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2017년은 참으로 의미 있는 한 해였다. 민중의 손으로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것이 1960년 4·19혁명 이후 얼마 만인가. 그사이 80년 민주화의 봄도 있었고, 87년 6월 항쟁도 있었지만 민중의 힘으로 독재정권을 몰아내지 못했다. 그 결과 이승만 매판자본주의를 대체해 대외적으로 종속적·수탈적이고 대내적으로 초과착취적(재벌)·기생적(자산소유자)인 박정희 천민자본주 체제가 형성·고착됐다. 87년 6월 민주항쟁은 대통령 직선제로 기존 통치체제에 파열구를 냈지만 신군부 정권을 끝장내지 못했다. 97년 외환위기는 여야 정권교체를 가져왔지만 착취·수탈 방식을 바꿔 오히려 천민자본주의 체제를 재정비·강화했다. 이른바 민주정부 시절에도 박정희 없는 박정희 체제가 작동했다. 그래서 이명박근혜 정권이 탄생했다. 박근혜 정권이 퇴진한 지금도 국가·사회 상층부에는 구체제를 지키려는 세력이 의연히 버티고 있다.

이런 역사와 상황 속에서 촛불혁명이 터져 나왔고, 박근혜 정권이 쫓겨났고, 문재인 자유주의 정권이 집권했다. 그러나 민주라는 이름의 자유주의 정권은 박정희를 중시조로 하는 파쇼 정권과는 날카롭게 적대했지만 박정희가 만들고 지금까지 이어져 온 천민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대해서는 비적대적이었다. 이런 연유로 문재인 정부는 지금 적폐를 청산한다며 국민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지만 세상을 바꾼 것은 별로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연말연시 한겨울에 공공운수노조 서울대병원분회는 무기한 총파업을 했고, 금속노조 파인텍지회는 무기한 파업 중인 가운데 75미터 굴뚝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또 장애인들이 정부에 중증장애인 노동권 인정을 요구하며 장애인고용공단 로비를 점거하고 무기한 농성에 돌입해 있다.

지난 12일 무기한 파업에 들어간 서울대병원분회는 △병원 내 적폐세력 청산 △비정규직 1천600명 정규직화 △신입직원 임금·복지 삭감 복원을 요구했다. 그 가운데 첫 번째 요구인 병원 내 적폐세력 청산의 일순위로서, 박근혜 정권의 ‘의료농단’에 연루된 서창석 원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서 원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 주치의 시절 김영재 성형외과의원 원장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외래교수로 위촉하고, 그의 리프팅 실을 서울대병원에 도입하는 것을 주도하고, 그가 청와대에 출입하면서 행한 ‘비선의료’를 묵인했으며, 백남기 농민 사망진단서를 병사로 허위 작성한 백선하 교수를 옹호하는 등 지탄의 표적이 돼 왔다. 여론에 몰린 서 병원장은 파업 이틀째인 12월13일 오후 서둘러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과 신입직원 임금 및 복지 회복, 임금 3.5% 인상 등에 합의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병원장 자리에서 물러나기를 거부하고 있다. 이에 노조는 인적·제도적 적폐청산 투쟁은 파업종료와 상관없이 계속해 나갈 예정이라는 입장이다. 적폐청산이 시대 화두인 지금 서울대병원 임명권자인 대통령과 임명 제청권자인 교육부 장관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파인텍지회는 한겨울에 왜 75미터 굴뚝에 올라갔는가. 파인텍은 옛 스타케미칼의 모기업인 스타플렉스가 만든 회사다. 차광호 전 스타케미칼 해복투 위원장이 2014년 5월27일부터 2015년 7월8일까지 408일 동안 공장 굴뚝에서 농성한 끝에 합의한 결과물이다. 2015년 당시 해고노동자들과 스타플렉스는 노조·고용·단체협약 승계에 합의했다. 그러나 파인텍 사측은 계속 단체교섭을 해태했고, 노조는 지난해 10월 노사합의 이행을 요구하며 무기한 파업에 돌입했다. 그러자 회사는 아예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노조는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리던 11월12일 새벽 노사합의 이행을 요구하며 또다시 고공농성에 돌입했다. 노조의 고난에 찬 민주노조 사수투쟁은 유명하다. 이들의 투쟁은 비정규직 철폐와 투쟁사업장 노동자들과의 연대에 앞장서 온 구미 한국합섬노조에 대한 2007년 위장파산 파괴공작에서 시작됐다. 그 과정은 길고도 복잡하다. 적폐다. 노조는 개별 사업장 수준의 적폐만이 아니라 전체 노동자에 대한 적폐인 노동악법을 철폐할 것과 그러한 적폐를 만들어 내는 뿌리인 헬조선을 변혁하라는 대담한 요구를 내걸고 투쟁하고 있다. 노동이 존중받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청와대와 노동부 장관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11월21일 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사에서 ‘중증장애인 노동권 3대 요구’ 쟁취를 위한 무기한 농성에 들어갔다. 이들은 중증장애인 노동권 확보를 위해 노동부 장관에게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 1만개 보장 △최저임금법상 중증장애인 적용제외 조항 삭제 △장애인고용공단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중증장애인도 노동의 기쁨을 누리고 싶습니다” “5~10%의 노동력만 발휘해도 노동성을 인정해야 한다” “중증장애인 최저임금 적용제외 조항은 2014년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도 우려를 표한 사항이다” “장애인 고용부담금이 1조원이나 된다. (…) 1조원을 중증장애인 고용에 써야 한다”고 주장·요구하고 있다.

중증장애인들은 교사나 공무원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들도 노동자로 인정하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장애인들이 인정해 달라고 요구하는 노동자란 교사나 공무원처럼 자본주의 방식으로 자신의 노동력을 상품으로 판매하는 노동자가 아니다. 왜냐하면 중증장애인의 노동력은 상품으로서 가치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의 노동성 또는 노동권 요구는 중증장애인도 인간 자기실현의 가장 중요한 형태인 노동을 할 수 있기에, 나라가 중증장애인에게 인간으로서의 자기실현인 노동을 보장하라는 요구다. 나아가 인간으로서 노동을 보장한다면 인간으로서 기본생활도 보장하라는 요구다.

사실, 이것은 매우 심각한 적폐다. 아니, 노동자를 노동력 상품 판매자로서만 파악하고 자본 필요에 맞춰 쓰다 버리는 것이야말로 헬조선의 가장 근본적인 폐단이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구호가 빈말이 아니고 국가가 진정한 공동체라면, 정부는 인간적 요구에 성의 있게 응답해야 한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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