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지선 변호사(법률사무소 지선)

촛불로 대통령을 탄핵시키고, 지진을 이겨 내고 수능을 본, 역대 최강이라는 고3들이 수능을 마쳤다. 하지만 그들 세대에게 승리의 경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19일 현장실습 중이던 고등학생이 숨졌다. 그는 제주시 구좌읍 용암해수산업단지 음료 제조회사에서 현장실습을 하다 제품 적재기 벨트에 목이 끼여 중태에 빠졌다가 결국 숨을 거뒀다. 정규 직원이 그만둔 뒤 라인을 홀로 뛰어다니며 기계를 점검했다. 9월에도 기계를 점검하다 떨어져 갈비뼈를 다치고 응급실에 실려 간 적이 있었다. 기계가 자주 멈춘다는 사실을 알렸는데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사고를 당했을 때 옆에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직업교육훈련 촉진법(9조의2)이 현장실습 시간 위반의 경우만 벌칙 규정을 두고 있을 뿐 그 외의 책무 위반에 대해서는 벌칙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든지, 현장실습생은 근로기준법이나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전면 적용되는 근로자 지위가 아니라든지 하는 문제는 부수적인 문제일 뿐이다.

주된 문제는 현장실습생의 죽음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 1월에는 전주에 있는 통신사 콜센터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고등학생이 “아빠, 나 콜수 못 채웠어”라는 문자메시지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우리는 이 비극 앞에서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더구나 최근에 수능을 마친 다른 많은 고3들도 곧 알바라는 이름의 노동시장에 뛰어들게 된다. 그들 대부분은 그렇게 노동자 삶을 시작할 것이다.

초심자가 적은 임금을 감수하고 때에 따라 무리한 장시간 노동을 하면서도 이를 감내하는 이유는 당장 돈과 일자리가 궁해서이기도 하겠지만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는 기대, 이것을 참아 내고 견뎌 내면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 현실은 이러한 기대를 배반한다.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기는커녕 그들을 대부분 소모적이거나 기피하는 일로 내몬다. 죽도록 혹은 다치도록 열심히 일해도 잘못되면 책임은 그들에게 쏟아지는데, 성과는 상급자가 가져가기 일쑤다.

사장이 초심자를 고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비용일 것이다. 사장은 초심자가 경험자보다 일을 못할 수는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도 그 임금을 고려하면 득이라는 계산 아래 초심자를 고용한다. 사장이 초심자를 고용하는 또 다른 이유는 길들이기 쉽기 때문일 것이다. 여러 가지 관계를 경험하다 보면 시야는 넓어지고 노동자는 사장이나 선임의 말과 행동이 절대적이지도 않고 그럴 이유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보통의 초심자는 일을 경험자만큼 못하는 것도 자기 탓으로, 사장 취향에 경험자만큼 맞추지 못하는 것도 자기 탓으로 돌린다. 특히 일에 몰두하고 과로에 시달릴수록 시야는 좁아지고 모든 것이 자기 잘못처럼 여긴다. 길들여지는 것이다.

역대 최강이라는 그들의 첫 사회생활, 첫 노동이 기대되면서도 걱정된다. 나는 그들이 작은 승리의 경험을 계속 쌓아 나갈 수 있길 바란다. 그들이 보호받을 수 있고, 응원받을 수 있고, 존중받을 수 있는 나라를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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