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종국 시민안전센터 대표

지난해 경주 지진에 이어 또다시 진도 5.4의 지진이 경북 포항을 강타했다. 지진을 처음 겪어 본 주민들은 아직도 집에 못 들어가고 그날의 악몽과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응시생과 학부모들까지 가슴 졸이게 했던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언론에서는 지금까지도 연일 ‘내진설계’ 타령만 하고 있다.

그렇다면 내진설계가 돼 있는 건축물들은 과연 안전할까. 무색하게도 지은 지 3년밖에 안 된 내진설계 도입 아파트도 이번 지진으로 벽에 균열이 가 버렸다. 특히 필로티 건축물은 더욱 피해가 컸다.

이제부터 냉정을 되찾아야 한다. 천재지변에 의한 재해만 탓할 게 아니라 우리나라 건축법(표준시방서)과 허술한 감리제도를 꼼꼼히 따져 봐야 한다. 지진으로 건축물 벽에 균열이 발생하고 멀쩡한 콘크리트 도로가 갈라지자 그 내부의 부실시공 민낯이 속속 나타나기 시작했다. 당연히 뼈대 역할을 하고 있어야 할 철근 배근이 곳곳에 생략됐거나 규정보다 약하게 시공이 돼 있는가 하면 도로 포장을 하기 전에 균열을 방지해야 할 와이어 메시(일체형 철근배근)가 돼 있는 곳은 거의 없었다. 시멘트 강도가 약하거나 부실하게 시공된 외벽 마감재 벽돌들은 힘없이 떨어져 시민들의 목숨을 위협했다. 언제 터질 지 모르는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노후 도시가스배관들은 시한폭탄이나 다름없었다.

기상청 지진통보 현황에 따르면 2010년 5회에 불과했던 규모 3.0 이상 지진이 지금은 17회 이상으로 증가하고 있다. 진도 5.0 이상의 강한 지진이 발생하는 주기도 점점 짧아지고 있다고 한다. 행정안전부 조사 자료에 따르면 국내 내진설계 대상 공공시설물 10만5천448곳의 내진율은 42.4%에 불과하다. 전국적으로 내진설계가 된 건물은 35%가 넘지 않는다.

이번 지진으로 벽체가 없이 기둥 몇 개로 건축물 전체를 지탱하는 필로티(Pilotis) 건축물에 대한 안전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건축 미관과 지하 터파기 토목공사를 하지 않아도 되므로 정부에서 2002년 ‘다세대·다가구 주택 1층 주차장 설치 의무화’ 조치에 의해 이제는 초고층 아파트에서도 일반화된 공법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필로티 건축물은 과중한 수직하중에는 견디지만 깊은 땅속에서 가해지는 수평하중 흔들림에는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런 설계는 건축사나 비전문가들이 5층 이하 건물의 내진설계를 할 수 있게 되면서 이제는 일반화돼 버렸다. 또 지진에 연약하게 만든 액상화 현상에 대비해 고층 건축물은 기초 부위에 최소 10미터 이상 되는 기초말뚝(앵커파일)를 촘촘히 박아 넣어야 한다. 그러나 이미 언론에 몆 차례 보도됐듯이 곳곳에 이 기초말뚝이 설계와 달리 생략된 채 시공되고 있다.

건축물 뼈대인 철근은 콘크리트 타설에 장애가 돼 공사가 지연된다는 이유로 허술하게 결속시킨다거나 공기단축을 위해 콘크리트 슬러지 원료에 임의적 화학첨가제(강화제)를 넣어 빨리 굳게 공사를 하고 있다. 충분한 양생기간을 지키지 않고 공기를 단축하기 위함이다. 도심의 무분별한 난개발로 발생하는 싱크홀도 지진 응력을 증가시켜 연약지반을 만들고 있다.

국민을 혼돈하게 만든 내진설계 개념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내진설계를 위해서는 최대 가속도 값과 설계응답 스펙트럼이 주어져야 한다. 지진에너지 크기를 평가하는 척도(Magnitude)에서 규모 0.2가 증가하면 에너지는 2배 증가하고, 규모 1이 증가하면 에너지는 32배가 증가한다. 건설시방서에서 규정하고 있는 내진설계 개념은 “지진에 대해 구조물의 부분적인 피해는 허용하나 구조물의 완전 붕괴는 방지해 인명을 보호하고자 하는 개념”으로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시공시 구조계산서에서 산정된 철근을 한 가닥이라도 누락시킨다든지 설계된 단면을 임의로 줄였다면 아무리 구조물이 안전하다고 하더라도 내진설계와 거리가 멀다. 무분별한 베란다 확장과 설계변경·리모델링·수직증축 등 모든 것이 건축물 안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지금 정부와 언론에서 만병통치약처럼 말하고 있는 내진설계는 부재의 연성을 확보하기 위해 모멘트를 받는 부위에서 주철근의 겹이음을 금지하고 띠철근 마감처리, 띠철근 간격 같은 철근 구조세목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것이 내진설계 대책이라고 안심한다면 큰 착각이다. 내진설계는 저비용으로 지을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일 뿐이다. 비용이 더 들더라도 안전한 '제진설계' 나아가 '면진설계'까지 일상화해야 한다. 지진에 피해가 없도록 안전하게 건축물을 지으려면 표준시방서를 바꿔야 한다.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는 것이다.

아울러 시공 중 부실시공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직접시공’을 확대해야 한다. 다단계 하도급에 의한 인건비 따먹기 식 속도전 건축문화가 살아 있는 한 우리나라 건축물은 지진 앞에서 바람 앞에 촛불이다. 그리고 공사감리를 더욱 강화해 부실시공 건설사에 엄한 형사처벌과 재시공 명령을 내려야 한다. D등급과 E등급 노후 건축물은 집단이주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위험한 화학물질을 생산하는 노후 플랜트건설 산업단지 시설에 대한 안전진단도 시급하다.

정부와 대학에서는 지진에 강한 제진장치와 면진장치 구조 건축물을 저렴하게 짓기 위한 연구를 서둘러야 한다. 여기에 또 많은 새로운 일자리들이 만들어질 수 있다. 천재지변이라고 해서 다 면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설계와 시공 기준을 제대로 지키는 것이 급선무다. 연이은 지진 사태를 보면서 우리 인간이 자연 앞에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다시금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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