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애림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정부가 국제노동기구(ILO) 결사의 자유 협약을 비롯한 핵심협약을 비준하겠다는 의사를 국제사회에 공식적으로 밝히기로 했다고 한다. 지난 11월 열린 유엔의 국가별 정례인권검토(UPR) 심의에서 “ILO 87호·98호 협약을 비롯한 핵심협약을 비준하라”는 각국 대표단의 의견에 대해 정부가 ‘검토 후 수용 의사’를 밝히기로 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부터 ILO 핵심협약 비준을 국정과제에 포함시켰고, 지난해 9월 ILO 사무총장 방한 때도 이를 재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존중 사회’와 ‘ILO 핵심협약 비준’을 내건 문재인 정부를 보면서 노동·사회단체 내에서도 기대감이 생겨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최초의 특별사면에서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배제되고 양심수 석방과 부당한 수배 해제, 노동시간 관련법 개악 반대를 내걸고 단식농성을 벌인 이영주 전 민주노총 사무총장을 현행범으로 체포하고 구속하는 사태를 보면서, 문재인 정부가 말하는 ‘노동존중’과 ‘기본권 보장’이 과연 무엇인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한상균·이영주를 석방하라는 것은 수구언론이 공격하고 있는 것처럼 문재인 정부에 ‘촛불청구서’를 내미는 것이 아니다. 헌법에 선언된 노동의 권리, 부당하게 해고되거나 차별받지 않고 노조할 권리를 초법적으로 박탈하려 했던 정권에 맞서 투쟁한 노동조합 대표자를 부당하게 감금하고 있는 불의한 상태를 바로잡으라고 요구한 것이다.

지난해 4월 유엔 자의적 구금에 관한 실무그룹은 한상균 위원장의 징역살이는 세계인권선언 및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에 천명된 사상·표현·집회·결사의 자유의 행사를 이유로 한 ‘자의적 구금’에 해당한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는 한상균 전 위원장을 비롯한 노조간부들에 대한 구속과 징역살이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등 현행법을 적용한 ‘적법’ 조치였다고 답변했지만, 이는 법적 절차를 활용해 인권의 행사를 탄압하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지난해 11월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2015년 민중총궐기를 조직하고 집회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구속된 모든 노조간부를 석방하기 위해 정부가 가진 권한 범위 내의 모든 조치를 지체 없이 취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그동안 ILO는 한국에서 일어난 결사의 자유 침해 사건들을 다루면서 “노조활동가들의 구속은 정상적인 노조활동 발전에 불리한 위협적이고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할 것이다. 이러한 위협 효과는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을 최근에 행사하기 시작한 불안정하고 취약한 노동자들에게 훨씬 강력할 수 있다”고 여러 차례 지적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 말에 따르면 한상균 전 위원장을 계속 감옥에 가둬 두는 이유가 사면대상자에 ‘노동사범’을 포함시키는 것은 “사회통합 촉진보다 분열 촉진이 강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동안 수구언론과 기득권층이 민주노총에 보인 적대적 태도를 생각해 보면 결사의 자유를 행사한 노조 지도자를 석방했을 때 보수세력에게서 당할 공세를 문재인 정부가 매우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우리 사회에서 노동기본권이 처한 상태를 방증하는 지점이다. 국민이 일터에 일상화된 착취와 모욕에 맞서는 순간 해고당하고, 노동조합으로 뭉쳐 싸우는 것이 곧 해고·구속·손해배상 청구라는 가시밭길에 내던져지는 길이라는 사실을 보고, 듣고, 경험하면서 ‘노동존중’을 위해 나서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 노조 조직률이 극히 낮은 이유는 반세기 이상 쌓인 이러한 적대와 공포에 기인한 바가 가장 크다.

노동자에 대한 적대와 공포에 맞서 앞장섰던 한상균·이영주를 감옥에 가둬 두고서 결사의 자유 협약 비준을 공언하는 것은, 종이에 서명하는 것으로 인권의 실제적 보장을 대신하겠다는 ‘외교적 놀음’에 다름 아니다. 감옥에 갇혀 있는 결사의 자유를 석방하라.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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