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2018년 새해 벽두 간절한 바람이 있다. 노동인권 사각지대에서 일하는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들이 권익을 실제로 보장받는 것. 법조문 속에서나 그림의 떡으로 여겨지는 노동 3권을 비롯한 기본권이 일터에서 지켜지고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권리로 인정받는 것.

민주주의를 한 단계 진전시킨 촛불시민혁명의 완성은 노동혁명을 통하지 않고선 불가능하다. 불평등 양극화 사회인 남한자본주의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바로잡는 핵심과제가 노동적폐 청산이고 노조 밖 대다수 노동자들의 권익을 신장하고 제고하는 것이다. 다른 길은 없다. 하지만 마주친 현실은 막막하다.

고용노동부가 직접고용 시정을 지시한 파리바게뜨 불법파견 문제가 꼬여 가고 있다. SPC그룹과 파리바게뜨 본사가 불법파견을 인정하지 않고 꼼수로 회피하면서 사태가 악화했다. 직접고용 정규직화 당사자인 제빵기사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어 문제 해결이 빠르게 진전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후퇴하고 있다. 5천300여명 제빵기사들과 카페기사들이 자신의 정당한 권익 앞에서 되레 좌고우면하는 모양새다. 안타깝고 답답하다.

파리바게뜨 본사가 문제 핵심이다. 불법파견을 책임져야 하는데도 도덕적 해이가 심각하다. 촛불민심이 요구한 나라다운 나라, 정의로운 사회는 법과 상식이 지켜지는 공동체를 기본으로 한다. 특히 민간부문에서 슈퍼갑으로 군림하는 대기업 오너들의 행태가 바뀌어야 세상이 실제로 나아질 수 있다. 가장 많은 국민이 일하고 있는 일터에서 불법이 횡행한다면 노동자들은 실의와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다. 지금 파리바게뜨가 그렇다. 오너의 황제경영 속에 불법파견을 남용한 사실이 적발됐는데도 시정할 의지가 없다. 파리바게뜨 본사가 응당 직접고용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할 청년노동자들을 불법일자리에 부려 왔으니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하지만 역주행으로 일관한다. 불법파견 관련 어떤 공식사과도 없었다.

파리바게뜨 본사가 가맹점주협의회와 함께 합작회사로 추진하는 해피파트너즈는 불법파견 당사자인 협력업체도 버젓이 일원으로 포함하고 있어 대안이 될 수 없다. 이대로라면 불법으로 불법을 덮는 일이 벌어진다. 불법파견 당사자가 낀 해피파트너즈는 사라져야 마땅하다. 약자인 제빵기사들과 카페기사들을 압박해 해피파트너즈 근로계약을 강제하고 있는 파리바게뜨 본사와 협력업체 관리자, 일부 가맹점주들의 행태는 불법파견을 용인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불법을 시정하기는커녕 불법을 용인해 과태료를 줄이고 면죄부를 받으려고 하는 건 적반하장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한 이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난항을 겪으면서도 진전했다. 풀어야 할 숙제가 여전히 만만찮지만 상시·지속업무 정규직화라는 기본원칙은 확대했다.

관건은 민간부문이다. 재벌자본이 불법과 편법으로 나쁜 일자리를 남용한 관행이 구조화돼 있고 법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온갖 꼼수를 부려 왔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헌법과 노동법이 재벌사업장 정문 앞에만 서면 사시나무처럼 떤다고 하질 않던가. 무소불위 절대권력으로 시장에서 군림하는 나쁜 사용자들의 행태를 바로잡지 않고 우리 사회가 법과 상식이 통하는 정상사회로 바뀌길 바랄 순 없다. 파리바게뜨는 민간부문 좋은 일자리 만들기가 어떻게 가능한지 보여 주는 시금석이다. 파리바게뜨 문제가 지금처럼 진행돼 용두사미로 끝난다면 비정규직 정규직화도 심각한 위기에 빠질 것이다. 정부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파리바게뜨 본사가 제빵기사와 카페기사들을 직접고용하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이다. 노사 간 대화와 교섭으로 직접고용에 준하는 다른 합리적 대안을 찾을 순 있지만 직접고용 정규직화의 의미가 퇴색하는 방식은 안 된다. 열심히 일한 청년노동자들이 핍박받으며 책임까지 져야 하는 현실은 부당하기 짝이 없다. 다양한 이해 당사자들의 이견과 요구를 조율하고 모아 가는 과정에서 사회적 협의가 필요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전제는 파리바게뜨 본사가 불법파견에 분명한 책임을 지는 것이고, 무허가 불법파견업체에 불과한 협력업체는 철저하게 배제하고 직접고용을 중심으로 불법파견을 극복하는 합리적 대안을 노사가 대화와 교섭을 통해 찾는 것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파리바게뜨 본사는 불법을 용인하는 해피파트너즈를 없애고 노동부의 직접고용 시정지시 취지에 걸맞게 노사 교섭과 대화로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좋은 일자리가 최선의 복지고 노동인권 보장의 지름길이다. SPC그룹과 파리바게뜨 본사의 각성을 촉구한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namsin196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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