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재희 건설노조 선전실장

“건설근로자법이 뭡니까?”

11월28일 민주노총 건설노조 2만 조합원이 국회 앞에 집결한 날, 기자들의 문의가 빗발쳤다. 1년 동안 받을 전화를 이날 다 받았을 것이다.

“건설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을 줄여서 건설근로자법이라 하고요, 건설노조는 건설근로자법을 개정해 퇴직공제부금을 인상하고 덤프·굴삭기 같은 건설기계 노동자들에게도 퇴직공제부금을 적용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퇴직공제부금은 뭡니까?”

“남들 다 받는 퇴직금을 건설노동자들은 하루 4천원씩 일한 날만큼 적립하는 제도를 퇴직공제부금 제도라고 합니다. 건설노동자들이 한 달이면 15~20일 정도 일하니까 한 달이면 70만원 정도 쌓이고요. 일반 노동자 한 달치 퇴직금의 23%에 불과합니다.”

총파업 상경투쟁이 있던 날, 국회에선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가 열렸다. 근로기준법·건설근로자법 등이 논의될 예정이었는데, 일단 여야 간 이견이 없는 건설근로자법을 우선 논의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내심 법안이 통과될 거라 기대했다. 너무 오래 기다렸기 때문에 간절하게 기대했다. 2008년부터 퇴직공제부금은 4천원에서 인상되지 않았다. 그러나 고용노동소위는 오전 중 안건 순서조차 정하지 못했고, 오후 2시에 속개한다던 회의는 오후 2시30분이 돼서야 재개됐다.

11일부터 두 명의 건설노동자가 여의도 광고탑에서 건설근로자법 개정을 촉구하며 18일째 고공농성을 하고 있었다. 건설노동자들은 고공농성장 등지에서 행진을 통해 여의도 국민은행 앞으로 집결했다. 2시30분부터 예정됐던 결의대회가 시작됐다.

고용노동소위는 노동시간단축 근로기준법을 놓고 갈등을 빚어 왔다. 이날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표결처리는 없다. 1명이라도 반대하면 처리하지 않겠다”는 선언이 있었다. 일부 국회의원이 건설근로자법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지속하면서 결국 오후 4시께 소위는 법안 논의도 못하고 끝났다.

“지금이 집회나 하고 있을 때냐.”

일찍 소식을 접한 건설노동자들은 절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결의대회를 마치고 건설노동자들은 국회를 향해 분노를 쏟아 냈다. 순식간에 여의도 일대가 교통체증을 빚었다. 전화벨은 끊이지 않고 울렸다.

“의도한 겁니까?”

“우발적 상황입니다. 의도치 않게 교통체증을 유발하고 퇴근길 통행에 불편을 드려 가슴 깊이 죄송하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시민 불편으로 인한 채찍질, 달게 받겠습니다.”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2위가 마포대교, 3위가 건설노조였다. '교통체증' '시민불편'을 다룬 기사가 줄을 이었다. 가슴 한쪽에 응어리가 맺혔다.

“죄송합니다만, 우리도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대한민국 노동자의 10%는 건설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대부분 40~50대 가장들이다. 이 나라에서 가족 중에 건설노동자가 한두 명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건설노동자들은 휴일수당은커녕 연장수당도 없이, 근로기준법은 휴지조각에 불과한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1년 평균 200조원의 공사금액이 소요되는 건설현장이다. 이 중 공공공사가 40% 규모다. 건설산업이야말로 공공산업인데,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선언하는 국민주권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대한민국을 건설하는 건설노동자들이 과연 국민 대접을 받고 있나.

촛불정국은 나라 안의 큰 도둑을 잡았다. 건설노동자들은 법과 제도를 정비해 다시는 큰 도둑이 들지 않도록 하자는 요구를 하고 있다. 이를테면, 퇴직공제부금을 전자카드로 처리해 투명하게 적립할 수 있도록 하고, 임금은 공사금액에서 따로 떼어내 지급하고 발주자가 관리·감독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는 퇴직공제부금 인상과 건설기계 전면 적용과 함께 건설근로자법 개정안에 담겨 있는 내용이다. 이를 통해 건설노동자들은 체불이 근절되고, 건설현장은 투명하게 개선되며, 대한민국 부조리도 척결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런 법·제도가 개선되면 건설현장은 질 좋은 청년일자리가 될 것이다. 그런 법·제도를 막고 있는 건 국회다.

28일 결의대회 건으로 노조 지도부에 대한 사법처리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한편으로 결의대회 때문에 그렇게 듣고 싶었던 질문들을 듣고 있다.

“건설근로자법이 뭡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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