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윤정 기자

문재인 정부는 한국형 사회적 대화기구를 만들어 내년에 노동존중 사회 기본계획을 수립하겠다는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를 넘어서는 한국형 사회적 대화기구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새로운 사회적 대화기구는 노동이 존중되는 포용적 노동체제와 포용적 디지털 사회로의 이행을 구현하는 사회적 소통의 장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복지국가 실현과 경제민주화 진작, 그리고 4차 산업혁명 시대 인간적인 디지털화를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업별노조 시스템과 민주노총 불참, 정부 주도라는 20년 노사정위 체제를 극복하고 노사가 주도성을 확보하면서 참여주체와 논의의제가 확대된 새로운 사회적 대화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고려대 노동대학원·노동문제연구소는 21일 오후 서울시 성북구 고려대 국제관 국제회의실에서 ‘한국형 사회적 대화의 모색’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가 사회를 맡았다.

“20년 노사정위 체제 한계 극복해야”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날 ‘새 정부의 사회적 대화 모색을 위한 방향과 과제’를 주제로 한 발표문에서 “노동이 존중되는 포용적 노동체제와 포용적 디지털 사회로의 이행을 구현하는 사회적 대화기구는 기업별 노조시스템 개혁과 사회적 파트너의 주도성 강화, 거대한 협약에 대한 강박 지양이라는 원칙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박 연구위원은 노사정위 수석전문위원을 겸임하고 있다. 그는 다만 “이번 발표문은 노사정위 공식 입장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그는 한국 노사관계의 기업별노조 시스템과 노사정위 정체성 혼란, 민주노총 불참에 따른 조직 없는 코포라티즘, 관료중심적 정책결정 관행을 기존 노사정위 체제의 한계로 꼽았다. 박 연구위원은 “(대기업노조 위주의)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기업별노조 시스템에서 사회적 대화가 없이도 기업별 협의와 교섭을 통해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며 “사회적 대화기구에서 다루는 복지체제 의제가 피부에 심각하게 와 닿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와 노동계는 노사정위가 협의기구인지 합의기구인지를 두고 다른 인식을 했다”며 “민주노총의 노사정위 불참은 노사정위 기능 자체를 약화시켰다”고 꼬집었다.

주체·의제 확장된 ‘사회적 대화 위원회’ 제시

박 연구위원은 “새로운 사회적 대화체제는 국가 수준을 포함한 초기업 수준의 노사관계와 협의 중심의 노사정 관계 틀을 구축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며 “이 과정에서 기업별노조 시스템을 극복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새로운 사회적 대화체제에서는 노사정위 체제에 비해 사회적 파트너의 주도성을 훨씬 강화해야 한다”며 “무리한 합의에 대한 집착, 거대한 협약을 신속히 산출하겠다는 집착을 버려야 한다”고 충고했다.



박 연구위원은 새로운 사회적 대화기구 상으로 “노사정이라는 이름을 과감히 버릴 것”을 제안했다. 그는 ‘사회적 대화 위원회’라는 이름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대통령 자문기구에서 독립위원회로 전환하고 합의지향적 협의기구로 자리매김하자는 복안이다. 의사결정 방식을 개선하고 참여주체를 확대하면서 논의의제를 넓히자는 제안이 뒤따랐다.

새로운 사회적 대화체제 구축 시기는 민주노총 선거가 끝나는 시점으로 내다봤다. 그는 “민주노총 선거가 마무리된 뒤 민주노총이 참여하는 노사정대표자회의가 소집되고 새로운 대화기구를 구축하면서 사회적 대화를 진척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90% 미조직 노동자 위해 노동회의소 필요”

김기우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은 ‘사회적 대화와 한국형 노동회의소 역할’ 주제발표에서 “조직되지 못한 90% 노동자를 위해 노동회의소가 근로자 이익대변기구로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공약을 통해 한국형 노동회의소 설치를 약속했다.

김 연구위원은 “한국형 노동회의소가 설치되면 종업원조직과 노동조합과 함께 한국 노동체제의 3대 지주가 될 것”이라며 “3개 제도 모두 근로자 참여가 전제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노동회의소에서는 노사정위 합의의제에 대한 실행계획을 수립하고 지역사업으로 실천할 수 있다”며 “노조가 수행하지 못하는 초기업 영역 근로자 보호 기능, 노사발전재단이 못하는 지역협의 기능, 노사민정협의회에 없는 실천 기능을 보완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그는 “민주노총도 노사정위 참여 여부와 별개로 합의의제에 대한 구체적 실천사업에는 노동회의소를 통해 참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연구위원은 “4차 산업혁명이라는 기술적·생산구조 변화 속에서 노동이 소외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근로자의 참여가 보장돼야 한다”며 “노동회의소는 다양한 노무제공자를 회원으로 받아들여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노총 “8자 회의 논의 지지부진” 민주노총 “산별교섭부터”

이날 종합토론에서 정광호 한국노총 사무처장은 “박명준 연구위원이 제시한 새로운 사회적 대화기구의 모습과 경로가 지나치게 소극적이고 왜소하다”며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어 내라는 시대의 요구에 비해 지나치게 한가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새로운 정권에 대한 국민의 요구가 높은 만큼 정부도 적극 사회적 대화에 참여해 변화를 만들어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사무처장은 “한국노총이 8자 회의를 통해 사회적 대화 복원을 주장한 지 3개월이 돼 가지만 관련 논의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며 “대통령이 의지를 표명했는데도 정부 내 의견 차이로 합리적 논의가 안 되는 것은 의아하다”고 비판했다.

이창근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민주노총은 98년 이후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해 노사정위 밖에서 두 번이나 사회적 대화를 했던 경험이 있다”며 “사회적 대화를 노사정위 중심으로 평가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노사정위는 사회적 대화체제 복원과 노사정위 체제 복원 두 가지를 다하고 싶겠지만 현 상황에서 가능하지 않다”며 “노사정위 스스로 노사정위를 버릴 자세가 돼 있어야 사회적 대화 복원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당장 내년에 사회적 대화 복원을 원한다면 산별교섭을 행정부 권한으로 활성화하는 행정·제도적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심포지엄에는 이형준 한국경총 노동법제연구실장·김민석 고용노동부 노사관계국장·강진구 경향신문 논설위원·강문대 민변 사무총장이 토론에 참여했다.
 

문성현 위원장 “민주노총 새 집행부에 사회적 대화 참여 제안할 것”

민주노총 2기 임원직선제가 끝난 뒤 사회적 대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문성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장은 21일 오후 고려대에서 열린 ‘한국형 사회적 대화의 모색’ 심포지엄에서 축사를 통해 “민주노총 선거를 지켜보고 있다”며 “새 집행부가 들어서면 정중하게 (사회적 대화를) 같이하자고 제안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 위원장은 “한국노총이 빨리 사회적 대화를 하자고 하지만 (민주노총 선거라는) 중간에 변화가 있어서 그러지 못했다”며 ”내년 1월 중순에는 사회적 대화가 어떻게 될지 공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문 위원장은 이어 “문재인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최저임금 2020년까지 1만원, 노동시간단축 등 많은 제안을 하고 있다”며 “노동존중 사회를 위해 노사가 사회적 대화를 통해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문재인 정부에서 사회적 대화는 정부 주도가 아닌 노사 2자 중심이 전제가 돼야 한다”며 “한국 현실에 맞는 사회적 대화 모델을 만들기를 바란다”고 제시했다.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을 대신해 참석한 김명환 부위원장은 “노동존중 사회 시스템 실현은 정부 정책과 지침만으로 되지 않는다”며 “한국 지형에 맞는 사회적 대화 모델을 위해 사회 주체들이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대엽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개회사에서 “새 정부의 정책과제이자 시대정신은 협력과 포용, 사회통합을 위한 사회적 대화”라며 “사회적 대화는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상호 인정하는 속에서 공동체 미래를 위한 절박함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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