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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 사고·통계·지표, 드러내야 바꿀 수 있다류현철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 류현철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2018년 새해가 밝았다. 12월31일에 뜬 해와 1월1일에 뜬 해가 다를 리 없으나 사람들은 매년 첫날이면 새로운 기대를 품고, 변화를 위한 자신과의 약속 실천의 시작점으로 삼곤 한다. 동기부여란 그런 의미가 있는 것이다. 사람들의 다짐과 계획과 마찬가지로 정책이나 제도 역시 그 시점(始點)을 매해 첫날로 잡는 경우가 많다. 달력을 기준으로 하는 행정상 편의가 목적이겠으나, 새해이기에 새로운 제도의 등장을 기대하게 된다.

노동안전보건 영역, 특히 산재보험제도에서도 최근 새로운 변화는 감지된다. 여전히 아쉬운 점은 있으나 출퇴근 산재 인정범위가 확대되고 뇌심혈관질환 산재 인정기준이 개정되고 산재보험제도 개선을 위한 다양한 조직개편이 예고됐다. 정부의 공식적인 보도자료에서 ‘근로자’ 대신 ‘노동자’라는 단어를 발견하게 되는 것 역시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늘 새로운 것만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이미 있던 것들을 온전히 드러내는 것 역시 의미가 있다. 산재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야 한다. 새해 덕담과는 다른 어둡고 참담한 이야기라도 새로워지기 위해서 변화하기 위해서 먼저 드러내야 한다.

개별 산재 사안들을 언론을 통해 드러내고 사회화하는 것도 방법이다. 지난해 노동절부터 시작해 지속적으로 발생한 타워크레인 재해는 연일 언론에서 문제를 보도하고 사회 이목을 집중시켜 정부의 ‘타워크레인 중대재해 예방대책’을 이끌어 냈다. 그러나 한편으로 보면 산업현장에서는 타워크레인뿐 아니라 천장크레인·이동식크레인 등 다양한 크레인이 존재하며 오래전부터 중대재해의 대표적 사례로 꼽혀 왔다. 2012년부터 지난해 5월까지 4천67건의 크레인 관련 재해로 194명이 사망하고 3천937명이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적으로 알려진 타워크레인 외에도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위험은 늘 존재해 왔던 것이다. 타워크레인만이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렇게 직업적 위험의 크기를 결과를 통해 추정하게 하고, 또한 예방활동 방향이나 보상범위 설정기준이 되는 산재 통계의 의미는 크다. 그러나 우리나라 산재 통계는 오래전부터 문제점이 지적돼 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4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산재율에 비해 압도적 수위를 다투는 산재사망률은 우리 사회가 아직 산재를 제대로 드러내지 않거나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개별 사안들이 알려지고 사회화되는 것 이상으로 산재 통계가 잘 다뤄지고 그 의미를 설명해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질병을 숨기는 것이 결국 정신과 신체를 망가뜨리는 것처럼 산재의 참담한 현실을 감추거나 가리는 것이 능사가 아님은 당연하다. 여러 종류의 커밍아웃이 사회 지탄을 받고 당사자 고통을 수반하는 것이 현실이지만 드러내야만 비로소 인정되거나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게 된다. 그것을 가로막는 산재 승인제도, 현행 산재요양 승인을 기준으로 한 산재통계 방식, 또 그것을 중심으로 한 기관평가 지표를 바꿔야 한다.

산업재해를 예방하는 기관과 산업재해를 당한 노동자들의 생활 유지와 적절한 치료와 정상적인 업무복귀를 담당하는 기관, 이러한 업무 전반을 관장하고 관리하는 기관들을 평가하는 기준에 현행 산재율 감소를 포함하는 것을 재고해야 한다. 민간보건관리기관 평가지표에서도 마찬가지다. 적극적인 예방을 위해서는 위험을 드러내고, 감춰진 재해들을 찾아내고, 노동자들의 질병에서 직업적 요인을 적극적으로 확인하고, 가급적 많은 노동자들을 산재보험으로 지원해야 한다.

국내 상황에서는 현행 산재요양 승인을 기준으로 하는 산재율 상승은 오히려 이들 기관 활동의 적극성을 반증하는 지표로 봐야 할 일이다. 기존 산재율(산재승인 건수) 감소를 기준으로 산재예방활동 성과를 평가하게 된다면, 더디고 힘든 과정을 거치는 산재발생 예방활동보다는 상대적으로 손쉬운 '분모 크게 만들기'나 '산재발생 신고·산재요양 신청·요양승인 줄이기'로 성과지표를 높이고 싶다는 잘못된 동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산업재해 그 자체가 아니라 산업재해‘율’을 낮추는 것이 성과가 돼서는 안 된다. 물론 이러한 지적과 관련해 국가산업안전보건지표 개발에 관한 연구(2015·2016년) 등 다양한 시도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대안적인 지표의 유의미성에도 불구하고 가장 강력하고 단순한 지표로서 업무상사고와 질병 발생수준에 대한 제대로 된 통계자료는 필수적이다. 이것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으면 대부분의 대안 지표들은 산재예방기관의 행정적 부담만 늘리게 될 수도 있다.

드러나지 않은 산재는 위험을 감춘다. 감춰진 위험은 관리할 수 없다. 관리되지 않는 위험이 또다시 산재를 일으키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산재율은 높이고 산재사망률은 낮추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제대로 된 산재통계를 바란다는 말이다.

류현철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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