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유지업무제도로 민간항공사 노동자 쟁의권을 제한한 지 10년이 지났다. 항공재벌을 견제할 최소한의 장치가 사라져 항공운전을 담보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항공전문가·법조인들이 항공운송사업 필수공익사업 지정 폐해를 지적하는 글을 보내왔다. 3회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이기일 항공안전정책연구소장

항공운수사업은 필수공익사업장으로 지정돼 있다. 정비사·객실승무원·조종사 등 국내 항공사 소속 대다수 노동자들의 파업을 제한한다. ‘공익’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항공사 노동자들의 기본권인 쟁의권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2016년 12월 대한항공 조종사들이 파업을 하긴 했지만 법상 대다수 조종사가 정상근무를 해야 하기 때문에 항공편이 결항돼 피해가 발생했다는 뉴스는 없었다. 그런데 국민 입장에서 이런 상황을 마냥 반겨야 하는가. 예약한 티켓을 다른 항공사로 바꿔야 하는 등의 귀찮은 일이 벌어지지 않아 좋아해야 할까.

항공안전을 연구하는 입장에서 필자는 항공사 노동자 파업권 제한은 국민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는 위험한 규제임을 밝힌다. 파업에도 불구하고 아무 불편이 없었다고 좋아하다가 결국 친구나 가족을 항공사고로 잃을 수 있는 항공사고 위험이 커지고 있다. 도대체 파업과 항공사고가 무슨 관계가 있냐고 반문할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국제민간항공기구는 항공사고에서 인적요인이 차지하는 영향이 70% 이상이라고 보고했다. 정비사·조종사 등 항공 종사자가 심리적·육체적으로 스트레스 없이 자기 업무에 충실해야만 항공사고가 예방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는 1997년 대한항공 괌 사고, 2013년 아시아나항공 샌프란시스코 사고의 요인으로 조종사 피로도를 언급한 바 있다. 피로도는 조종사 근로조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조종사뿐만 아니라 정비사도 피곤하거나 불만족스러운 부당한 노동조건 속에서 업무를 수행하면 그만큼 정비결함이 발생할 확률이 높아진다. 항공사 노동조합들이 경영자를 견제하지 못해 항공사가 부실화하면 정비예산과 안전인력 투자를 줄일 것이고 그만큼 항공사고 확률이 증가하는 것이다. 그래서 항공사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통해 항공사를 상대로 자신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경영을 감시하는 활동 자체가 항공사고 예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런 가운데 우리나라가 항공사 노동자들의 파업권을 제한한 지 10년이 됐다. 파업권 제한으로 항공 종사자들의 노동조합활동이 유명무실해지자 항공사들은 안전인력 투자를 줄이고 평균물가상승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인건비를 낮췄다. 조종사 비행시간 제한도 완화했다. 노동조합 견제를 받지 않게 된 양대 항공사들은 부채비율이 증가해 부실화했다. 대한항공의 경우 안전예산을 축소한 사실이 국토교통부 조사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항공안전에 투자해야 할 이윤은 항공사를 소유한 재벌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줄줄이 새어 나가고 있다. 대한항공 사주일가의 각종 횡령·배임·탈세, 아시아나항공 사주의 문어발 그룹 확장을 위한 배임 의혹을 전하는 뉴스가 언론 빈번히 보도되고 있다.

항공 종사자 파업권 제한의 부작용은 실제 항공기 사고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5월27일 대한항공 하네다발 김포행 KE2708편이 이륙 직후 화재로 긴급히 이륙을 멈추고 승객들을 비상탈출시킨 아찔한 사고가 있었다. 당시 기장이 이륙중단 결정을 1~2초만 늦게 했다면 이륙 중 엔진화재사고 특성상 해당기에 탑승했던 승객과 승무원들은 전원 사망했을 것이다.

이런 심각한 사고는 단지 우연적인 한 번의 기체결함 문제로 발생하지 않는다. 2016년부터 2017년 7월까지 1년6개월간 대한항공 엔진 및 기체 정비결함으로 인한 사건·사고는 언론에 보도된 것만 총 33회다. 하네다공항 사고도 이런 사건·사고 중 하나다. 충분한 정비예산이 투입되고 정비사들에게 안정된 노동조건과 근무환경을 보장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사건들이다.

필수 ‘공익’사업이라며 항공사 노동자의 파업권을 제한한 결과 오히려 국민 생명·재산과 직결된 항공안전이라는 더 중요한 공익이 심각한 수준으로 위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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