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희 공인노무사(금속노조 법률원)

1. 위험의 외주화. 가장 힘든 일, 위험한 일이 우선순위로 외주화되고 있다. 위험은 고스란히 외주기업에게, 외주기업의 열악한 노동자에게 전가된다. 삼성전자 하청업체 노동자의 메탄올 중독으로 인한 실명은 우리 사회의 가장 가슴 아픈 모순이다.

2. 2016년 세계에서 제일 잘나가던 한국 조선업에 구조조정 바람이 몰아치면서, 거제·통영·고성·울산 지역 등 조선업에 근무하던 노동자 중 가장 먼저 해고대상이 된 자들은 물량팀에서 일하던 비정규 노동자들이었다.

3. 기업이 어렵다는 이유로 정리해고를 하게 되면 유기계약 노동자의 계약갱신 중단이 해고회피노력의 한 유형으로 꼽히기도 한다. 실제로 많은 구조조정 사업장에서 사실상 1순위 해고대상은 기간제 등 비정규 노동자들이다.

4. 2017년 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진행되면서 정규직들이 반발하는 사례가 기삿거리가 돼 세간의 입에 오르내리는 중이다. 제주교육청 등 한두 사업장의 특수한 문제는 아니다. 공공부문 정규직화 회의에 들어가면 공채를 통해 채용된 정규직들의 반감이 마구 튀어나온다. 수년간 공공기관에서 성실히 일한 비정규 노동자들이 공채 없이 정규직이 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 청소·경비업종 정년이 나머지 노동자들의 정년보다 높아지는 것은 차별이라는 지적, 심지어는 공채로 입사한 저연차 직원들에 비해 임금총액이 높다는 것에 대한 반발도 여과없이 얘기돼 낯 뜨거워지기도 한다.

5. 한국지엠에서 노조가 비정규직 생산물량을 인소싱하기로 합의한 후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외치며 10여년간 노력했던 금속노조 내에서도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의 반목과 불신이 높아져만 가고 있다.

이런 안타까운 장면들이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들이 돼 가고 있다. 물론 이렇게 정규직의 바람막이가 된 비정규직의 모습만이 문제의 전부는 아니다. 정규직 내에서도 연대의식보다는 경쟁의식이 우위를 점하고 있고, 나아가 사회로 눈을 돌리면 남녀 간, 세대 간 대립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노동 영역에서 표면적으로 가장 많이 드러나는 부분은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의 반목과 갈등이다. 연대가 해체된 극단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어쩌면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비정규직이 하나의 사회적 신분이 돼 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다.

민주주의는 연대의식이 사회화하는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구 민주주의 발달 모델에서 연대의식의 중요성은 늘 언급되곤 한다. 연대의식의 출발은 노동자들 간의 연대다. 개인의 한계를 넘어 노동조합을 만들고, 또 나아가 직종과 기업의 벽을 넘어 산별노조를 만들고, 모든 노동자가 함께 임금인상과 노동권 등 사회·복지제도를 만들어 낸 힘은 연대의식이었다. 이것이 사회적으로 확장된 결과물이 민주주의 제도였다. 민주주의는 사회 전 구성원이 연대의식으로 통합돼 모두를 위한, 그리고 소수자를 위한 제도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2016년 기준 고작 10.3%에 불과하다. 비정규직의 노조 조직률은 2% 남짓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통계청 공식 통계로도 비정규직 비율은 33%에 육박한다. 노조가 비정규직을 조직하지 않는다면, 노조가 비정규직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지 않는다면, 연대의식이 점점 사라지는 작업장에는 경쟁과 이기주의가 자리 잡을 것이다. 이러한 경향이 장기적으로는 개인을 철저히 고립화시키고 분절화시킬 것임은 분명하다.

발전과 진보의 역사에서, 그리고 노동조합의 역사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연대의 가치, 현재 연대가 구현되고 있는지, 이를 가로막는 원인은 무엇인지, 우리는 다시금 치열하게 고민할 때이지 않을까, 노동의 영역에서 노조가 제일 먼저 극복해야 할 과제는 경쟁으로부터 연대로의 전환이라고 감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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