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촛불혁명으로 정권이 바뀌었다. 사람들은 광장의 혁명이 정부기관으로, 직장으로, 공동체로 이어지길 기대했다. 성과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정부는 최저임금위원회를 통해 2001년 이후 최대 폭(16.4%)으로 오른 7천530원을 올해 최저임금으로 결정했다. 공공부문에서부터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방침을 분명히 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무력화할 산입범위 확대 논의가 정부·정치권 유력인사의 호위 속에서 본게임을 앞둔 형국이다. 현장에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직종·방식·규모를 두고 하루하루 피 말리는 줄다리가 펼쳐진다.

지난해 연말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직장갑질 논란과 근로기준법 개정 논의는 현재 진행형이다. 최근 정부가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을 특별사면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됐다. 김명환(53·사진)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를 두고 “혁명을 일으켰던 촛불이 일터(노동) 문 앞에 멈춰 있다”고 표현했다.

그는 지난해 연말 당선 직후 신년사에서 “촛불혁명에 이어 노동혁명을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에게 혁명이 무엇인지 묻자 “우리 사회가 변하고 있다는 것을 소름 끼치는 느낌으로 경험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노동혁명은 우리 사회를 운영하는 주체가 대기업 임원과 고위관료, 지식인이라는 그동안의 인식을 180도 전환해 일하는 사람을 주체로 여기는 것”이라며 “조짐이 보인다”고 말했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4일 오후 서울 정동 민주노총 14층 위원장실에서 9기 임원선거에서 당선해 임기를 막 시작한 김 위원장을 만났다.

"자만하지 않되 자신감 있게 하겠다"

- 높은 지지율로 당선했다. 소감이 어떤가.

"끝까지 투표에 참여한 조합원들에게 감사드린다. 투표에 참가하지 못한 분들이 많다. 1차 투표에서 47% 지지율로 과반 고비를 못 넘었다. 4개 후보조가 출마한 상황에서 대단한 성과라는 의견도 있었다. 함께 선전한 후보들이 있었기에 결선에 대한 남다른 준비와 각오를 다질 수 있었다. 유효투표수를 기준으로 하면 결선투표에서 70%가량 지지를 받았다. 단순히 위원장 후보 개인에 대한 지지가 아니라고 본다. 내가 민주노총 중앙이나 민주노조운동 진영에서 얼굴과 이름을 오래 알린 사람은 아니지 않나. 철도노조에서 위원장을 했고, 2013년 철도 민영화 저지싸움 당시 짧은 기간 알려진 것이 전부였다. 선거 초반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젊은 조합원들을 만나 술을 몇 잔 하면서 사람을 모이게 하는 코드는 신뢰라고 느꼈다. 선거 캐치프레이즈인 ‘믿는다, 민주노총’이 여기에서 나왔다. 나를 알린 기간은 아주 짧다. 도리어 동반출마한 김경자(수석부위원장)-백석근(사무총장) 후보가 조합원들에게 말씀드렸던 내용에 대한 공감대와 지지가 모여 선거 결과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싶다. 자만심을 갖지 않되 보다 자신감 있게 사업들을 통합적으로 꾸려 나가라는 뜻으로 선거 결과를 받아들인다. 다시 한 번 조합원 동지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드린다."

- 선거 과정에서 낮은 투표율과 원활하지 못한 개표 과정이 문제로 지적됐다. 어떤 방식으로 개선해야 하나.

"유권자 80만명이 전국에 산재해 있다. 이를 100명이 채 안 되는 인원이 관리한다. 지역본부 임원선거와 산별노조 임원선거도 겹쳤다. 10명 중 4명 정도가 끝까지 투표에 참여했는데, 하고 싶어도 못하는 상황이 잦다. 마트 캐셔 조합원들은 손님들이 줄을 서 있으면 투표하기 어렵다. 항공기 조종사 조합원들은 3분의 1이 외국에, 3분의 1은 비행기 안에 있다. 나머지 3분의 1 정도만 투표가 가능하다. 그중에서 투표 참여자가 나온다. 우리 사회 다양한 노동자들이 투표에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직선제 취지다. 그런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제도나 시스템이 완비되지 못한 상태에서 선거가 치러졌다.

조직적으로 진행한 사업이기 때문에 평가를 해야 한다. 현장 조합원과 간부, 선거 실무진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겠다. 이달 중순 선거 실무담당자 1차 평가회의가 열린다. 그 결과를 산별·지역 단위와 공유하고 다시 올라온 의견을 수렴하겠다. 백서 제작과 함께 선거 제도·규정을 보완해 보다 준비된 선거를 치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2월 중 노사정위 복귀? 행정 편의주의"

- 문성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장이 민주노총의 사회적 대화 참여시기를 2월로 언급한 적이 있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할 생각인가.

"사회적 대화는 진일보한 사회로 가기 위한 의제를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대화로 풀어 보자는 것이다. 노조에 있어 중요한 것은 맞지만 모든 것은 아니다. 그런 사회적 대화는 노사정이 한 번만 하고 끝낼 성질의 것은 아니다. 틀을 짜고, 의제를 선정하고, 대화를 통해 상호 이해를 넓히는 과정이 필요하다. 문성현 노사정위원장의 언급은 예단이다. 몇몇 사람이 만나 결정한다고 이뤄지는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민주노총은 노사정위의 그러한 사고방식을 지적하고 비판했다. 지난 상황·역사·과정을 아는 문 위원장이 그런 말씀을 했다는 것은 뭐랄까, 지나친 행정 편의주의·성과주의·전시행정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문재인 정부와) 최대한 같이 가려고 하지만 (조직 내부에) 이견이 있다. 이견을 좁히겠다. 이를 위해 소통하겠다. 그렇다고 마냥 더디게 갈 수는 없다. 각종 노정협의를 활성화하겠다. 산별 단위에서 중요한 정책과 요구를 들고, 정부와 사용자 사이에서 대화 틀을 시급히 조직하겠다. 법과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국회에 '정부-국회-노동자-사용자'가 머리를 맞대는 과정도 마련하겠다. 이처럼 곳곳에서 벌어지는 대화가 사회적 대화 분위기를 조성할 것으로 본다.

중층적인 대화와 협의가 이뤄지는 과정이 드러나면 사회적 대화가 어떠한 ‘주의’가 아니라 현장 필요를 충족하고 노조 조직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민주노총 내부에 확산될 것이다. 그런 대화의 기운을 확산시키는 공간이 먼저 열린다면 사회적 대화 재시작이 무르익을 것으로 판단한다. 지금 조건에서 물꼬를 트는 방법은 간단하다. 민주노총 위원장과 대통령이 만나 ‘한번 해 봅시다’ ‘분위기 한번 만들어 봅시다’ 하면서 의견을 모으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 2일 청와대 신년인사회에 가지 않았다. 어떤 이유에선가.

"1일자로 취임했다. 청와대 초청에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가서 인사하고 얼굴만 맞대고 오는 것은 아니지 않나. 노정협의나 대화에 관한 의견을 전달해야 하는데, 정리할 시간이 없었다. 같은 시각 산별·연맹들이 준비한 합동시무식도 있었다. 일정을 맞추기 어려웠다. 사전에 조율하고 협의하는 과정을 거쳐 기회가 있다면 초청에 적극 임할 생각이다. 당장 일정 속에서 ‘민주노총이 어떻게 할 것이냐’를 정하기보다는 문재인 정부와의 대화 의지를 갖고 당당한 대화를 위해 민주노총 내부 이견을 모으고 조율할 것이다. 대단히 피곤하고 힘든 일이 될 수 있지만 어느 한 쪽도 포기할 수 없다."
 

- ‘200만 민주노총 시대’를 약속했다. 구체적인 전략은. 

<정기훈 기자>

"19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민주노조운동이 최고조로 활발했을 때 노조 조직률이 20%였다. 국민연금과 의료 민영화 등 사회연대운동을 주도했던 조직이 민주노총이었다. ‘100만 딱지’는 이제 보이는 목표다. 과거와 같이 노동자 대표성을 띠고 비전을 갖고 활동하기 위해 예상치의 두 배를 조직목표로 삼겠다는 뜻이다. 구체적인 계획은 이렇다. 민주노총 중앙에 미조직비정규전략사업실이 있다. 이 조직을 조직·정책·교육선전을 포괄하는 완결 단위로 개편할 것이다. 해당 조직이 기획단이 될지, 추진위원회가 될지는 고민 중이다. 어쨌든 총연맹 위원장이 장을 맡겠다. 인력과 예산의 30% 이상을 배정할 것이다. 조직개편이 이뤄지면 산별·지역본부와 함께 공공부문·사회서비스·민간서비스·특수고용직을 1차 대상으로 삼고 본격적인 조직화 사업에 나설 생각이다. 공공 25만명, 복지·보육·간병 10만명, 전체 특수고용직의 20%인 20만명, 민간서비스는 영역이 워낙 넓으니 10%를 조직하면 30만명이 나온다. 이를 더하면 160만명을 넘긴다. 결코 허황된 목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조직화 과정이 민주노총 앞날을 바꾼다는 것이다. 조직화 사업이 성공하면 민주노총은 정규직·대공장 중심에서 다수의 비정규직 중심으로 재편된다. 지도부가 바뀌고 예산 집행과 사업 내용이 달라진다. 가족 구성원이 달라지는 셈이다. 지금처럼 멀리 있는 대공장·정규직·공공부문 노동자를 놓고 나머지 일하는 사람들이 갈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우리 중 한 사람이며, 다른 가족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진정성 있게 보여 줄 때 민주노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뀔 것이다."

"한상균 석방은 정의 혹은 불의를 선택하는 일"

- 정부가 수감 중인 한상균 전 위원장을 특별사면 대상에서 제외했다.

"2015년 4월 총파업으로 여러 사람들에게 법적인 제재가 날아들었다. 나도 그중 한 명이다. 도로교통 방해죄로 벌금 50만원을 선고받았다. 한상균 전 위원장의 죄명과 같다. 그런데 누구는 3년 실형을 받고 2년을 감옥에서 지내고 있다. 그사이 노동자들의 피와 땀인 회삿돈 1천200억원을 횡령한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집행유예를 받고 거리를 활보한다.

한상균 전 위원장 석방은 인권을 넘어 정의를 선택할지 말지의 문제다. 한상균 전 위원장이 ‘박근혜는 하야하라’는 주장을 펼치고, 딱 1년 후 일어난 촛불혁명으로 문재인 정부가 탄생했다. 그렇다고 한다면 문재인 정부는 한 전 위원장에게 씌어진 3년 감옥살이가 과연 정의냐고 되물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자꾸 눈에 밟힌다’고 했다. 한 전 위원장 석방 문제는 법의 정의와 형평성, 인권, 노동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관련돼 있는 사안이다. 정부 결정만을 기다리지 않겠다. 산별대표자·지역본부장들과 함께 특별한 대책을 마련해 양심세력과 함께 석방운동에 나서겠다."

-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대한 의견은.

"민주노총 정치세력화와 진보정치 통합은 난이도가 높은 고차방정식이다. 그럴 수 있다고 본다. 지난 시기 역사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선거라는 일정이 잡혔기 때문에 대응방침을 정할 필요가 있다. 방침이 어떠한 수위에서 결정된다 할지라도 논의에 신속함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서두르지는 않겠다. 급하다고 바늘 허리에 실 매어 쓸 수는 없지 않나. 과정을 무시하거나 소통을 생략하면 더 큰 문제가 생긴다. 다만 민주노총의 전략적 과제로서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진보정당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집권여당과 자유한국당 같은 적폐로는 한국 사회 대개혁을 완성할 수 없다. 진보정치가 필요하다. 현재 분할돼 있다. 지상과제는 통합이다. 통합으로 가는 과정에서 무리가 발생하거나 한 단위가 논의를 주도해 나가는 방식에 반대한다. 이견을 모아 내는 통합적 리더십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필요하다고 본다. 민주노총과 진보정당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과제다. 모두가 수평적 관계에서 함께 논의하자. 정의당·민중당·노동당·변혁당·녹색당 동지들이 함께 의견을 내고 고민을 모아야 할 때다. 그 안에서 정책을 만들어 내고 개헌을 포함해 진보정치를 위한 법·제도 개정을 논의해야 한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저수지 같은 역할을 민주노총이 하겠다. 연초에 지역본부장들과 만나 지방선거와 관련한 현안을 확인하고 대응방침을 만들겠다."

"향후 10년 조망하는 민주노총 토대 쌓고 싶다"

- 임기 동안 이루고 싶은 일이 있다면.

"조직을 양적으로 늘리고 질적으로도 개선하고 싶다. 노동자의 1년 농사를 임금·단체협상 투쟁이라고 한다면, 10년 농사를 지어 보고 싶다. 9기 집행부 3년이 향후 민주노총 10년을 조망하는 토대가 되길 바란다. 가장 필요한 일은 법과 제도를 개정하는 것이다. 각종 노동악법을 철폐해야 한다. 노동법이 일하는 노동자를 위해 작동하도록 내용을 전면 개정해야 한다. 저항의 물결을 만들고 압축시켜 노동악법을 철폐하고, 노동법 전면 개정을 위해 총력투쟁에 나설 것이다. 비정규직 없는 일터를 만드는 것도 임기 간 이루고 싶은 과제다."

- 노동혁명을 달성하겠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뜻하는 바가 뭔가.

"촛불혁명이 완성되는 것을 보며 사람들은 기대했다. 정권이 바뀌고 획기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촛불을 들었던 시민은 회사에 나가면 직장갑질에 시달린다. 노조활동을 하려고 하면 갖가지 탄압에 시달린다. 광장을 수놓던 촛불이 일터 문 앞에 멈춰 있다. 일터 혁명이 필요한 시기다. 혁명을 불온시하는 시대는 아니다. 그렇다고 혁명이 가볍게 다뤄져서도 안 된다. 우리 사회가 변하고 있다는 느낌을 소름 끼치게 경험하는 것이 혁명이어야 한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 자본이 독점했던 온갖 특혜와 이윤을 바로잡는 것, 나아가 그들에게 손해를 가하는 것이 혁명이다. 지금의 법과 제도를 혁파해야 한다. 그대로 두면 혁명이 아니다. 우리 사회를 운영하는 주체가 대기업 임원과 고위관료, 지식인이라는 그동안의 인식을 180도 전환하는 것도 혁명이다. 일하는 사람을 사회 주체로 여기고 일터가 그들에 의해 변하는 것도 혁명이다. 노동자 경영참여 제도가 모든 현장에 도입돼야 하는 이유다. 노동자 권리인 단결권을 제약하는 모든 행정해석을 폐기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기업 이윤은 줄이되 임금과 고용률은 높여야 한다. 노동시간을 대폭 줄여야 한다. 이것이 혁명이다. 황당한 요구가 아니라 혁명적 요구다. 촛불혁명을 거쳤다. 이제는 일터에서 노동혁명을 완수할 때다. 혁명적 요구를 제시하고 실현하는 것이 촛불정부하에서 민주노총이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