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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인터뷰-전진경 작가] "그림을 그렸을 뿐인데 멋진 연대가 이뤄졌네요"콜트·콜텍 노동자와 예술가의 동고동락 <빈 공장의 기타 소리>
   
▲ 정기훈 기자

완벽한 아틀리에였다. 그곳은 단숨에 전진경(44·사진) 작가의 예술적 영감을 흔들었다. 전기가 끊겨 어둡고 컴컴한 공간에 흉물스럽게 뜯겨진 폐전선이 머리 위에서 덜렁였다. 수년째 묵은 먼지가 한가득이었다. 그런데 그에겐 보물창고를 만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딱 들어왔는데 느낌이 확 오더라구요. '여기서 나는 되게 멋진 일을 할 수 있겠구나' 너무 설레 잠도 안 왔어요."

한때 기타 만드는 소리 요란했을 인천 부평구 갈산동 421-1번지. 콜트악기 공장 얘기다. 지금은 대형 LPG 가스충전소가 들어서 옛 모습은 찾아볼 수 없게 된 곳, 콜트악기 공장이 그림책으로 부활했다.

전진경 작가는 2012년 4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장기농성 중이었던 빈 공장에 작업실을 꾸렸다. 그곳에서 보낸 열 달을 소재로 지난달 30일 그림책 <빈 공장의 기타 소리>(창비)를 펴냈다.

홍익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전 작가는 평택 대추리부터 제주 강정마을, 기륭전자, 용산 참사, 콜트·콜텍 같은 투쟁 현장을 다니며 미술작업을 하는 파견미술가다. 지난 20일 저녁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인근 콜트·콜텍 천막농성장에서 그를 만났다. 48페이지밖에 안 되는 짧은 그림책 이야기가 두 시간 넘게 이어졌다.

창비
창비


어린이를 위한, 어른도 읽는 그림책

마침 천막은 비어 있었다. 천막 주인들이 비정규 노동자의 집 <꿀잠>에서 열린 회의를 가거나 문화제에 참석하러 간 터였다.

"아저씨, 발전기 어떻게 돌리는 거예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대로변에 놓여 있는 발전기를 찾아 시동을 걸고, 전등불을 켜고, 가스난로에 불을 붙이는 모습이 마치 집주인처럼 능숙했다. 천막 한쪽에 그림책 한 권이 놓여 있었다. 전 작가가 아저씨들에게 선물로 준 책이다. 아저씨들의 소감은 어땠을까.

"아직 평가를 받지 못했어요. 아저씨들 말이 너무 없으세요."

책과 비슷한 시기에 나온 '콜밴' 음반 판매에 아저씨들 관심이 더 쏠려 있는 것 아니냐, 짓궂게 물었더니 전 작가가 눈을 크게 떴다. "앗, 그런가?"(웃음)

콜트·콜텍 기타노동자 밴드. 줄여서 콜밴(김경봉·이인근·임재춘)으로 불리는 밴드는 대전 콜텍악기 공장 기타노동자들이 모여 만든 밴드다. 투쟁 10년을 맞아 최근 기념음반을 제작했다. 이달 9일에는 서울 마포구 서교동 홍대 인근 '클럽 빵'에서 쇼케이스까지 했다. 아저씨들은 아저씨들만의 방식으로 지난 시간을 돌아본 셈이다.

- 책은 콜트·콜텍 투쟁 10주년에 맞춰 낸 건가요.

"그건 아니에요. 우연히 시기가 맞았을 뿐이에요."

마치 짠 듯 10주년에 맞춰 출판되긴 했지만 의도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콜트 공장에서 보낸 일을 기록할 필요가 있다고는 생각했어요. 보통 작가들이 어떤 활동을 하고 나면 아카이빙(기록을 저장·보관하는 작업) 개념으로 책을 남기곤 하니까요. 나는 어떻게 할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알고 지내던 편집자분이 계약서를 들고 오셨어요. '진경씨가 원하는 책을 할 수 있게 됐다'면서요."

편집자가 원했던 건 어린이들을 위한 그림책이었다. 회사가 어렵다며 위장폐업을 하고 해외로 기타공장을 옮겨 버린 사장, 하루아침에 일터에서 쫓겨난 노동자들, 끝이 보이지 않는 복직투쟁…. 이 길고 지난한 얘기를 아이들한테 어떻게 설명하지? 굳이 이런 이야기를 애들에게 할 필요가 있을까? 한다고 이해할 수 있을까?

계약서에 도장은 찍었지만 전 작가는 쉽사리 작업에 손을 대지 못했다. 계약기간이 점점 짧아지면서 지난해 가을에서야 글과 그림을 구상하기 시작했지만 답답함은 가시지 않았다. 편집자가 요구한 그림책의 콘셉트가 '콜밴' 스토리였기에 더 그랬다.

"잘 모르는데 아는 척하는 것은 위험한 방식이라고 생각했어요. 미화시키거나 극적으로 표현하려는 욕심이 붙을 수밖에 없거든요. (편집자 요구대로) 초반 스케치와 글을 써서 이윤엽 작가(판화가)에게 보여 줬는데 몇 장 읽자마자 '됐어. 이렇게 하지마, 끝까지 안 읽혀'라고 바로 덮어 버리더라구요. 그러면서 '진경씨 공장에서 좋았다며? 그냥 그때 경험을 써'라고 말해 줬어요. 시작을 어떻게 할지 몰라 고심하던 참에 그 얘길 듣고 방향이 선명해졌죠. 그냥 내가 공장에서 아저씨들과 보낸 시간을 얘기해 보자고 말입니다."

지난겨울 촛불시민들이 박근혜와 샅바싸움을 벌일 때 전 작가는 그림책과 한판 씨름을 벌이고 있었다. 그렇게 1년 만에 책이 나왔다.

정기훈 기자


작가와 노동자의 멋진 연대란?

"빈 공장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 공장은 내 몸을 통째로 삼킬 것 같이 크고 어두웠다. 용기를 내어 안으로 들어갔다. 순간, 뚜렷한 기분이 들었다. 여기서 예술을 하면 멋진 게 나올 거야, 분명! 팔에 소름이 돋았다."(빈 공장의 기타 소리 중에서)

작가는 빈 공장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느꼈던 강렬했던 감정을 그림책 첫 장면에 넣었다. 우물쭈물 "여기 빈 공장을 써도 될까요"라고 말하는 작가의 모습과 "찾아오신 건 고마운데 여긴 위험하기도 하고, 우리도 안전하지 않은데 혹시 다치면 우리가 책임질 수도 없고"라고 말하는 종훈 아저씨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전 용감한 편이라서 괜찮아요." 이렇게 작가는 공장에 입성한다.

공장에서 가장 볕이 잘 드는 곳에 작업실을 차렸더니, 키 큰 아저씨가 와서 전등을 달아 준다. 작업실은 어느새 밴드 연습실이 된다. 자춘 아저씨, 장택 아저씨, 강봉 아저씨, 인건 아저씨가 카혼을 두드리고 기타를 튕긴다. 밴드 연습이 작업에 방해된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싫지 않은 표정이다.

"우린 신경 쓰지 말고 그려."

"전 작가, 나도 구경해도 돼?"

아저씨들은 종종 작업실에 모여 작가가 그림 그리는 모습을 구경한다. "그림이 맨날 똑같아." 훈수도 빼놓지 않는다.

어떤 밤 종훈 아저씨는 작가에게 딸의 문자메시지를 보여 줬다. 작가는 집에 있는 아빠를 떠올렸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명예가 있어. 노동자에게도 명예가 있어. 사장은 그걸 몰라. 함부로 해고하고,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 생각해. 잘못을 알리고 당당하게 일자리를 되찾을 거야. 가만히 있으면 아무도 우리를 도와주지 않아." 종훈 아저씨가 투쟁하는 이유다.

작가는 책에 등장하는 아저씨들의 이름을 실제와 살짝 바꿔 붙였다. 방종운을 종훈 아저씨, 이인근을 인건 아저씨, 김경봉을 강봉 아저씨로 부르는 식이다.

- 책에 '종훈 아저씨'라고 해서 누군가 했네요.

"실명을 쓰는 건 왠지 부담스러웠어요. 꼭 그분들이 한 말을 고스란히, 한 치도 어긋나게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부담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름을 살짝 바꿨어요."

- 많은 등장인물들이 나오는데, 책을 읽다 보니 어쩌면 빈 공장이 주인공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네요. 저는 그 공장이 너무 좋았어요. '왜 콜트에 갔냐'고 물어보는데, 사실 빈 공장 때문에 간 거예요. 빈 공장이란 건 제가 거주하고 실험할 수 있는 영역이 있었다는 의미니까요. 당시 고민했던 게 '내가 계속 현장에서 작업을 하는 게 도움이 될까? 이게 나의 발전일까?'였습니다. 계속 의심했었어요.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연대하고 도움을 준다는 것에 굉장히 목을 매고 있었는데, 나는 왜 충족되지 않을까 이런 고민 있잖아요. 그런데 빈 공장을 딱 보는 순간, 여기서는 노동자들과 연대를 열심히 하지 않아도 나는 되게 멋진 일을 할 수 있겠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전에는 현장에 가면 현장을 위한 일을 해야 한다는 막연한 의무감이 있었거든요. 이곳과 상관없는 그림을 그려도 굉장히 멋진 연대가 이뤄질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 확신을 확인한 순간이 있었나요.

"방종운 아저씨가 재판 준비로 밖에서 일을 보고 밤에 들어올 때가 많았거든요. 제 작업실은 공장 정문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었는데, 아저씨가 밤늦게 들어오다가 작업실에 불이 켜져 있으면 집에 온 것처럼 마음이 풍족한 느낌이 든다고 하셨어요. 동호 아저씨란 분이 계신데, 저만 보면 '진경 작가 작업실은 새로운 세계 같아. 여기만 들어오면 굉장히 설레' 이러면서 천진하게 말할 때도 저 나름대로 '연대가 잘 되고 있구나' 생각했어요. 다른 작가들이 속속 공장을 찾게 된 것도 좋았어요. 이곳을 드나드는 문턱이 좀 더 가벼워지고 넓어지면서 제 확신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았죠."

전진경 작가는 그해 7월 회화·설치·판화·퍼포먼스 작가 21명과 함께 공장에서 미술전을 열었다. 공장 주소를 따서 전시명을 '부평구 갈산동 421-1'로 했다. 공장 미술전이 알려지면서 다시 콜트·콜텍 투쟁에 관심을 갖는 언론이 많아졌다. 공장을 찾는 이들도 늘어났다. 전 작가 말처럼 그림을 그렸을 뿐인데, 멋진 연대가 이뤄진 것이다.

"콜트·콜텍 이야기, 다시 다루고 싶다"

"아저씨들은 몇 년째 새벽마다 거리로 나가고 있었다. 어느 날 공장이 문을 닫았고, 아저씨들은 한꺼번에 일자리를 잃었다. 회사는 형편이 어려워서 문을 닫는다고 했지만, 사실은 공장을 외국으로 옮겼다고 한다. 이제야 아저씨들 손에 들린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빈 공장의 기타 소리 중에서)

- 콜트·콜텍 투쟁은 설명할 게 많잖아요. 위장폐업부터 정리해고, 복직투쟁까지. 책에서는 딱 네 문장으로 썼더라고요. 짧게 요약하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요.

"모든 걸 지문 써내려 가듯 쓰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어떤 대화나 장면을 통해 그런 내용이 압축돼 담겨 있어야 합니다. 저는 아저씨들이 아침 선전전을 하고 돌아오는 장면을 통해 슬쩍 비췄던 거죠. 아저씨들이 왜 해고가 됐는지 배경까지 설명하는 친절함은 불필요하다고 봤어요. 책을 보고 관심이 생긴 사람들은 기사를 검색해 보고, 이들이 왜 싸우는지 찾아보길 바란 거죠."

그럼에도 한정된 '쪽수' 때문에 빠진 이야기가 많아 아쉽다고 했다.

"공장에서 만난 아저씨들 각자의 얘기는 훨씬 복잡하고 입체적이에요. 이를테면 이런 거죠. 하루는 동호 아저씨 목소리가 완전 쉬어 버려서 말을 못하는 거예요. 목이 왜 그러냐고 했더니, 공터에서 소리를 질렀다더라고요. 가슴은 답답한데 술 마시고 농성장에서 소리 지르고 할 순 없으니까 밖에 나가서 그러고 온 거예요. 아저씨의 암담한 감정을 책에 못 담은 게 아쉬워요."

태풍이 몰아쳐 농성장이 망가진 어느 날 새벽, 너무 힘들고 지쳐 농성을 접을 생각까지 하던 종운 아저씨 앞에 자섭 아저씨가 성큼성큼 들어왔던 얘기부터 손재주가 기가 막힌 경봉 아저씨의 일화, 적인지 아군인지 헷갈리게 했던 경비아저씨와의 에피소드까지. 작가 자신의 기억으로만 담고 있기에는 아쉬운 얘기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했다.

"경비아저씨는 여러 가지 감정을 들게 했던 사람이에요. 그분도 갈등이 많았겠지요. 출근부터 퇴근까지 모든 시간을 이 사람들(농성자)과 함께하면서도 친해질 수는 없는 관계였으니까요. 처음엔 경비아저씨와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고 했는데, 알고 보니 제가 언제 공장에 들어왔고 나갔는지 일거수일투족을 건물주한테 알려 주고 있었습니다. 내가 몇 시에 온 걸 어떻게 알고 귀신 같이 건물주가 쫓아와서 '나가라'고 하나 궁금했거든요. 그 사실을 알고 난 뒤에 아저씨 피해서 쪽문으로 다니고 그랬어요. 이런 것도 흥미로운 소재죠. 조만간 긴 호흡으로 콜트·콜텍 얘기를 다시 다뤄볼 계획입니다."

"콜트·콜텍만의 특별한 이야기 아니다"

그림책은 용역들에 의해 농성장이 철거되고 쫓겨난 이들이 천막을 다시 세우면서 마무리된다. 여느 어린이 동화책처럼 권선징악이나 해피엔딩을 강요하지 않는다. 강성노조 때문에 회사가 망했다는 거짓 얘기를 스스럼없이 내뱉던 어느 당 대표의 사과를 요구하면서 세운 천막 앞에 "멋진 하루였어"라며 손 흔드는 아저씨들의 모습을 그렸을 뿐이다.

- 다른 엔딩은 생각해 보지 않았나요.

"처음부터 그 장면을 엔딩장면으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이 책은 그래도 삶은 지속되고 있는 것에 대한 얘기이기도 하거든요. 지금도 콜트·콜텍 아저씨들은 여의도에서 농성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게 우리가 보는 가장 객관적인 장면이다 싶었어요. 거리를 걷다 보면 농성장을 많이 보게 되는데, 사람들이 그렇게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걸, 콜트·콜텍만의 특별한 얘기가 아니라는 걸 보여 주고 싶었어요."

- 콜트·콜텍 투쟁 10년은 어떤 의미인가요?

"아저씨들이 예전에 그런 말을 하셨어요. 공장을 해외로 옮기면서 노동자들을 마음대로 해고해도 법이 제재하지 못하니까 여기까지 온 거라고요. 기업은 자유롭게 노동자를 배신해도 되는 문화가 당연해지면 안 된다고, 우리가 그걸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만들기 위해 투쟁하는 거라고 하셨어요. 개인이 겪어야 하는 희생은 엄청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명예가 있고, 함부로 내던져 버려도 되는 존재가 아니다'라는 것을 알리려고 하는 거죠. 저는 그런 아저씨들의 선택을 최대한 존중할 따름입니다."

배혜정  bhj@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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