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지인을 만나 현장 이야기를 들었다. 지인은 20대 중반 두 아이를 둔 50대 중반 노동자다. 1980년대 기계공고를 졸업하자마자 지금 회사에 취업해 올해까지 34년째 근무 중이다.

지인이 다니는 회사는 기계장치를 생산하는 중견기업이다. 외환위기 이전에는 대기업 계열사였는데 분사되는 바람에 규모가 중견기업 수준으로 작아졌다.

회사는 조선 선박 핵심부품을 생산하는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경영위기 풍랑을 맞기도 했으나 34년 동안 큰 탈 없이 회사에 다닐 수 있었다. 덕분에 두 아이 대학 학자금을 지원받았고, 작지만 아파트도 한 채 소유하고 있다. 이 정도면 아이들 교육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주거비 걱정도 없을 법도 하니 50대 남성으로서 자기 삶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최근 3개월 동안 한 달 평균 연장노동을 120시간 넘게 했단다. 깜짝 놀라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했더니 한 달에 한 번 쉬었다고 한다. 평일에 하루 2시간씩 잔업을 하고 토요일·일요일 쉬지 않고 특근을 했다. 한 달 평균 근무일을 22일로 봤을 때 하루 2시간이면 44시간 연장근무를 한 것이다. 8번 특근을 했는데 특근할 때도 2시간 연장노동을 했단다. 한 번 특근할 때마다 10시간을 일했으니 한 달에 80시간 특근을 한 것이다. 평일 연장노동과 합치니 얼추 한 달에 120시간 넘게 연장노동을 한 셈이다. 제도상 주당 최대 노동시간이 68시간인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지인은 이를 초과해 주당 70시간을 일했다.

말로만 듣던 '초초장시간 노동자'를 눈앞에서 직접 만나다니 신기했고 한편으로 어이가 없었다. 중견기업에 다니는 노동자가 왜 이렇게 살고 있을까. 왜 그렇게 일했는지 물었다.

벌 수 있을 때 벌어 놓자는 생각이 컸다고 했다. 현재 회사는 매각을 진행 중이다. 불안한 지배구조가 노동자들의 고용심리를 위축시키고 있다. 매각으로 회사 분위기는 뒤숭숭하지만, 방위산업체라는 특수성 때문에 일감은 늘 많다고 했다. 그러니 벌 수 있을 때 벌어 놓자는 생각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여기까지는 특별하지 않은 흔한 이야기다.

그런데 지인을 비롯한 몇 명의 노동자들은 노동시간단축 이후를 예상한 전략적 사고를 하고 있었다. 이들의 전략은 퇴직금 중간정산이었다. 문재인 정부에서 노동시간이 주당 52시간으로 줄면 연장수당으로 임금을 올릴 기회가 사라진다고 예상했다. 기회가 될 때 연장수당을 최대로 올리면 평균임금이 올라 퇴직금도 더 많을 것이라는 계산을 하고 있었다. 노동자 스스로 제도 범위 내에서 어떻게 임금 극대화 전략을 선택하는지 보여주는 전형적인 이야기로 평가할 수 있다.

휴일도 없는 연장노동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노동과정이 자리 잡고 있었다. 지인은 연장노동을 하기 위해 노동자들이 작업속도와 양을 스스로 조정한다는 말을 전했다. 이 말은 생산성을 통해 노동시간을 단축할 여지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인의 말을 듣고 생각한 것은 두 가지다. 첫째, 노동시간을 시장 기능에 맡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최장 노동시간 불명예를 기록하는 이유는 노동시간을 느슨하게 규제했기 때문이다. 지인 사례에서도 드러났듯이 제도 효과가 현장에서 강력하게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둘째, 임금을 보전하지 않으면 노동시간단축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기본급이 적은데 연장수당마저 감소하는 방식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것은 노동자 삶의 질을 오히려 저하시킨다. 문제를 푸는 열쇠는 생산성일 수밖에 없다. 고전적 방식이지만 이 길이 정도로 보인다. 지금 중요한 것은 생산성으로 노동시간을 줄여 나갈 집단지성을 모아 내는 일이다.

워크인연구소 연구실장 (imksgo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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