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현철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인류는 질기고도 오랜 차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왕족·귀족과 평민·노예라는 혈통으로, 섬기는 신과 믿음의 방식이 다르다는 이유로, 민족이나 인종과 피부색으로, 남성과 여성 혹은 기타 성별로 차별해 왔고 불평등을 조장했다. 신분제가 사라진 오늘 사농공상이나 반상을 구분해 사람을 가르면 참지 않을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근로기준법 59조나 열정페이·갑질·비정규직·이주노동·고용허가제·현장실습생, 이런 시사성 있는 단어들을 같이 꿸 수 있는 단어는 여전히 불평등과 차별이다. 중세의 잔혹성에 비하자면 약간의 차이가 있을지도 모르나 21세기 노동 현장에서 차별은 만연하다. 어쩌면 잔혹성에 있어서도 여전할 수 있다. 어떤 일을 하는지에 따라 차별이 존재한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원청인지 하청인지에 따라 차별이 발생한다. 차별은 임금에서 확인되기도 하지만 임금 수준은 또 다른 차별을 낳는다. 실제로 그런지도 따져 봐야겠지만 숙련공과 의사의 일당이 비슷한 것은, 이주노동자와 자국노동자의 급여가 비슷한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한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혹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차별받고 억압받고 심지어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차별은 만연하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불평등은 "차별이 있어 고르지 아니함"이며 차별은 "둘 이상의 대상을 각각 등급이나 수준 따위의 차이를 두어서 구별함"을 뜻한다. 차별과 불평등을 다듬어 고르는 것이 법이고, 해서 법 앞에는 만인이 평등해야 한다고 했다. 차이와 차별은 다르다고도 했다.

법이 있다. 근로기준법은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향상시키며 균형 있는 국민경제 발전을 꾀하는 것"을 목적으로 주로 사용자가 지켜야 할 근로조건 기준을 정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쾌적한 작업환경을 조성함으로써 근로자의 안전과 보건을 유지·증진"하기 위해 주로 사업주가 지켜야 할 산업안전·보건에 관한 기준을 확립하고 그 책임 소재를 명확하게 했다. 고용특례업종, 영세업종(업주) 보호, 공익필수직종,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등 여러 가지 설명을 곁들여 이들 법의 적용범위에 ‘차이’를 두는 것은 노동자들에게는 차별이 된다.

사용자와 사업주가 지켜야 할 기준 적용에 있어 예외(특례)는 결국 불평등을 낳는다. 예외는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인정돼야 하며 그 어쩔 수 없는 이유라는 것이 누구의 이해에 맞닿아 있는 것인지를 살펴야 한다. 노동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향상시키고, 노동자의 안전과 보건을 유지·증진하기 위한 법의 예외는 그 목적(법익)에 충실히 부합하는 한에서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인간다운 노동을 위해 차별을 철폐하는 관련 법률 개정 과정은 늘 난항을 겪는다.

두 발로 걷던 짐승을 ‘인간’으로 만든 것은 노동이다. 노동을 통해 가치를 생산하기에 인간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이제 오로지 자신의 노동을 통해서는 인간다움을 인정받지 못하는 시대가 아닌가. 인간다움은 출생기록을 통해 확인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정치적인 발언권을 획득하고 자신의 노동에 대해 정당한 가치와 동등한 존중을 받는 것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그것을 가로막는 일상 속에 만연한 차별과 그에 대한 불감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물론 차별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그 본질에 직면하기 어렵게 만드는 이중의식(double consciousness)의 문제도 살펴야 한다. 어떤 차별에는 예민하고 어떤 차별에는 둔감한 것도 돌아봐야 한다. <군함도>라는 영화를 통해 식민지 시대 강제징용과 민족의 수난에 대한 분노와 더불어 인류적 감성으로 당시 광업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실태를 들여다보기도 하고, 우리 사회 농업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을 오버랩해 보는 것도 필요하다.

차별에 둔감한 사회는 보상과 대가에 익숙해진 사회이기도 하다. 대가를 받거나 보상을 해 주는 것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차별은 없어져야만 해결되는 것이다. 물론 없애기 위해서는 근저의 불균형한 권력관계 등을 포함한 심층적인 기제에 대한 분석과 논의도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일단 차별을 부끄러워하자. 타인에 대한 차별로 얻은 것들에 부끄러워하자. 차별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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