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석현 전교조 대구지부 조합원

2017년 9월2일 대전 KT인재개발원에서 열렸던 전교조 77차 임시대의원대회를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기간제 교사들의 정규직화를 반대한 중앙집행위원회 결정을 재확인한 자리였기 때문이다. 최소의 연대에 해당하는 지지 선언이 무참히 무너졌다. 그날 거기에서 기간제 교사 동지를 만났다. 입구에서 피켓을 들고 정규직화를 지지해 달라고 외치는 그들이 보였다. 조합원 자격이 아니라 참관 자격으로 참가하고 있는 전국기간제교사연합회 대표도 회의장 안에서 만났다. 나는 거기에서 기간제 동지들은 계약기간 동안만 조합원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박근혜 정부의 간계에 의해 법외노조가 된 지금, 우리는 무얼 바라 교원노조법(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을 지키고 있었을까.

만화 <송곳>을 보면 인간에 대한 예의는 두려움에서 나온다는 말이 나온다. 나는 주로 그 말을 교장과 싸울 때 써먹었다. 주변 동료 교사들에게 나는 “존중받고 싶다면 교장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해 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우리를 깔보며 멸시한다”고 이야기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아무리 나이가 많은 교사가 있다 하더라도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교장은 무시하는 말투로 대했다. 하지만 매일 같이 교장실에 가서 따지고 싸우는 나를 무시하는 경우는 없었다. 심지어 신규 교사 시절 숨죽이며 살 때는 반말을 일삼던 교장이 교무회의에서 한 번의 발언으로 존댓말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주변 교사들에게 항상 그 말을 하고 다녔다.

내가 이 얘기를 꺼낸 이유는 대의원대회에서 있었던 말 한마디 때문이다. “넓은 의미에서는 연대를 할 수 있고, 구호로는 외칠 수 있지만 실제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라는 말이다. 나는 이 말이 전교조 대의원대회에서 대의원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우리는 그렇다면 지금까지 비정규직 동지들에게 사해평등주의와 같은 의미에서 연대를 해 준 것이고 구호로만 그들을 지지했던 것인가. 너무나도 그들을 기만하고 우리를 기만하는 말 속에서 절망감을 느꼈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 정규직 교사들이 실제로는 뼛속까지 비정규직들을 무시하고 있었구나, 우리 전교조 교사들조차 입시교육에 매몰돼 능력주의를 내세우며 그들을 깔보고 있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됐다.

기간제 교사들이 우리 전교조에 기댈 필요 없이 그들 스스로 두 발로 서 있는 노조를 건설했다면 상황이 어땠을까. 전교조도 법외노조 철회나 교육개혁을 위해 그들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면 어땠을까. 기간제 교사들이 정규직 교사들만큼 교육 주체로서 인정됐다면 어땠을까. 과연 우리가 그들에게 그런 식의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전국기간제교사연합회에서 전교조 사무실을 빌려 기자회견을 했을 때, 왜 그들에게 장소를 제공했냐고 비난을 퍼부은 조합원들이 있었다. 그리고 기간제 교사들에게 ‘불쌍함’을 느끼다가 그들이 자신과 동등한 권리를 내세우자 그건 심하다며 반대하는 교사들도 있었다. 그동안 우리는 강자의 입장에서 시혜적으로 기간제 교사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수준의 운동을 하고 연대를 한 것은 아닐까. 전교조의 연대를 끌어내고 입장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기간제 교사들의 조직이 강해지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기간제 교사의 독립노조 건설은 무척 환영할 일이다. 전교조를 통해서가 아니라 그들 스스로 독립적인 목소리를 내고 정규직화를 쟁취해 학교 현장을 변화시킬 것이다. 투쟁 주체로 우뚝 선 그들은 그들 스스로 쇠사슬을 끊어 내며 공교육의 공공성을 되살리는 작업을 하게 될 것이다.

그들의 투쟁과 변혁성은 정규직화에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전국기간제교사연합회 게시판에 있는 글들을 하나하나 곱씹으며 나는 비정규직 운동이 가지는 변혁성에 다시 한 번 놀랐다. 대한민국 모순의 한가운데 서 있는 그들은 전교조조차 할 수 없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대다수 전교조 교사들이 임용시험이라는 굴레에 갇혀 능력주의 운운하고 있을 때 이들은 현재의 정치구도를 넘어 ‘계급’이라는 틀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교조에서는 볼 수 없었던 그들의 관점과 투쟁력이 모순의 한가운데 있는 이들에게서는 보였다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 우리 노동운동의 미래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단결, 그리고 비정규직에 대한 정규직들의 연대는 시혜적 성격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내가 절절히 느낀 지점이다. 그들을 우리 교육운동과 노동운동에서 동지로 인정해 주는 것, 단지 구호로만 외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변화를 위해 저들의 변화를 도와야 한다는 관계성, 이러한 것들에 의해서 움직이는 단결과 연대만이 현재를 타개해 나갈 수 있다. 그 시작은 기간제 교사들의 독립노조 건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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