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 체육대회 강제동원과 선정적인 경연대회는 빙산의 일각이었다. 직장은 지옥에 근접했고, 갑질은 재난에 가까웠다.

고용노동부가 15일 임산부들까지 체육대회에 강제로 동원하고, 간호사들에게 선정적인 춤을 강요해 물의를 빚은 한림대 성심병원에 대한 수시 근로감독에 착수했다. 병원측의 온갖 갑질 행태가 직원들의 제보로 속속 드러나고 있다.

민간 공익단체인 '직장갑질119'에 한림대 일송재단이 운영하는 6개 성심병원(한강·강남·춘천·한림대·동탄·강동) 직원들이 제보한 내용을 살펴보니 노동관계법 위반 사례가 백화점급으로 확인됐다.

직장갑질119는 이날 오후 서울 장교동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노동부 관계자들을 만나 6개 성심병원에서 동일하게 나타난 갑질 행태 증거들을 모은 '갑질 보고서'를 노동부에 전달하고 특별근로감독을 촉구했다.

◇임금 안 주고 휴가 못 쓰고=강동성심병원은 2014년부터 조기출근에 따른 시간외수당 미지급 등 240억원을 체불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강동성심병원은 "노동부와 체불 산정기준이 다르다"는 이유로 240억원 중 62억원만 지급한 상태다. 나머지 5개 병원에서는 일부 부서 직원들에게만 최저임금 미달분이 지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직장갑질119는 강동성심병원과 마찬가지로 다른 병원에서도 조기출근·체육대회·영상회의·장기자랑 준비 등으로 시간외근무가 발생한 사실이 있는 만큼 모든 병원·부서에서 체불임금 실태를 조사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병원들이 시간외근로수당을 적게 주기 위해 편법을 동원한 증거도 나왔다. 주간근무자가 야간당직으로 업무가 바뀌면 호봉급수를 낮춰 임금총액과 시간외수당을 줄이고, 대체휴가는 1.5일을 줘야 하는데도 1일만 부여하는 식이다.

직원들은 휴가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고 하소연했다. 연차사용계획서는 '서류제출용'일 뿐이었다. 매월근무표에 연차유급휴가가 지정돼 있어 원하는 시기에 연차를 쓸 수 없다는 것이다.

환자가 없다는 이유로 응급으로 비번근무(오프)로 돌린 뒤 연차휴가를 사용한 것으로 대체하는 경우도 있었다. 직장갑질119 관계자는 "환자가 없다는 이유로 시행되는 오프는 실질적으로 경영상 이유에 인한 휴업이기 때문에 휴업수당을 지급해야 한다"며 "휴업수당을 지급하기는커녕 병원이 일방적으로 연차휴가로 처리하고, 미사용 연차수당을 주지 않는 것은 휴가 갑질"이라고 비난했다.

◇육아휴직자에 불이익, 부서별 주차관리까지=모성보호권 침해사례도 나왔다. 간호사는 A씨는 "임산부도 예외 없이 나이트근무를 시키고, 만삭일 때까지 일을 돌렸다"며 "임산부 옷도 못 입게 해서 일반근무복을 수선해 늘려 입는 간호사도 있었다"고 말했다.

육아휴직을 제한하거나 복귀 뒤에는 무조건 다른 부서로 배치전환해 업무상 불이익을 주는 사례도 눈에 띈다. 간호사 B씨는 "임산부 단축근무 신청은 할 수가 없다"며 "아무도 신청한 사례가 없다고 총무팀 인사담당자가 자기 선에서 막았다"고 전했다. 생리휴가는 신청할 수 없게 아예 전산시스템 휴가신청 사유에 '생리휴가' 항목이 빠져 있다.

간호사에게 건물청소나 이삿짐 나르기, 개원홍보지 배포를 지시하고, 심지어 환자 유치를 강요했다는 주장마저 제기됐다. 게다가 강동성심병원에서는 부서별로 돌아가면서 2시간30분씩 주차관리를 시킨 근무표가 발견됐다.

병원이 부서 간 경쟁을 부추겨 직원들에게 환자유치를 강요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부서별로 몇 명의 환자를 유치했는지 전자시스템에 공지하고, 부서장 회의에서 행정부원장이 성과를 발표한다는 것이다. 압박을 받은 부서장들은 다시 부서원들에게 환자소개를 강요하게 된다.

간호사 C씨는 "건강검진권을 병동마다 할당해 성과부족금을 채운다고 강매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가위나 체온계 같은 의료기구가 본인 근무시간에 없어질 경우 각 병동 간호사들이 모은 병동회비로 분실된 의료기구나 용품을 구매했다.

직장갑질119는 "피해가 비정규직·20대·여성에게 집중되고 있다"며 노동부에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노동부는 갑질 보고서 증거자료를 해당 지청에 전달해 이를 토대로 감독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안경덕 노동부 노동정책실장은 "우리가 인지한 내용도 있고 새로운 내용도 있었다"며 "보고서를 참고해서 확실하게 감독을 하겠다"고 말했다. 직장갑질119와 노동부는 나머지 직장 갑질 사례에 대한 논의를 이어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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