한 경제정책과 노동정책 방향은 다음과 같이 예시할 수 있다.

노동 중심 4차 산업혁명을 기획·실행한다는 것은 경제정책과 노동·사회정책의 우선순위를 바꾼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한국의 산업화 초기 과정에 형성돼 유지되고 있는 경제 우선주의의 심각한 결과는 두루 아는 바다. 포용적 성장정책은 노동배제적인 성장정책의 한계를 극복하자는 것에서 출발한다. 여기에는 국민경제자문회의나 4차산업혁명위원회에 노동의 관점을 적극 반영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도움이 될 터다. 기술논리와 경제논리에 가려져 있는 노동의 관점이 사회정치적 논의와 의사결정 과정에서 핵심적인 화두로 다뤄질 필요성이 있어서다.

거시경제 차원에서는 민간기업 중 누가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해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중요하다. 스마트공장을 비롯한 디지털 혁명 시대에는 대량생산이나 대량소비보다 개인 맞춤형 생산과 소비가 대세를 이뤄 규모의 경제가 가지는 의미가 점차 약해진다. 그런데 대안으로 언급되는 스타트업은 경제 활성화에는 필요하지만 특성상 부침이 심해서 좋은 일자리의 지속적인 창출과 중산층 확대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중소·중견기업을 주도세력으로 키워야 하는 이유다.

대기업에 비해 신기술 투자여력이 부족한 중소·중견기업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정부의 강력한 지원이 필요하다.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기술이 창업·신산업·고부가가치 서비스업 창출로 이어져 좋은 일자리 창출 지속가능성과 거시경제 탄력성을 복원하도록 재정·세제·금융·조달·인허가를 포함하는 모든 종류의 정책수단을 합목적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이로써 4차 산업혁명은 한국 경제의 동력을 되살리는 주축을 재벌·대기업에서 혁신적 중소·중견기업으로 이동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동시에 경제·노동세계 디지털화 영향이라는 미래 문제를 다루면서도 고용·소득의 기업규모별 불평등 같은 현안도 잊지 않게 될 것이다.

새로운 고용형태 대비한 '조율된 디지털화' 필요

노동·사회법과 관련 보호제도의 포괄범위를 벗어나는 새로운 내용·형식의 고용형태가 활성화해 기존 불평등이 수용 임계점으로 향하는 것에 대한 대안이 필요하다. 기그·플랫폼 노동자의 자율적 결정권과 보호방안 마련이 이에 해당한다. 노동시장 포용성을 정책적으로 강화하는 것은 포용적 성장전략의 일환이며 4차 산업혁명의 부정적인 영향을 통제하는 전략이기도 하다.

아울러 근로자성 등 노사관계의 기본을 법과 제도적 관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사회보장제도 운영원리를 임금노동 중심에서 벗어나 노동의 여부나 형태와 무관하게 모든 취업자·실업자가 가입해 보호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개편하는 것도 중요한 중장기 과제에 속한다.

기업은 신기술 도입과 관련 작업조직 재편 과정에서 노동조합 목소리(voice)를 강화하고 노동자 참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단체협약과 관련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노동시간과 공간의 경계 붕괴로 인한 공동경험 부족에 따른 공동대응력 약화는 이해대변시스템 재정비의 근거가 된다. 이는 다시금 4차 산업혁명이 노동세계에 미칠 막대한 변화를 노동에 불리하지 않도록 노사가 함께 관리하는 토대가 될 것이다. 기술·조직이 요구하는 숙련에 적합한 직업능력을 갖추기 위해 직업훈련 내용과 방식을 고급화하는 동시에 직업훈련 기회를 노동자가 각자 생애단계별 수요에 따라 활용할 권리로 인정하는 법·제도가 필요하다.

신기술이 제공하는 생산성 향상의 기술적 가능성을 노동자에게 유리하게 배분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시간단축은 물론 다양한 노동시간 체계 중에서 노동자가 유리한 유형(예를 들어 주 4일 근무제)을 선택할 수 있는 자기결정권 확보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와 함께 로봇, 특히 코봇(협업 로봇) 투입으로 노동자 건강과 산업안전을 확보하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작업의 편의성과 안전성 확보는 여성·고령자·장애인 고용기회를 높이는 기술적 근거가 된다. 저출산·고령화 노동력 감소 전망에 대한 효과적이고 구체적인 대비책에 속한다.

앞의 경제 및 노동·사회정책, 기업 차원의 정책 제언은 기술혁신이 제공하는 경제적 효율성과 사회경제적 발전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판단하고, 노동정책과 복지·교육·조세·기술 및 산업정책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정책 조율체계를 구축해서 경제적 성과를 공정하게 공유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제언의 구상과 실행은 정부가 단독으로 수행하기엔 벅찬 과제다. 이른바 ‘조율된 디지털화’가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을 사회정치적으로 조율해야 한다는 것은 그 기획 과정에서부터 정부와 과학자·기업의 전문성에 모든 것을 일임하기보다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집단지성을 동시에 수렴해야 한다는 뜻이다. 4차 산업혁명 위험에 가장 광범위하게 노출된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대안을 제시해서 관철할 수 있는 제도적·정치적 기반을 마련하자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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