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민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지난 1월 통신업체 콜센터에서 일하던 현장실습생이 자살한 데 이어 얼마 전 제주에서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이 기계에 끼여 사망했다. 누군가는 현장실습 문제가 아니라, 노동현장이 문제라고 한다. 맞는 말이기도 하다. 청소년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사회는 따로 없다. 우리 모두, 누구든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하는 사회에서만 청소년 노동자도 안전하고 건강할 수 있다. 주 40시간 일하고도 잘 살 수 있는 사회에서 청소년 노동자도 12시간 근무, 주 6일 근무를 안 할 수 있다. 사업주가 잦은 고장을 일으키는 기계를 수리하지 않고 방치할 때, 노동자가 작업을 거부할 수 있는 사회였다면 제주 현장실습생도 본인의 안전을 먼저 요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위험한 작업은 2인1조로 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에서 청소년 노동자도 둘이 해야 하는 일을 혼자 하다 죽지 않을 수 있다. 콜 처리 건수를 근거로 성과급으로 급여를 지급하며, 제때 식사하기도 어려운 콜센터는 청소년이든 아니든 건강하게 일하기 힘든 곳이다.

그러나 그것이 지금의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을 유지하자는 근거가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교육계 일각에서는 ‘현장실습 없이 직업교육을 어떻게 하느냐’며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을 폐지하라는 주장에 반대한다. 어차피 졸업하면 취업할 거 몇 달 일찍 학교에서 취업처를 알아주기까지 하는 게 뭐가 잘못이냐고도 한다.

하지만 특성화고 현장실습과 관련된 교사·학생·동료노동자·사업주 누구도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을 현장실습이라 부르지 않는다. ‘취업’이라고 부른다. 실습이 아니라 취업이니, 전공과 아무 관련 없는 곳으로도 간다. 금융경영과를 전공한 학생이 외식업체 조리실에서, 복지경영을 전공하고 카드사 콜센터에서 ‘실습’한다. 사고가 난 두 학생도 전공과 관련 없는 업체에서 ‘실습’ 중이었다.

‘취업’이기 때문에 교사들은 다들 업체가 ‘갑’이고 학교가 ‘을’이라고 한다. 한 명이라도 취업을 더 시켜야 하는 입장에서, 교사들이 업체를 걸러 내고 감독하기 어렵다. 전공과 관계없이 아무 데나 취업하게 되니 교사 입장에서도 업체마다 무엇을 확인하고, 학생에게 어떤 점을 주의시켜야 할지 알 수도 없을 것이다. 하루 7시간만 일해야 하는 현장실습표준협약서와 이면으로 하루 10시간씩 일하는 근로계약서가 횡행하는 배경이다. 사고를 당한 두 학생 모두 표준협약서와 근로계약서 내용이 달랐다.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을 폐지하자는 것이 직업교육을 포기하자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다른 다양한 현장실습을 보장하라는 것이다. 전공과 관련 있고 정말 가서 배울 만한 사업장에 교사 인솔하에 훨씬 짧은 기간 실습하는 것, 생산부서에 곧바로 투입되는 대신 업체나 관련 기능협회 등에서 운영하는 직업훈련기관에서 일정 기간 교육을 받는 것, 실제 기능이 있는 노동자가 학교 실습실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는 것을 보장하라는 말이다. 이미 전혀 ‘실습’이 아니고 절대 ‘교육’이 아닌 공간으로 몇 달 일찍 특성화고 학생들을 배출하는 지금의 ‘방기’를 중단하자는 것이다. 직업교육과 현장실습의 판을 완전히 새로 짜자는 얘기다.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을 안 하고 학교에 있는 동안 더 익힐 것도 많다. 근골격계질환은 무엇이고, 감정노동은 무엇인지, 이들로부터 스스로를 어떻게 보호할 수 있는지 특성화고 학생들이 직접 현장에 있는 노동자들에게 배우면 좋겠다. 위험할 때 일을 멈추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자 기본적인 권리라는 것, 일하다 다치거나 아플 때 치료받는 것도 권리라는 것, 노동조합에 가입한 노동자가 더 건강한 이유는 무엇인지도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 이렇게 배운 젊은 노동자들이 졸업 후 근골격계질환에 찌들고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현장을 낯설게 느끼기를, 낯설고 힘든 만큼 바꿔 낼 힘을 갖기를 기대한다. 그럴 때 우리는 우리 모두, 누구든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하는 사회, 청소년도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사회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산업체 파견 현장실습 폐지 입법 청원은 'bit.ly/산업체파견현장실습폐지'에서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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