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불현듯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학생들이 충격을 받을까 봐 마음 고쳐먹고 소명서를 제출하고 연수를 갔죠. 창피해서 말도 못하고 많이 울었어요.”

지난 15일 전교조 연가투쟁에서 만난 김인섭(60·가명)씨 말이다. 경기도 A고 교사인 김씨는 이날 교원평가제에 얽힌 에피소드를 털어놨다. 김씨는 5년 전 교원평가에서 학생 3명으로부터 최하점을 받았다. 김씨는 “익명이어서 증명할 수는 없지만 누군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중학교 2학년 담임이었던 김씨는 남학생 3명의 잘못을 꾸짖은 적이 있었다. 남학생 3명이 여학생 1명에게 지속적으로 언어폭력을 가했는데, 주의를 주는 과정에서 학부모에게 해당 사실을 알린 것이다. 그해 말 교육청은 학생 3명에게서 최하점을 받은 김씨에게 소명서 제출을 요구했다.

“다음날 새벽 4시까지 내가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돌아봤는데 눈물이 나왔어요. 20년 넘게 교직생활을 했는데 '밤에 이 짓을 해야 하나' 생각이 들었고요. 불현듯 아파트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학생들이 눈에 밟혀 그러지 못했죠. 후배 교사들 주례도 5번이나 섰는데 그들이 받게 될 충격도 생각났고요.”

결국 그는 마음을 다잡고 교육청에 소명서를 제출하고 연수를 받았다. 무너진 자존감은 상처로 새겨졌다.

“복지부동할 걸, 대충 지도하고 넘어갔으면 될 일을 괜히 적극적으로 지도해서 마찰이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사에게 무한 책임감·도덕성을 요구할 거면 (지도할) 권리도 그만큼 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학생에게 교사 평가를 제도적으로 열어 주는 것이 교육적인지 모르겠어요. 저는 교사의 책임감은 (사회가) 전문성을 믿어 줄 때 나온다고 생각해요. 교원평가가 아니더라도 자질 없는 사람들은 교육청이 현행법으로 걸러 낼 수 있다고 봅니다.”

역설적이게도 김씨는 교원평가에서 최하 점수를 받은 3개월 뒤에 학업지도우수 교사로 교육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평소에 어떤 교사인지 묻자 불쑥 휴대전화를 내밀어 사진을 보여 줬다. 사진에는 ‘남우주연상’이라고 적힌 상장이 있었다. “수업시간에 작품을 읽을 때 배우처럼 재미있게 읽어서 학생들이 준 상”이라며 웃었다.

그런 그에게 연가투쟁은 어떤 의미일까. 김씨는 “가족들에게 ‘그 나이에 그런 곳에 나가냐’는 핀잔을 들었다”며 “전교조 활동을 하면서 가족들에게 늘 미안하다”고 안타까워했다. 최근에는 건강이 좋지 않아 한약을 먹고 있다고 했다.

"부당한 것은 말해야지요. 김수영 시인은 <눈>에서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고 했습니다. 용기 있게 일어서라고 가르쳐야 하는데, 내가 모범을 보여야죠. 그래서 나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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