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선희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조합원

민주노총 2기 임원직선제가 11월30일부터 12월6일까지 진행된다. 이번 선거는 4개 후보조가 각축하고 있다. 1차 투표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없을 경우 12월14일부터 일주일간 결선투표가 치러진다. 4개 후보진영에서 위원장과 동반출마한 수석부위원장과 사무총장 후보 지지글을 보내왔다. <매일노동뉴스>가 4회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영화 <파업전야>를 본 노동자는 많지만, 인천 갈산동에 있던 한독금속 공장을 배경으로 찍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젊은 시절 김창곤 동지는 한독금속에서 민주노조 활동을 시작했다. 250명이 일하는 작은 공장으로, 임금이 낮기도 했거니와 제때 나오지도 않는 열악한 공장이었다. 그는 이러한 현실을 바꾸려고 동료들과 함께 노조를 세웠고, 홍보차장을 맡아 민주노조운동의 길을 걸었다.

당시 한독금속 노동자들의 투쟁은 인천 민주노조운동의 모범이었다. ‘이래서 민주노조’라는 모범을 지역 노동자들에게 보여 줬고, 연대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당시 한독금속노조가 여느 노조보다 단결력이 강했던 건 조합원들의 적극적 참여를 보장하는 민주적인 원칙을 지켰기 때문이다. 노조 결성식을 공개적으로 사내식당에서 열었고, 평조합원들도 교섭대표로 선출해 교섭에 직접 참여하게 했다. 매주 현장 의견을 수렴하는 것도 놓치지 않았다고 한다. 젊은 날의 경험이 김창곤 동지의 몸에 배어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이후 한독금속 사측은 공장 이전으로 노조를 와해시킨다. 내가 김창곤 동지를 만난 건 1995년 대우자동차 민주노조 운동을 위한 현장조직 모임에서였다. 그는 두 번의 쟁의부장을 거치며 대우자동차노조의 선두에서 싸웠다. 특히 2001년 대우차 정리해고 철폐 투쟁 당시 산곡성당에서 지도부의 일원으로 나선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정리해고자로 지목된 조합원들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고, 그 많은 고난을 거치고도 우리는 다시 현장으로 돌아와 일하고 있다. 현장 조직들이 분화하는 혼란스러웠던 과정에서도, 사무처장과 본부장으로서 인천지역본부를 운영하는 과정에서도, 그는 언제나 자신이 맡은 바 책임을 다하는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 줬다.

30여년의 노조활동 과정에서 많은 활동가들을 만났다. 하지만 김창곤 동지처럼 온갖 처절한 투쟁을 거치며 현실 감각과 초심, 전체 노동자계급에 대한 애정을 균형감 있고 진지하게 지키는 활동가는 거의 보지 못했다. 말 그대로 그는 ‘튼튼한’ 사람이다.

나는 1983년 대우자동차에 입사해 지금껏 35년을 일했다. 세 번의 구속과 세 번의 해고를 거치는 거친 삶을 살았지만, 민주노조를 만나 자랑스럽고 아쉬움도 많다. 이제 민주노조운동을 현장에서 할 수 있는 날은 얼마 남지 않았다. 치열했던 현장 활동을 마무리하며 마지막으로 좋은 후배를 민주노조운동 지도자로서 추천해 드릴 수 있어 행복하다.

김창곤 동지의 30년 경험이 빛을 발하고 있다. 대기만성이라더니, 젊은 날에는 과감하고 진취적이던 그가, 이제는 추진력과 연대의식으로 무장한 든든한 리더로 80만 조합원 앞에 나섰다. 지역을 넘어 전국 민주노조 지도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정하고, 조상수 동지와 함께 수석 후보로 뛰고 있다. 짧은 선거운동 기간이지만, 아무쪼록 우리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현명한 선택을 해 주시길 기원한다.

나는 올해를 끝으로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다. 아쉬움 많은 이별이지만, 1985년 투쟁을 이어받아 지금까지 현장을 지키며 투쟁해 온 김창곤 동지를 남기고 가기에 다행이다. 늙은 노동자의 마지막 긍지로 혼신을 다해 조합원 여러분께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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