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호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 실장

인간은 스스로 피곤을 만들어 가는 존재임을 새해가 시작된 이 즈음마다 느낍니다. 어제 저문 해와 오늘 뜬 해가 다르지 않은 것처럼 그저 달력 한 장이 넘어갔을 뿐임에도 우리는 새해를 맞아 수많은 목표를 세우고 호기로운 다짐을 합니다.

헬스장은 배 나온 아저씨들로 붐비고, 영어학원은 ‘올해엔 꼭’이라는 결심들이 넘쳐납니다. 담배는 또 어떤가요. 만약 담배를 의인화한 소설이 나온다면 “인간들은 새해가 되면 날 멀리하겠다고 한다. 한 친구는 세상 구경도 못하고 고스란히 버려졌다. 하지만 난 알고 있다. 3일 안에 나를 찾게 되리라는 것을”이라는 문장이 들어가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가다듬은 마음이 사흘을 넘기지 못했을 때에는 ‘진정한 새해는 설날부터지’라며 위안을 삼지만 우리는 알고 있죠. 그것은 포기의 연장이라는 것을.

도처에서 나오는 신년사를 보면 정신이 아득해집니다. 우리는 시대로부터 ‘도전’을 받고 있기에 ‘성장’을 위해서는 ‘극복’하고 이겨 내야 한다, 라는 내용들로 채워진 신년사는 어깨를 무겁게 만듭니다.

아, 오해는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새해의 수많은 다짐과 목표들에 재를 뿌리거나 초를 치자고 하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얼마 전 <슬기로운 감빵생활>이라는 TV드라마를 봤습니다. 새벽부터 일하고 잠은 5시간 자면서 공부했지만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공시생(공무원시험 준비생)에게 주인공은 말합니다.

“어떻게 지금보다 더 열심히 사냐. 어떻게 더 파이팅을 해. 최선을 다했는데 기회가 없었던 거야. 그러니까 세상을 탓해. 세상이 더 노력하고 애를 썼어야지. 세상이 더 최선을 다해야지. 네 탓은 하지 마.”

올 한 해 노동자·국민 모두가 편안해지길 바랍니다. 지난해 세상을 바꾸느라 너무 많이 노력한 국민에게, 결국 정권교체라는 목표를 달성한 국민에게 2018년은 ‘안식년’ 같은 한 해가 됐으면 합니다. 굳이 개인이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애쓰지 않더라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라가 달라지니 내 삶도 좋아지는 2018년’이 되도록 하겠다는 대통령의 말이 고루고루 펼쳐지기를 희망합니다.

장사가 잘 되길 바라는 영세 자영업자와 등록금과 취업준비를 위해 일하는 알바생의 목표가 충돌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올해 꼭 정규직이 되겠다는 비정규 노동자와 고용안정을 바라는 정규직 노동자의 바람이 갈등으로 나타나지 않기를 빌어 봅니다.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장시간 운전대를 잡아야 하는 버스노동자의 휴식이 다른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과 임금의 협상대상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따뜻한 가족 품으로 돌아가는 데 정치적인 이유와 좌우의 논리가 개입되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그래서 아직 신년계획을 세우지 않고 새해를 맞이한 당신께 말하고 싶습니다. 거창함보다는 작은 희망을, 자기계발보다는 함께 나눌 수 있는 행복을, 사흘 만에 포기하더라도 다졌던 마음만큼은 빛이 나는 그런 계획을 상상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 상상을 만드는 기한은 당장이 아니라 꽃피는 봄, 열매 맺는 여름, 수확의 가을이어도 상관없을 것 같습니다.

새해의 시작을 즐거운 상상으로 채워 나가는 것, 이것이 어제와 다른 오늘의 시작이 아닐까요. “당신은 저를 몽상가라고 말하겠죠. 언젠가 당신이 우리와 같은 꿈을 꾸길 바라요. 그렇다면 세상은 하나가 되겠죠.”(존 레논 <Imagine>)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 실장 (labor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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