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민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뇌혈관질병 또는 심장질병 및 근골격계질병의 업무상질병 인정 여부 결정에 필요한 사항’ 고시 개정안이 공지됐다. ‘뇌심혈관질환 산재 인정기준’이라고 흔히 알고 있는, 12주간 평균 노동시간이 주당 60시간이 넘어야 한다든지, 발병 전 1주일 이내의 업무 양이나 시간이 일상 업무보다 30% 이상 증가해야 한다는 규정이 정해져 있는 고용노동부 고시를 개정하겠다는 것이다.

공지된 고시 개정안의 가장 큰 특징은 노동시간 외에 과로의 질적 요소들이 명시되고, 업무관련성 평가에서 계량적으로 활용되도록 한 점이다. 개정안에서는 발병 전 12주 동안 업무시간이 1주 평균 60시간이 안 될 경우에도 ‘업무부담 가중요인’이 있으면 업무와 발병과의 관련성이 강하다고 본다. 이 ‘업무부담 가중요인’에는 교대제 업무, 휴일이 부족한 업무, 소음이나 한랭 등 유해한 작업환경, 육체적 강도가 높은 업무를 제시하고 있다. 지금까지 과로 평가에서 노동시간에 비해 충분히 고려되지 못했던, 여러 가지 과로의 질적인 요소에 대한 평가가 중요해지게 됐다.

또 단기간 육체적·정신적 과로를 유발한 업무 변화를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동종의 근로자라도 적응하기 어려운 정도’에서 ‘해당 노동자가 적응하기 어려운 정도’로 변경한 것도 진일보한 것이다. 이미 여러 판례에서 업무와 질병 사이의 관련성 평가를 “보통 평균인이 아니라 당해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해서 판단한다”는 법리를 인용하고 있어, 일관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개정이다.

하지만 우려와 아쉬움은 남는다. 이미 여러 연구에서 주 평균 60시간 이하 근로시간에도 뇌심혈관질환 유병률이 유의하게 높다고 보고됐다. 질병발생 3개월 전부터 52시간 이상 근무한 경우 심혈관질환·뇌혈관질환 발생위험이 5배 이상 증가했다는 국내 연구도 있다. 이미 수년 전부터 학계에서는 인정기준을 근로기준법에 규정한 최대 근로시간인 1주 평균 52시간으로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왔다. 그런 점에서 만성과로 평가기준을 1주 평균 60시간으로 그대로 둔 것은 아쉽다.

우려스러운 점은 "업무와 발병과의 관련성이 강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는 유보적 표현이 등장한 점이다. 이전 고시에서는 “발병 전 12주 동안 업무시간이 1주 평균 60시간을 초과하는 경우 업무와 발병과의 관련성이 강하다”고 했는데, 이 규정이 “업무와 발병과의 관련성이 강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로 바뀌게 됐다. 이 규정은 "업무와 발병과의 관련성이 강하다고 평가하지 않을 수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 법률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노동부 고시의 예시는 당연인정기준으로 활용하고, 이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례에 대해서만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서 논의를 진행하는 것이 행정적 낭비를 막고, 노동자 편의를 돕는 방편이다.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모호한 표현보다 분명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또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6시 사이 야간근무의 경우 업무시간을 주간근무보다 30%를 가산해 계산하도록 하면서, 감시·단속업무 노동자는 배제하도록 한 규정이다. 경비업무를 하더라도 야간에 지속적으로 대기상태에 있다면 그 시간을 노동시간으로 인정해야 하며, 동일하게 30%를 가산해야 한다. 수면실이 따로 있고, 수면이 완전히 보장된 시간은 노동시간으로 보지 않을 수 있지만, 수면 중이라도 비상 상황에서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대기 상태라면 일부는 노동시간으로 봐야 한다. 핀란드 같은 나라는 노동자가 ‘집에서’ 대기하며 보내는 시간도 50%는 임금이나 휴가시간으로 보상하도록 하고 있다. 당장 이렇게 바꾸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야간노동시간 가산을 가장 열악한 형태의 교대근무를 하는 감시·단속 노동자에게 적용하지 않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가장 큰 아쉬움은 과로로 인한 뇌심혈관질환 산재 승인과 관련해서는 그나마 진전이 있는데, 정작 과로와 과로사를 줄이기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은 아무 소식이 없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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