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고양이는 다르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그렇다. 고양이는 홀로 즐기는 법을 알며, 사색할 줄 아는 동물로 여긴다. 주인이 멀리 나가더라도 고양이는 까탈스럽지 않다. 반면 개는 홀로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하며,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동물이라고 한다. 주인과 늘 함께하는 것을 좋아하고, 떨어지면 우울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자신을 따르는 개를 충직과 의리의 상징으로 생각한다. 위험에 처한 주인을 구하는 개의 신화는 이런 신념을 더욱 설득력 있게 만든다. 그런데 이것은 개에 관한 ‘의인화’일 뿐이다. 사람이 아닌 무생물이나 생물의 모습을 사람처럼 표현하는 방법이다. 충직과 의리를 원하는 사람의 마음을 개의 모습에 투영한 것이다.

실제로 개는 사람이 주는 관심과 사랑만큼 반응한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사람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개에게서 타인에 관한 헌신·신뢰라는 덕목을 떠올리지만 일방적인 헌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신뢰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상호주의에 입각할 때 우러나는 태도다.

황금개 해에 되새기는 화두는 ‘상호주의에 입각한 신뢰’다. 올해 노사관계와 노정관계에서 필요한 것도 바로 이것이다. 지난해 노정관계에서 상징적인 사건은 노동계와 문재인 대통령의 두 차례 청와대 만남이다. 적어도 노동개혁을 앞세우면서 일방적·독단적 태도로 일관해 노정관계를 파탄시킨 박근혜 정부와는 대조적 모습이다. 지난해 12월21일 공공상생연대기금 관계자들을 초청한 행사에서 문 대통령은 “소득주도 성장과 사람중심 경제를 이루려면 사회적 대타협이 중요하다”며 “노사 양측이 딱 1년만 정부를 믿고 힘을 실어 달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24일 첫 노동계 청와대 초청행사에서도 문 대통령은 비슷한 얘기를 했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해 적폐청산에 힘쓴 새 정부의 지난해를 되돌아보면 문 대통령의 주장은 깊이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제로선언, 최저임금 인상 등 새 정부가 추진한 정책은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노동계는 많은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가을에서 겨울로 이어졌던 노정 만남을 통해 파탄난 노정관계가 끈끈한 신뢰관계로 돌아섰는지는 의문이다. 노정관계 차원에서 보면 새 정부의 선행조치가 미흡했다고 평가된다.

박근혜 정부의 대표적 적폐인 전국교직원노조·전국공무원노조에 붙인 ‘불법 딱지’를 떼어 냈어야 함에도 여전히 그대로인 것은 아쉽다. 철창에 갇힌 노동계 인사 석방과 사면조치를 외면한 것도 의아스럽다. 국제인권단체와 국제노동계가 노동계 인사에 관한 구속은 집회와 결사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훼손한다고 했음에도 이를 적극적으로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보여 안타깝다. 노정관계에 얽힌 적폐를 청산하지 않았는데 노동계가 새 정부를 전폭적으로 신뢰할 수 있을까.

문재인 정부는 노정관계 신뢰 형성을 위해 선행조치를 취해야 한다. 멀쩡한 노동조합에 주홍글씨를 새겨 넣어 불법화하고, 이에 항의하는 노동단체 대표들을 감옥에 가두고 고립시켰던 불행한 과거와 단절해야 한다. 그래야 “1년만 정부를 믿고 힘을 실어 달라”는 호소에 노동계가 호응할 수 있다.

올해는 노정 신뢰를 바탕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가 즐비하다. 노동시간단축과 최저임금 제도개선, 비정규직 관련법 개정 등 과제가 산적해 있다. 대부분의 제도개선 과제가 상반기에 집중된 데다, 하반기로 넘어가는 길목에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진행된다. 게다가 대한민국 헌법 개정이라는 중대차한 과제를 앞두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3%대 경제성장률을 기대하지만 청년실업 문제에서 비롯한 고용문제는 아직도 얼어붙어 있다.

촛불혁명에 이어 제도개혁으로 난국을 풀어 가야 함에도 여소야대 정국이라는 교착상태에 빠져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형국이다. 첨예한 현안으로 노사관계와 노정관계가 대립국면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때문에 무술년에는 노사정 관계로 접근해 문제를 풀어 보려는 시도가 활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립적인 노동현안이 많은 상황에서 이를 조율하는 정부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정부가 닫힌 문의 빗장을 빼내는 조치를 먼저 취했으면 한다. 박근혜 정부가 만든 노동문제 적폐를 청산하는 것 말이다. 어찌 보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최근 지도부를 선출한 민주노총뿐만 아니라 한국노총도 그러한 변화를 위한 사회적 대화에 나서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노사정이 상호주의에 입각한 신뢰의 길을 여는 데 힘쓰는 한 해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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