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노총

"하루 12시간 근무해 사납금 채우고, 몇 푼 가져가려면. 전쟁이야 전쟁. 장난이 아니에요. 내가 과속하고 싶어서 하겠어요?"

"휴식시간이 없어요. 손님 없어 가만히 있는 게 휴식시간은 아니잖아요."

하루 8시간 법정노동시간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근로시간 특례업종'에 속한 택시노동자들이 장시간 과로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하루 14만~17만원의 사납금을 채워 넣으려면 10시간 넘게 달려도 부족하기만 하다. 택시노동자들이 야간·장시간 노동에 대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휴식시간은 언감생심이다. 손님을 기다리며 차에서 잠깐 눈을 붙이는 게 대부분이다. 쪽잠을 자다 손님이 타면 비몽사몽간에 운전대를 잡는다. 택시기사도 손님도 위험에 노출되는 구조다.

◇택시노동자 10명 중 3명, 주당 70시간 이상 운전=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회관에서 열린 '택시노동자 건강실태 및 직업병 예방을 위한 전문가 토론회'에서 나온 택시노동자들의 노동·건강실태다.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와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연구소, 전택노련이 서울지역 11개 택시사업장에서 일하는 택시노동자 69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심층면접(8명)·생태지표검사(7명)를 한 결과다.

택시노동자 76.2%(505명)는 한 달에 26일을 일했다. 10명 중 7명 이상이 주 6일 근무하는 셈이다. 주당 60시간 이상 일하는 노동자는 78.3%(519명), 이 중 70시간을 넘겨 일하는 노동자도 29.1%(193명)나 됐다.

장시간 노동에도 휴식시간은 하루 평균 30분 미만(84.8%)에 불과했다. 심층면접을 한 노동자 A씨는 "정상적으로 일을 하면 사납금을 맞추지 못한다"며 "10시간을 운전했는데도 자기 돈을 보태 사납금을 내야 하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노동자 B씨는 "물가를 따라간다고 하는데 그래도 사납금이 너무 세다"고 호소했다. 하루 평균 14만~17만원인 사납금이 택시노동자를 장시간 노동으로 내모는 형국이다.

◇"택시 안전보건관리자 선임대상 제외? 법 개정하라"=장시간 노동은 건강악화로 이어졌다. 택시노동자들의 고혈압·고지혈증, 당뇨 유병률이 각각 41%(284명), 29.7%(206명), 27.6%(191명)로 높았다.

특히 24시간 활동혈압을 측정하는 생체지표검사에 참여한 7명 중 5명은 잠을 자도 혈압이 떨어지지 않는 증상을 보였다. 김형렬 가톨릭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보통 일반인들은 자고 일어나면 혈압이 떨어진다"며 "혈압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건 택시운행 중 발생하는 각종 스트레스에 적절하게 반응하지 못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피로가 누적돼 휴무일에 신체활동이 떨어지는 경향도 보였다. 승객으로부터 폭행을 당한 택시노동자(20.2%·133명)도 적지 않았다. 욕설(62.1%·418명)과 성희롱(13.5%·89명), 괴롭힘(38.3%·256명)을 당했다. 이로 인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호소했다.

김형렬 교수는 "택시노동자의 경우 주 60시간 이상 장시간 노동이 보편적이며, 건강상 위험문제가 높게 나타났다"며 "사납금제도 개선과 근로시간 특례조항 폐지, 휴게시간과 휴게공간 확보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조기홍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연구소장은 "택시업종이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정한 안전보건관리자 선임대상에서 제외돼 법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택시업종에서도 안전보건관리자를 선임하도록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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