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양서비스노동자들이 15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처우개선과 사회서비스공단 설립을 촉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비상조치가 발령될 정도의 미세먼지로 뒤덮인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공원은 요양보호사들의 함성으로 가득했다. 노동자들은 “요양보호사 처우를 개선하고 사회서비스공단을 설립하라”고 외쳤다. 연차휴가를 내거나 밤샘근무를 마치고 전국에서 올라온 전국 요양서비스 노동자 500여명이 결의대회를 열었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돌봄지부·재가요양지부와 공공연대노조·경남일반노조·고양파주노조 등 14개 요양 노조·단체는 단체별로 보라색·빨간색·분홍색·노란색 조끼를 입고 도로에 앉았다. 날씨가 다소 풀렸다지만 아스팔트 바닥은 냉기가 가득하다. 미세먼지 탓에 마스크를 착용한 노동자들이 많았다. 김태인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돌봄지부장은 “전국 요양서비스 노동자들이 한자리에 이렇게 많이 모인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처우개선비 삭감? “네가 이 돈으로 살아 봐”

“줬던 돈 도로 뺏기는 것이 제일 치사한 것 아니겠습니까?”

이날 노동자들의 관심사는 처우개선비 삭감에 모아졌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2일 ‘장기요양급여 제공기준 및 급여비용 산정방법 등에 관한 고시’ 개정안을 시행했다. 요양보호사 처우개선비를 노인요양보험 수가에 합쳐 요양기관에 일괄 지급하는 내용이 담겼다. 노동자들은 “고시가 처우개선비 삭감 명분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요양보호사 처우개선을 권고하면서 보건복지부는 2013년부터 요양보호사에게 사실상 임금보전 수당인 처우개선비를 지급했다. 처우개선비는 시간당 625원, 월 최대 10만원이다.

한지희 요양서비스노조 평택지부장은 “우리는 어르신을 돌본다는 책임감으로 아파도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하고 정말 미련스럽게 일하고 있다”며 “받는 월급이라곤 150만원밖에 안 되는데 시간당 625원 하는 쥐꼬리만 한 돈마저 줬다 뺐는다니 정말 치사하다”고 얼굴을 찌푸렸다. 노동자들이 “말 잘했다”고 호응했다.

한지희 지부장은 “면담에서 요양보호사에게 주는 시간당 625원 조항을 다시 넣어 달라고 했더니 보건복지부는 ‘요양보호시설 원장 반발이 너무 커서 안 된다’고 답했다”며 “요양보호사가 원장보다 훨씬 더 많다. 원장들 반발로 처우개선비를 삭감했다면 우리도 이제 더 큰 규모로 1월부터 줄기차게 싸워서 되찾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회서비스공단 설립해 요양보호사 직접고용하라”

노동자들은 사회서비스공단 설립을 처우개선 해법으로 제시했다. 사회서비스공단 설립은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때 내건 공약이다. 공단을 세워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보육·요양을 비롯한 사회서비스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채용해 처우와 서비스 질을 높이자는 취지다. 하지만 공단이라는 명칭을 두고 민간기관의 반발이 이어졌다. 보건복지부는 공단 대신 ‘사회서비스진흥원’ 설립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지희 지부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하면서 돌봄노동자 40%를 직접고용하겠다고 해서 일말의 희망을 가졌는데 보건복지부가 공약을 뒤집었다”며 “사회서비스진흥원이라는 이름으로 정부가 또 다른 형태의 위탁을 하겠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 돈으로 살아 봐. 네가 한번 살아 봐. 어떻게든 산다고 함부로 말하지 마. 그 누구의 인생도 최저인생은 없어.” 노래패 '선언'의 노래에 500여 노동자들의 어깨가 들썩였다. 피켓은 좌우로 춤을 췄다.

“충남지역 요양시설에서 전날 오후 6시부터 아침 9시까지(밤근무) 일하고 한숨도 못 자고 일하다 집회에 참석했다”는 한 노동자는 “돌아가면 또 오후 6시부터 밤근무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 달 급여로 세금 떼고 149만원 정도를 받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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