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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 년의 상흔
   
▲ 이은호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 실장

19년 전 부도난 국가의 국민이 그것이 마치 자신의 책임인 양 금모으기 운동에 나서던 그 시절, 나는 지역신문 기자였다.

장롱 속 금붙이가 모아져 227톤이 만들어졌지만 서민들의 어깨는 여전히 그보다 무거웠고 그들의 미래는 어둡기만 했다.

당시 나는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릴레이 인터뷰 기사를 썼다. 지역 시민운동가와 노동자, 상인 등 다양한 사람들의 희망을 들었다. 그들의 마지막 말은 한결같았다. "우리 다음 세대는 정의롭고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얼마 전 <기억의 밤>이라는 영화가 개봉했다.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인 <기억의 밤>의 또 다른 주인공은 '그 시절'이다. 아이엠에프 외환위기는 사회와 가족 공동체를 해체시켰고, 영화는 그 시절을 이야기한다.

경제위기를 마주한 우리 사회가 이처럼 허약했던가는 '미스터리'였고, 그 결과는 '스릴러(공포)'였다.

그러나 현실은 영화보다 더 영화적이다.

외환위기는 국민 가슴속에 각자의 상흔을 남겼고, 그 흔적들이 현재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는 2000년대 초반 "여러분, 부자 되세요" 열풍을 넘어 2010년대 "안녕들 하십니까"로 넘어온다.

기업에 무한한 자유를 주며 부자가 되기를 부추겼지만 무한경쟁에 내몰린 노동자들이 결국 서로의 안녕함을 묻는 사회가 돼 버렸다.

안녕을 선택하기 위해 1997년 이후 청년들의 꿈은 '하고 싶은 일'이 아닌 '안정적인 일'로 바뀐다. 그들은 시험에 매달렸고, 경쟁은 일상이 됐다.

하기에 오늘 비정규 노동자의 정규직 직접채용에 대해 "결과의 평등 NO, 기회의 평등 YES"라는 젊은 정규직 노동자들의 피켓과 무임승차에 반대한다며 "임용고시 합격하면 되지"라는 예비노동자와 기존 교사들의 냉소는 지난 20년이 만들어 온 결과물이다.

나는 예전 인터뷰를 다시 생각한다. 다음 세대는 행복했으면 좋겠다며 희망을 꿈꾸던 우리는 20년이 지난 지금 행복한가, 이 사회는 정의로운가.

미국의 정치철학자 존 롤스는 "정의는 원초적으로 평등한 상황에서 어떤 원칙에 동의해야 하는가를 묻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사람들이 자기가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속할지 모르는 상황, 즉 '무지의 장막' 뒤에서 합의한 원칙이 공정하다고 얘기한다.

계층과 성별, 인종과 민족, 정치적 견해나 종교적 신념을 모르는 상황에서 어느 누구도 우월한 위치에 놓이지 않는다면, 그때 합의한 원칙은 공정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나는 재벌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가난한 사람일 수도 있으니 그들이 도움받지 못하는 제도는 피해야겠지’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롤스가 말하는 정의론에 동의하지만 그의 ‘무지의 장막’을 현실 사회에 적용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지금 사회는 각자 입장에서 최선의 선택을 추구하게 되면 계속해서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결코 정의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향하는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라면 그리고 지난 20년이 만들어 낸 구조가 잘못됐음을 인지한다면 함께 살 수 있는 지혜를 찾아야 한다.

"정의? 대한민국에 아직 그런 달달한 것이 남아 있긴 한가?"라는 어느 영화 대사의 질문에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 실장 (labornews@hanmail.net)

이은호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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