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계산기를 두드리고 장부를 살피는 일은 언제나 회사 일로 여겨졌다. 주어진 일만 해도 하루가 짧은 노동자에게 숫자란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당신이었다.

그러다 자주 아차 하는 순간이 생긴다. 쌍용자동차·기륭전자·동광기연에서 벌어진 일이 그렇다. 폐업한 사업장을, 사라진 일자리를 되돌리는 일은 보통 힘든 게 아니다. 수년이 걸리고, 성공하리란 보장도 없다.

일에는 때가 있다. 민주노총 법률원이 11일 ‘노동자 기업경영분석실’ 문을 연다. 현장 노동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아차 하기 전에 경영과 자금 상황을 파악하자는 취지다. 공인회계사 자격을 갖춘 두 명의 전담 변호사가 배정됐다. 장석우(37·사진 오른쪽)·노종화(32·사진 왼쪽) 변호사가 그들이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8일 오전 서울 정동 금속노조 법률원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 노동자 기업경영분석실 설립 과정이 궁금하다.

"법률원은 과거 경영분석을 할 때 외부 회계사 도움을 받았다. 2015년 다른 법무법인에 몸담고 있을 때 합류 요청이 왔다. 이후 1년6개월을 법률원 충남사무소 현장에서 일했다. 점점 기업경영을 분석할 일이 많아졌다. 내부에서 분석에 좀 더 집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올해 5월 노종화 변호사가 합류하면서 계획이 구체화됐다. 3년 정도 준비했다."(장석우)

두 사람은 서울대 경영학과 선후배 사이다. 장석우 변호사가 5년 선배다. 걸어온 길도 비슷하다. 둘은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회계법인에서 일했다. 기업 편에서 숫자를 만지는 일이 안 맞는 옷처럼 불편했다고 한다.

둘은 로스쿨 진학으로 탈출구를 찾았다. 장석우 변호사는 과거 문제의 삼정회계법인에서 일한 적이 있다. 그는 “직접 담당한 일은 아니지만 삼정의 2009년 보고서가 쌍용차 정리해고 근거가 됐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됐다”며 “이때의 부채의식이 지금의 길을 선택하게 한 것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장 변호사는 2013년 12월 법률사무소 시민 소속으로 쌍용차 정리해고 사건 공동변호인단으로 활동했다가 법률원에 합류했다.

노종화 변호사 <정기훈 기자>


- 회계사에서 어떻게 변호사가 됐나.

"대학 때 자치언론에 있으면서 4대강 사업 반대운동이나 기륭전자 사건을 취재한 적이 있다. 그런데 활동가가 되는 것은 어려울 것 같아 일단 취업을 했다. 전공이 경영학이어서 공부가 생각보다 잘 맞았다. 회계사 자격증을 땄다. 2010년 12월부터 회계법인에서 일했는데 1년이 지날 무렵부터 회사 나가는 것이 무척 싫어졌다. 기업 재무분석이나 감사 같은 일이 굉장히 형식적으로 이뤄졌다. 답을 정해 놓고 일이 진행되는 식이었다. 선배들은 대기업 클라이언트를 쫓아다녔다.

안에서 잘못된 것을 바꾸는 것은 어려웠다. 일단 공부부터 하자는 생각에 로스쿨 입학을 준비했다. 비슷한 시기에 쌍용차 사건을 접하고 공지영씨의 <의자놀이>를 읽었다. 막연히 노동자를 위한 법률가라면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노종화)

- "회사 재무위기 작출(作出) 방지"를 활동목표로 내걸었다. 어떤 사례가 있나.

"대표적인 사업장이 동광기연과 기륭전자다. 기륭전자부터 말하자면 원래는 탄탄한 코스닥 상장회사였다. 하지만 나쁜 마음을 가진 대주주가 자기 돈도 아닌 기륭전자 돈으로, 소위 말하는 LBO(leveraged buy out) 형태로 회사를 인수했다. 그런 뒤 자기 소유였던 부실기업을 수백억원을 들여 산다. 이어 사업은 하지 않고 부동산 같은 자산을 팔아 치운다. 결국 법인은 폐업했고, 노동자는 거리로 내몰렸다. 동광기연은 2013년까지만 해도 우량기업이었다. 동광그룹 중심사였다. 그런데 오너 아들들이 회사를 하나둘씩 세운다. 그쪽에 새로운 일감을 몰아준다. 그동안 해외계열사 수출을 담당했던 동광기연의 일감이 오너 자식들에게 넘어갔다. 동광기연 제조부문은 분할 후 폐업했다. 재무제표가 나오더라도 금융회사나 투자자 외엔 별로 보는 사람이 없다. 비상장 기업은 더욱 그렇다. 배임행위를 하더라도 외부에 포착되지 않는다. 이들에 대한 감시를 노조가 해야 한다. 기륭전자도 그렇고 동광기연도 그렇고, 사태가 발생하고 나서야 고소·고발을 했다. 발 빠른 대응이 아쉽다."(장석우)

장석우 변호사 <정기훈 기자>


"선제적 대응 절실 … 교육사업 강화"

- 모든 기업을 사전에 점검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나. 어떤 기준으로 사업장을 선정할 것인가.

"고민하고 있는 내용이다. 지금껏 문제 기업에 대한 노동계 대응은 한 발 늦을 수밖에 없었다. 모든 사업장 재무제표를 들여다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업장 중 노조 요청이 있고 난 뒤에야 문제를 살펴봤다. 동광기연이 그런 케이스다.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장석우)

"그래서 저희가 기업경영분석실을 만들어 인터뷰도 하고 홍보도 하려는 것이다. 일단은 노조가 먼저 찾아오는 것이 중요하다. 사업장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조직이 노조이기 때문이다. 비상장 회사의 일감 몰아주기 같은 일은 제보 없이 잡아내기 어렵다. 현장 노조도 재무제표에 대한 지식을 갖춰야 한다. 기업경영분석실이 교육사업을 활발히 진행하려는 이유다. 노조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교육요청을 해 주시기 바란다."(노종화)

노동자 기업경영분석실은 내년부터 ‘찾아가는 기업경영분석 교육’을 한다. 장석우 변호사는 “여러 강의 중 재무제표 교육을 한 꼭지 배분하는 수준이 아니라 현장을 직접 찾아가 기업경영분석 교육을 집중적으로 할 것”이라며 “예컨대 정책 담당자들을 모아 자기 지역에 속한 사업장의 재무제표를 공부하고 분석하도록 해서 수업의 열의와 흥미를 돋울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노동자 입장 경영분석, 쓴소리 아끼지 않겠다"

- 협업을 원활히 하기 위해 현장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이미 있는 제도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해 줬으면 한다. 노사협의회가 굉장히 형식적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노조가 회사에 경영상황을 공유하자는 요구를 보다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노동이사제 실현으로 가는 과정에서 노조가 우선 있는 제도부터 활용해야 하지 않겠나."(노종화)

"일단은 노조에 기업경영분석 담당자가 있어야 한다. 있더라도 집행부가 바뀌면 사업이 중단되는 경우가 잦았다. 조사통계 담당자를 두고 집행부가 바뀌더라도 인수인계를 철저히 해 사업이 오랜 기간 지속되도록 해야 한다."(장석우)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여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특히 전문영역에서 그렇다. 제 자신의 경력과 경험이 부족하다고 여긴다. 그렇다고 크고 유력한 회계법인이 전문가적인 양심을 갖고 있느냐, 아니라고 하겠다. 자료와 수치는 겉으론 객관적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전제하느냐에 따라 의미와 해석이 달라진다. 그런 의미에서 자료와 수치는 무기이자 수단이다. 노동자들도 무기를 하나쯤은 가져야 한다. 부족하지만 노동자에게 이런 무기를 갖게 한다는 생각을 갖고 열심히 하겠다."(노종화)

"회계는 자본만의 점유물이 아니다. 일반 조합원들에게 회계는 어려운 것, 자본의 착취도구쯤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노동자가 회계를 잘 알고 활용하면 기업을 압박하는 무기가 된다. 지금까지 여러 소송에 참여하면서 아쉬웠던 것이 ‘왜 노동자를 위한 회계법인은 없을까’였다. 도와주시는 분들은 많은데 다 개인사무소다. 노동자를 위한 회계법인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때까지 기업경영분석실이 징검다리 역할을 하겠다. 회사 자료를 노동자 관점에서 해석하고, 때로는 쓴소리도 하겠다."(장석우)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