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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계 제약·유통사 노사갈등 연례행사] 도대체 누가 한국에선 이래도 된다고 했나노동관계법 피하려 찍퇴·강퇴에 희망퇴직 남용 … 한국 노동자 경시문화 깔린 듯
   
▲ 민주제약노조 쥴릭파마코리아지부가 지난달 24일 서울 서초구 서래마을 크리스토프 피가니올 사장 자택 앞에서 출근선전전을 했다. 쥴릭파마코리아지부
“사장이 프랑스 사람인데 노사관계를 상생이 아닌 경쟁 마인드로 접근하는 것 같아요. 임금교섭이 결렬되자 책임을 노조에 돌리며 공격하고 있습니다. '한국인들에게 임금을 왜 이렇게 많이 줘야 하느냐'는 말까지 했다고 들었어요.”

임금교섭 파행으로 갈등을 빚고 있는 다국적 제약 유통업체 쥴릭파마코리아㈜ 노사 간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박기일 민주제약노조 쥴릭파마코리아지부장은 3일 “조정까지 갈 일도 아닌데 임금교섭 막판에 사장이 실무합의안을 틀어 버렸다”며 “사내메일을 통해 전 직원을 상대로 노조에 대한 악의적인 선동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쥴릭파마코리아, 사장 자택 앞 시위에 악의적 선동

노사는 올해 3월부터 9월까지 14차례 임금교섭을 했다. 지부에 따르면 마지막 교섭에서 양측은 회사가 내놓은 기본급 3.1% 인상과 경영성과급 150만원 지급에 의견을 모았다. 그런데 교섭에 참석하지 않았던 크리스토프 피가니올 사장이 실무합의안을 거부했다. 지부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을 신청했다. 서울지노위는 실무합의안에 ‘2018년 임금협약시 전년도 경영실적 반영’과 ‘비용절감 노력’이 더해진 조정안을 내놨다.

박기일 지부장은 “회사는 마지막 실무합의안이 노조의 일방적인 주장이라며 조정안조차 거부했다”며 “조정안에 포함된 ‘비용절감 노력’ 방안에 대해서도 회사는 연차일수 삭감을 주장했다”고 비판했다.

임금교섭 파행으로 갈등이 심화하자 지부는 성실교섭을 요구하며 사장 자택과 주한 프랑스대사관 앞에서 출근선전전과 1인 시위를 했다.

그러자 사장은 지난달 28일 사내 메일을 통해 “아이가 아버지에 대한 폭력적인 구호가 쓰인 현수막과 그 앞에 마스크를 쓰고 줄 지어 선 어른들의 모습을 보며 학교로 갔다”며 “(노조는) 가족과 개인을 공격하고 언론과 고객사를 우리 문제에 끌어들이는 대신 협상과 대화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에 지부는 “집회에 참가한 직원들은 경찰에 신고된 범위 내에서 주장과 요구를 표현했을 뿐 불법행위는 없었다”며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들으려 하지 않으면서 아이 불안만 강조하는 지금의 상황이 정상이냐”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지부 관계자는 “쥴릭파마코리아는 지난 6년 동안 매년 임금·단체교섭과 비정규직 문제를 놓고 갈등을 겪었다”며 “노사 신뢰가 무너지고 관계가 파탄 난 상황인데도 회사가 악의적인 선동으로 갈등을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찍퇴·강퇴 왜 자꾸 일어날까

다국적 제약회사 노사갈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툭하면 희망퇴직을 가장한 강제퇴직·찍어퇴직 논란이 불거진다.

최근 미국계 제약회사인 한국BMS제약이 경영상 이유로 특정 영업부서만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해 논란이 일었다. 노동자들은 “30명밖에 안 되는 바이롤러지(Virology) 영업직 정규직을 대상으로 하는 희망퇴직은 결국 찍퇴·강퇴로 점철된 부당해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3일 현재 8명이 희망퇴직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계 글로벌 헬스케어 회사인 ㈜박스터코리아는 올해 초 권고사직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직원들을 회유·압박해 논란에 휩싸였다. 사직을 거부한 직원에게 퇴직금 추가 지급을 제안한 사실도 드러났다.

노조가 없는 사업장 상황은 더 심각하다. 한 다국적 제약회사의 경우 경영악화를 이유로 전 직원에게 사직서를 받은 뒤 원하는 사람의 사직서만 처리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찍퇴·강퇴를 막는 희망퇴직남용방지법을 제정하고 정리해고 요건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럼에도 다국적 제약회사에서는 정리해고와 다를 바 없는 희망퇴직이 남용되고 있다.

노동계는 다국적 제약회사의 반복되는 노사갈등과 희망퇴직 남용 이면에 책임 회피와 한국에 대한 경시 문화가 존재한다고 입을 모았다. 민주제약노조 관계자는 “다국적 회사가 국내 제약회사보다 법 위반사항이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교섭이나 희망퇴직 등의 모든 책임을 본사에 돌리며 방관자적 태도를 보인다”며 “드라마 <미생>에 나온 ‘한국에서는 그래도 된다’는 대사처럼 일부 다국적 회사 대표들은 한국을 경시하며 한국 노동자를 대화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장환 노조 정책실장(공인노무사)은 “대부분의 다국적 제약회사가 철저한 자본가 마인드로 ‘돈만 주면 된다’는 생각으로 노동자를 대한다”며 “고용안정이나 노동조건 개선에 대한 개념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다국적 제약회사에서 희망퇴직을 가장한 찍퇴·강퇴가 횡행한 이유에 대해 “정리해고를 하기 위해서는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경영상 이유가 명확해야 하지만 매년 본사로 수백억원의 수익금을 보내는 다국적 제약회사의 경우 경영상 어려움은 남의 일”이라며 “법을 위반하지 않으면서 자유롭게 노동자를 정리하는 방법으로 희망퇴직을 하고 고연봉자나 저성과자·눈엣가시 노동자들을 찍퇴·강퇴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장 실장은 “다국적 제약회사의 찍퇴·강퇴를 철폐하고 원만한 노사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사용자단체 구성을 통한 산별교섭을 정착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이은영  ley1419@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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