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지금은 둘 다 미쳤지만 1980년대 동아와 조선은 한국 언론의 쌍벽이었다. 동아는 사회, 조선은 정치가 강했다.

발군의 경찰 기자들을 거느린 동아일보 사회부는 작은 사건 하나하나에 숨은 시대의 코드를 찾아내 사회적 의제로 끌어올리는 힘이 있었다.

지난 26일 33면에 실린 기자칼럼 <한 입양인의 죽음>은 옛 시절 동아일보 사회면을 보는 듯했다. 이 칼럼을 쓴 기자가 산업부 소속이란 점도 흥미로웠다. 칼럼은 이렇게 시작한다. “(화재참사로) 대한민국 눈과 귀가 모두 충북 제천으로 쏠렸던 21일 경남 김해에서 노르웨이 국적의 한 남성이 죽은 채로 발견됐다. 숨이 끊어진 뒤 약 열흘 지난 뒤였다. 그를 발견해 경찰에 신고한 사람은 가족도 친구도 아닌 고시원 관리인이었다. 사망자 Y씨(45)는 1980년, 8살에 해외로 입양된 입양아다.”

Y는 겉모습은 한국인이지만 한국말을 못했다. Y는 2013년 친부모를 찾으러 무작정 한국에 왔다. 그러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고 5년 동안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을 얻었다. Y는 유서도 없이 술병만 뒹구는 월세 20만원짜리 고시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기자는 말한다. “2012년 8월 입양특례법 개정 전 해외입양된 16만5천305명 중 현지 국적을 얻지 못한 입양인만 2만6천여명에 달한다. 100명 중 15명의 아이가 무국적자가 됐다니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지금도 매년 300~400명의 아이가 해외로 보내진다.”

기자는 “입양아 출신 장관·의사 등 성공사례에만 관심을 기울인 미디어도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고 고개 숙였다. 이처럼 따뜻한 칼럼을 동아일보에서 읽은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잠시뿐이었다. 같은날 동아일보 경제섹션 2면에 실린 또 다른 ‘입양아 출신 장관’ 같은 기사를 보고 웃펐다. 경제섹션에 실린 동아일보 기사는 ‘알바하다가 입사 … 25년 만에 세계 상위 1% 점장 됐어요’라는 제목의 인터뷰 기사였다. 천안에 있는 40대 맥도날드 한 점장의 성공신화와 그녀가 환하게 웃는 연출된 사진을 보면서 앞서 가진 따뜻한 동아일보에 크게 실망했다. 물론 그 사진은 기자가 직접 찍은 것도 아니고 ‘한국맥도날드 제공’이란 바이라인이 붙어 있다. 지면을 기업 홍보판으로 내어 준 느낌이다.

수많은 알바들이 맥도날드에서 청춘을 보내지만 이 점장처럼 되는 이가 몇 명이나 될까. 그마저도 기자는 잘 안다. 기사 제목에 ‘상위 1%’라고 큼지막하게 박았으니. 이 기자는 얼마 전 알바노조가 한국맥도날드와 교섭하다가 파행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듣기나 했을까.

Y가 고시원에서 숨진 채 발견된 날 온 국민의 눈을 붙잡았던 제천 화재사건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났다. 동아일보는 26일 사회면에 <알바생이 소방점검 … 대행업체가 소화기 사다 놓고 “이상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지난해 7월 이 스포츠센터 건물의 소방점검을 실시한 사람은 당시 건물주의 아들이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동아일보는 “화재 예방에 필수적인 소방점검은 현재 대부분 민간위탁으로 진행된다. 건물주가 돈을 내고 맡긴다”고 했다. 공분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그러나 우리 언론이 생명·안전을 다루는 중요한 일을 정부와 지자체가 이윤 추구가 지고지선의 목표인 민간업체에 맡기는 ‘민간위탁’에 대해 그동안 얼마나 주의 깊게 살폈는지 생각하면 아찔하다. 이렇게 사고 날 때만 잠깐 보도했다가 ‘효율’ 뒤로 숨어 버린 언론도 책임이 크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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