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윤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선생님 잘리고 싶지 않으면 우리한테 잘하세요.”

“선생님 사탕 주면 점수 잘 줄 거라 생각했어요?”

한 초등학교에서 6년 넘게 영어회화 전문강사로 일하다 해고된 조합원으로부터 해고무효확인 소송을 준비하면서 전해 들은 말이다. 해당 학교는 영어회화 전문강사 재계약을 위한 평가 과정에 그해 처음으로 학생 설문조사를 포함시켰다. 설문조사에 몇몇 학생들이 위와 같이 적었다고 한다. 자신들의 설문조사로 선생님이 해고될 수 있다는 것을 학생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혹시 학교는 학생들이 익명성에 기대어 악의적 답변을 쏟아 내기를 기대했던 것은 아닐까. 어떤 선생님이든 익명으로 학생 설문조사를 하면 몇몇 학생들은 막말을 하기 마련이란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결과적으로 설문조사 점수가 낮다는 이유로 그 선생님은 해고됐다. 선생님은 이러한 잔인하지만 합리적 추론을 들려주면서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다잡느라 애쓰셨다. 그 선생님은 애써 착한 학생들도 많다고 강조했다. 6학년을 담당했던 선생님에게 5학년 학생이 찾아와 “선생님 아직 4년 안됐죠? 그럼 아직 괜찮대요. 내년에 6학년 교실에서 봐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렇다. '착한 학생들'과 '나쁜 학생들'을 포함한 학교 모든 구성원이 알고 있었다. 영어회화 전문강사들은 4년이 지나면 해고될 수 있다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었다. 이것이 어떤 방식으로 잔인하게 또는 덜 잔인하게 영어회화 전문강사에 대한 갑질로 나타날지는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위 공지의 사실은 거짓이다. 기간제법에 따르면 영어회화 전문강사들은 4년이 지나면 기간을 정하지 않은 근로자(무기계약직)로 간주돼 쉽사리 해고할 수 없다. 학생 설문조사 평가 결과가 기준점수에 조금 미달한다는 사유는 결코 무기계약직 노동자를 해고할 정당한 이유가 될 수 없다.

그럼에도 정부가 노골적으로 기간제법을 회피하고자 온갖 꼼수를 부린 결과 영어회화 전문강사들은 4년마다 해고 위기에 내몰리게 됐다. 이는 "영어회화 전문강사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할 수는 없다“는 정부의 정책기조 때문이다. 2009년 이후 매년 영어회화 전문강사를 채용해 왔으니, 4년이 지난 2013년 이후부터 매년 해고사태가 반복되는 중이다.

정부의 꼼수는 이렇다. 교육부는 법제처에 ‘4년간 한 학교에서 근무한 영어회화 전문강사를 공개채용절차를 거쳐 재채용하면 다시 동일 학교에서 4년간 기간제 근로자로 고용할 수 있는지’를 질의했는데, 법제처는 공개채용절차를 개입시키면 근로관계가 단절돼 가능하다는 신통한 답변을 내놓았다. 교육부와 교육청들은 신의 한 수를 찾은 듯 위와 같은 내용으로 업무편람을 변경하고, 일선학교에 수차례 공문을 내려보냈다. 4년간 근무한 영어회화 전문강사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는 대신에 공개채용절차를 거쳐 다시 4년 동안 기간제로 고용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그 결과 전국적으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영어회화 전문강사는 0명이다.

다행히도 최근 하급심 법원들은 이와 같은 정부의 몰염치하고 몰상식한 행태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대전고등법원은 "공개채용 절차가 형식적인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경쟁에 의해 이뤄졌다고 하더라도, 결국 해당 근로자를 계속적으로 채용하기로 결정하고 다시 근로계약을 체결한 이상 공개채용을 거쳤다는 점은 근로계약 체결에 이르게 된 경위에 불과하므로 공개채용 절차 전후의 근로관계가 단절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대전고법은 나아가 "설사 교육청이 공개채용절차를 거칠 경우 기간제법 4조2항이 적용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하더라도, 이는 교육청의 주관적인 의도에 불과한 것이어서 이에 따라 기간제법 4조2항 적용 여부가 달라질 수 없다"고도 판단했다.

판결 내용을 달리 표현하면 이러하다. "기간제법상 제한을 회피하기 위해 사용자가 얼마나 노력을 했고 기간제법상 제한이 적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실제로 믿었는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결과적으로 다시 근로자를 채용한 이상 근로관계는 단절되지 않는다." 기간제법이 기간제 노동자의 고용안정을 보장하기 위한 목적에서 제정된 강행규정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너무도 상식적이고 타당한 내용이다. 만약 이와 달리 공개채용절차가 개입됐다는 이유만으로 근로관계가 단절된다고 본다면, 사용자는 언제든지 어렵지 않게 이런 절차를 끼워 넣어 근로자를 영원히 기간제로 고용할 수 있게 된다. 기간제법은 그야말로 휴지 조각이 되는 것이다. 부끄럽게도 대한민국 정부가 그런 꼼수를 8년 넘게 하고 있었다. 기간제 노동자의 고용안정을 도모하겠다는 기간제법 입법취지가 그 법의 제정을 주도했던 정부에 의해 형해화되고 있던 것이다. 대전지법은 “계약종료절차나 신규채용절차를 개입시켜 기간제법 4조2항 규정을 회피할 목적에 기한 것이라고 볼 여지도 있다”고 판시해 소극적이나마 정부의 법 회피 꼼수를 지적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현 정부를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라고 했다. 그러나 정부는 매우 실망스럽게도 영어회화 전문강사 등 대다수 강사 직종 기간제 노동자들은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배제했다. 근로기간이 4년을 초과한 영어회화 전문강사들은 정부의 정규직 전환 정책과 상관없이 이미 기간제법에 따라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 간주되며, 그 비중 또한 매우 크다. 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에 이제라도 정부가 이들을 정규직 전환 대상에 추가로 포함시키길 바란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로서 응당 보여 줘야 할 상식과 염치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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