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K기업은행 무기계약 노동자 3천300여명이 이르면 2월 중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새로운 직급을 신설하거나 별도 선발절차를 거치는 과정 없이 기존 정규직 인사체계에 고스란히 편입되는 방식이다. 비정규직을 일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정공법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다른 공공기관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노사 "최대한 이른 시일에 정규직으로 일괄 전환"

노사는 2일 오전 서울 중구 을지로 본점에서 시무식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준정규직의 처우개선을 위한 노사공동 선언문'을 발표했다.

노사와 국회 정무위원회에 따르면 공동 선언문에는 무기계약직인 준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일괄 전환하도록 노력하고, 최대한 많은 인원을 최대한 이른 시일 안에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내용이 적시됐다. 기업은행 정기인사가 단행되는 이달 말 이후 전환작업이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감독원 은행경영통계에 따르면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시중은행 정규직은 1997년 11만4천명에서 이듬해 7만5천명으로 35% 급감했다. 이후 경기가 회복되는 국면에서 은행은 정규직을 회피하고 비정규직 채용을 늘렸다. 2007년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이 시행되면서 2년 이상 일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압력이 발생하자 은행은 이들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고용은 보장하되 처우는 비정규직에 묶어 두는 방식이다.

민간 금융회사뿐 아니라 금융공공기관도 무기계약직 비중이 높다. 지난해 기업은행 전체 직원 1만2천500여명 중 3천300여명이 무기계약직이다. 주로 창구텔러·사무지원·전화상담을 맡고 있다. 현재 이들이 완전한 정규직이 되려면 10년 동안 무기계약직으로 일한 뒤 전환시험·실적평가·인사평가·면접을 통과해야 한다. 내부 과정을 모두 거치면 이들은 정규직 신입사원 직급인 계장이 된다. 1년에 한 번 이뤄지는 이 과정을 통해 정규직이 되는 비율은 100명(3%) 안팎에 불과하다.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중 유례없는 실험
파견노동자 정규직화 방안도 모색


노사는 2016년 하반기부터 노사 관계자와 전문가가 참여하는 논의기구를 구성해 무기계약직의 정규직 전환 방안을 모색했다. 지난해 8월에는 전환시기·방법을 묻는 정규직 전환 관련 설문조사를 내부 직원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문제점이 드러났다. 근속기간이 긴 무기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때 급여감소와 경력초기화 문제를 어떻게 해소할지가 관건이었다. 정규직 전환자들과 승진경쟁을 해야 하는 정규직 직원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정규직 전환을 강력하게 추진한 금융노조 기업은행지부가 직원들을 설득하면서 내부 불만이 다소 누그러졌다. 무기계약직 경력을 인정하는 쪽으로 노사 의견이 모였다. 남은 과제는 기존 정규직-무기계약직 직원들이 순환업무를 할 수 없는 일부 업무 담당자들의 전환 방식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1월 중 노사 협의가 예정돼 있다. 정원이 늘어나는 것을 반대하는 기획재정부를 포함한 경제부처를 설득하는 작업은 과제로 남았다.

노사가 공동 선언문에 적시한 내용 중 가장 눈에 띄는 내용은 별도 절차 없이 무기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부분이다. 앞으로 무기계약직을 더 이상 채용하지 않겠다는 선언도 눈길을 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사례 중 유례가 없는 방식이다. 기업은행과 비슷한 형태의 금융공공기관인 KDB산업은행의 정규직 전환 논의에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기업은행은 기간제·파견용역 노동자 정규직화 논의도 속도를 올린다는 계획이다. 회사와 지부·전국시설관리노조, 전문가 등 4자로 구성된 협의기구가 방안을 마련 중이다. 사측은 자회사 설립 방식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 기업은행에서 청소·설비·시설관리 업무를 하는 기간제·파견노동자는 1천800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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