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호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 실장

김군은 열아홉 살 생일을 하루 남겨 뒀고, 이군은 열여덟 번째 생일을 나흘 앞두고 있었다. 두 아이는 스물을 채우지 못하고 세상을 등졌다.

지난해 서울지하철 구의역 안전문을 수리하다가 숨진 김군은 서울메트로 협력업체 노동자였다. 김군 사고 이후 국민 생명과 안전에 관련된 업무에 파견이나 외주용역 노동자를 고용할 수 없도록 하는 법안을 만들겠다는 정치인들의 목소리는 추모의 마음보다 빨리 사라졌다. 위험의 외주화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리고 1년이 지나 우리는 현장실습에 나갔던 이군의 사망소식을 접하게 됐다. 현장실습생인 이군은 1일 7시간, 사업주가 현장실습생의 동의를 얻은 경우에는 하루 1시간 한도로 연장할 수 있는 ‘현장실습 표준협약서’를 맺었다.

현실과 표준은 달랐다. 이군은 평일엔 공장 숙소에서 잤고, 하루 11시간에서 12시간까지 일을 했다고 한다. 이군의 참극이 있고 난 뒤 여당 대표는 “매년 약 10만명의 청소년들이 현장실습이라는 이름으로 노동현장에 내몰리고 있다”며 “현장실습제도에 대한 전면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현장실습제도를 뜯어고치거나 폐기하면 문제가 사라질까. 이군이 현장실습 나갔던 음료 제조사인 ㅈ회사는 50명이 채 안 되는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그곳 노동자들 역시 이군 이상의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을 것이다.

여당 대표 표현대로 청소년들이 내몰리는 노동 ‘현장’을 그대로 둔다면 현재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미래의 노동자들이 학교를 졸업한 뒤에 가게 될 그 '현장'은 어쩌란 말인가. 결국 ‘실습’은 없어질지언정 ‘현장’은 그대로 남아 있게 된다.

열아홉 살 김군이 우리 곁을 떠난 원인이 위험의 외주화였다면 열여덟 살 이군은 장시간 노동과 열악한 노동환경의 피해자다.

이 와중에 노동과 관련된 법안을 책임지고 있는 국회의원들은 장시간 노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 규모별 단계적 노동시간단축안 시행을 논의하고 있다. 규모에 따라 큰 기업부터 단계적으로 노동시간단축안을 시행하면 이군이 다녔던 ‘현장’을 비롯한 수많은 소규모 사업장들은 장시간 노동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여기에 한술 더 떠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은 “노동계도 이제는 양보할 때”라고 말한다. 양보는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할 때’ 비로소 발생하는 마음이며, 행동이다. 위법하고 잘못된 행정해석을 바로잡는 문제에 왜 사회적 약자가 양보를 해야 하는지 도통 알 길이 없다. 과연 양보를 말하는 사람들이 ‘현장’의 노동자 입장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있을까. 양보를 얘기하기 전에 이들에게 염치라는 감정을 먼저 가져야 하지 않을까.

생명보다 이윤을 추구하는 어른들의 탐욕은 아이들마저 제물로 삼고 있다. 오늘 이군의 친구들을 비롯해 60만명의 아이들이 수능시험을 봤다.

“시린 겨울 맘 졸이던 합격자 발표 날에 부둥켜안고서 이제는 고생 끝 행복이다, 내 세상이 왔다, 그땐 그랬지(카니발 <그땐 그랬지>)”라는 노래가 있다. 그 노래의 뒷부분은 “참 세상이란 만만치 않더군. 사는 건 하루하루가 전쟁이더군”이라고 끝난다.

친구들보다 먼저 하늘로 간 이군의 영면을 기원한다. 그리고 힘들게 수능시험을 봤지만 고생 끝이 아닌 전쟁 시작인 현장에 발을 내딛는 수많은 수험생들에게도 미안함을 전한다.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 실장 (labor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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