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태세 전환. 변화된 정치상황은 "이제는 대화할 때"라고 노동계에 말한다. 그러나 사회적 대화에 대한 노동계의 무너진 신뢰는 그리 쉽게 이야기할 문제가 아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자행된 노동적폐를 청산하고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로 한발 나아가야 하는 노동계로서는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노동존중 사회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에 투쟁의 깃발만 세울 수도, 무너진 신뢰를 외면한 채 그저 대화에 나설 수만도 없다. 사회적 대화에 앞서 신뢰 회복과 이행 담보가 필요한 이유다.

김주영(56·사진) 한국노총 위원장이 9월 '대통령이 참여하는 노사정 8자 회의'를 제안했다. 신뢰와 이행을 담보할 수 있도록 사회적 대화의 시작과 끝을 대통령이 함께해 달라는 주문이다. 그리고 신뢰를 잃은 현재의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가 아닌 새로운 틀에서 사회적 대화의 시작을 논의해 보자고 했다.

김주영 위원장은 “비난받을 각오로 사회적 대화를 제안했다”고 말했다. 그간 사회적 대화를 먼저 제안한 쪽은 언제나 정부였다. 노동계는 수세적이었다. 김 위원장은 “사회적 대화를 제안하는 것 자체로 (위원장) 임기를 못 채울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있었다”면서도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지난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회관에서 만난 김 위원장은 “(대화 주체들이) 이해관계를 계산하는 사이 대화 적기를 놓치면 사회적 대화 의미를 잃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사회적 대화의) 공은 이제 정부로 넘어갔다”고 강조했다. 민주노총을 향해서는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했다. 그는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에) 참여한다면 큰 힘이 생길 것 같다”고 말했다.

“타임오프, 적폐 중 적폐”

- 문재인 대통령은 노동존중 사회를 내걸고 당선됐다. 위원장이 생각하는 노동존중 사회는.

“노동가요에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가사가 있다.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수입이 필요하고, 그 수입은 노동을 통해 영유된다. 노동존중 사회는 일하는 사람인 노동자가 존중받고 행복한 사회다.”

-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에 점수를 매긴다면.

“성과연봉제 폐기 지침이나 양대 지침(일반해고·취업규칙 불이익변경) 폐기 정책을 보면 방향은 잘 잡고 있다. 답보상태이긴 하지만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과 최저임금 1만원 인상, 노동시간단축 등 중요한 노동의제를 잘 끌고 가고 있다.”

- 최저임금 문제와 장시간 노동 문제는 잘 해결될 것 같나.

“최저임금은 애초 취지인 노동자에게 임금의 최저 수준을 보장해 생활안정과 노동력을 향상시키는 목적에 부합해야 한다. 장시간 노동 문제는 국회 상황을 볼 때 법 개정을 통한 해결은 어렵다. 행정해석을 바로잡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8월에 근로시간 특례업종 제도개선을 국회에 요구했다. 현행 26개 특례업종을 최대한 축소하고,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하면서 휴일휴가권을 확대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도 제안했다. 한국노총은 국회를 압박해 나갈 것이다.”

- 고용노동부 적폐청산을 위한 고용노동행정 개혁위원회가 이달 1일 출범했다. 할 말이 많을 듯한데.

“노동개악을 추진한 사람이 있다면 책임을 져야 하고, 잘못된 정책은 다시 짚어 봐야 한다. 노동적폐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제도다. 노조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유럽의 타임오프가 한국으로 건너오면서 노조활동을 무력화하는 제도로 변했다. 말 그대로 귤이 회수를 건너 탱자가 돼 버렸다. 대통령은 ‘노조 결성을 방해할 경우 부당노동행위로 강력히 처벌하겠다’고 했다. 노조를 결성하고 제대로 운영할 수 있도록 타임오프 제도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 임금피크제를 폐기하고, 노동부가 소극적이고 보수적인 법 해석으로 노동시장을 교란한 다양한 지침과 행정해석도 폐기해야 한다. 한국노총 길들이기에 악용된 노동단체 국고지원 사업 역시 손봐야 한다.”

- 내년 지방선거에서 개헌투표가 이뤄질 전망이다. 노동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헌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개헌은 될 것이다. 다만 시기가 언제일지는 미지수다. 개헌이 된다면 헌법전문과 조문에 우리 사회 지향점인 노동존중과 평등사회 건설에 대한 상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또 1948년 제헌헌법부터 4차 개정헌법에 이르기까지 유지됐던 이익균점권을 복권해야 한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 노동자는 이익분배를 균점할 권리가 있다는 게 이익균점권이다. 한국노총 전신인 대한노총이 48년 6월 노동헌장 청원을 통해 ‘기업체의 이윤 중에서 최저 30% 이상 50% 이내의 이익배당을 받을 권리’를 법률에 명시하라고 요구하면서 논의가 촉발됐다. 제헌국회는 격렬한 논쟁을 거쳐 노동자 이익균점권을 헌법에 명시했다. 아쉽게도 구체적인 법률 제정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노동계 최초의 사회적 대화 제안

- 사회적 대화는 언제쯤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하나.

“노동계가 사회적 대화를 대놓고 주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노총이 사회적 대화를 제안했고 대통령은 노사정대표자회의든, 8자 회의든 형식에 구애받지 말고 대화를 시작하자고 화답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도 사회적 대화 중요성을 언급했다. 노동계 역할은 거기까지다. 사회적 대화의 중요성을 노사정 모두가 인식하고 있다면, 제안에 대한 답이 있을 것이라 본다. 한국노총은 사용자단체인 한국경총과 대한상공회의소를 만났다. 그분들의 의견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제안을 받을 것인지, 안 받을 것인지 이제 정부가 결정해야 한다. 공은 정부로 넘어갔다.”

- 민주노총은 지난달 24일 청와대 간담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청와대 간담회는 한국노총의 노사정 8자 회의 제안에 대한 화답의 의미였다. 민주노총이 참여했으면 좋았을 텐데…. 팔은 안으로 굽지 않나. 민주노총이 함께하는 사회적 대화는 더 큰 의미가 있다. 민주노총이 참여한다면 큰 힘이 생길 것 같다. 그렇다고 시간을 마냥 보낼 수는 없지 않나. 사회적 대화를 빨리 시작해야 한다.”

- 임기 중에 사회적 대화에서 성과를 내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임기가 중요하겠나. 중요한 건 사회적 대화 필요성이 높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기술발전 앞에서 일자리가 위협받고 있다. 한계기업들은 비명을 지르고, 노동시간단축 논의는 시작된 지가 언젠데 아직 (관련법) 국회 통과도 안 됐다. 이런 현실 속에서 절박함을 (사회적 대화로) 표현한 것이다. 물론 사회적 대화는 언제든 할 수 있다. 다만 적기가 있다. 지금이 골든타임이라고 생각한다.

비난받을 각오로 사회적 대화를 제안했다. 노동계에서 사회적 대화를 제안한다는 것만으로도 (위원장) 임기를 못 채울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역대 지도부가 책임감을 가지고 사회적 대화에 임했지만 결국 타격을 입지 않았나. 내부 갈등도 있었다. 용기와 비난받을 각오가 필요했다. 시기를 놓친다면 사회적 대화의 의미가 없어진다고 판단했다.

한국노총 내부에서 논의를 했고 용기를 냈다. 과거 전력노조 위원장 시절에 전력산업 구조개편 촉진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했다. 파업투쟁을 각오하고 사회적 대화를 시작했다. 한 명의 희생도 없이 정부의 잘못된 민영화 정책을 중단시켰다. 사회적 대화에서 성공을 경험했다. 반면 지난 9년의 사회적 대화는 노동계 희생만 강요하는 것이었다. 양대 지침과 성과연봉제 확대 등 정부의 일방적 노동개악으로 대화는 끝이 났다. 그런 상황에서 노동존중 사회를 표방한 정부가 한국노총과 정책연대협약을 하는 변화된 상황이 펼쳐졌다. 실낱같은 희망이 생겼다. 정부가 앞장서 중요한 노동의제를 치고 나가는 것을 보면서 사회적 대화에 희망을 가졌다. 사회적 대화에 대한 희망과 두려움이 공존한다. 용기가 필요하다. (주체들이) 용기를 내지 못하고 너무 많은 이해관계를 계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다시 말하지만 이제 공은 정부로 넘어갔다.”

정기훈 기자


“대통령은 대화하겠다는데 주무부처 팔짱만 끼고 있어”

- 노동계는 노사정위 개혁을 꾸준히 주문해 왔는데.

“문성현 노사정위원장도 ‘변화된 위원회의 장’이라고 말했다. 노사정위 변화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는 의미다. 사회적 대화는 형식과 내용 모두 중요하다. 기존 노사정위는 외환위기 당시 구조조정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고, 거기서 합의된 것이 '3금3제'였다. 정리해고제·변형(탄력)근로제·근로자파견제 등 3제를 허용하고, 노동계가 받아 낸 것은 복수노조 금지·노조 정치활동 금지·3자 개입금지 등 3금 조항을 삭제하는 것이었다. 경제위기 상황이라고 했지만 공평하지 못한 교환이었다. 노동진영은 3제 허용 합의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그 트라우마 속에서 민주노총은 그간 노사정위에 참여하지 않았다. 한국노총도 어렵게 합의를 했지만 결국 불참하게 됐다. 지금 노사정위 형식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전면 개편해야 한다. 8자 회의든 노사정대표자회의든 그 속에서 회의를 통해 진보된 합의체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사회적 대화 의제에 대한 생각도 있지만 의제를 던지면 대화가 한정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8자 회의에서 모든 의제를 꺼내 놓고 논의해 보자는 것이다.”

- 노동·주거·복지·의료 등 모든 의제를 새로운 사회적 대화 속에서 논의해 보자고 했다.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임금을 받아 생활을 유지하는 노동자 대다수는 월급의 3분의 1 내지 절반을 사교육비로 쓴다. 사교육비를 어떻게 줄여 나갈지가 매우 중요하다. 집값이 너무 비싸다 보니 젊은 사람들은 집보다 외제차를 먼저 구입한다. 주거비 문제도 심각하지 않나. 중증환자 의료비 부담과 보육·노인보건복지 문제 등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가 산적해 있다.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돼 있지 않다 보니 나오는 문제들이다. ‘해고는 살인’이라는 표현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해고된 사람들은 보험 깨고 적금 깨다 마지막에 사교육비를 줄인다. 궁지에 몰린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상황까지 가는 것이다. 그렇게 가정이 파탄 나는 사례를 많이 보지 않았나.

해고자가 재취업을 위해 교육을 받는다면 그 기간 동안 가계를 꾸려 나갈 수 있는 최소한의 지원을 해야 한다. 고용도 안정화시켜야 한다. 이런 모든 사회적 문제가 얽혀 있는데도 노동은 노동대로, 복지는 복지대로 각 분야별로 논의를 따로 한다. 그래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당장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보자. 노동이 배제된 채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일자리와 노동 문제를 함께 논의하지 않으면 진정한 대책을 내놓을 수 없다. 자식들이 대를 이어 정규직이 될 수 없는 상황에서 한국노총 위원장으로서 우리 일자리와 다음 세대의 삶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 고민할 책무가 있다.”

- 새로운 사회적 대화를 위해 노동계나 정부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사회적 대화 말고 다른 형식으로 복잡한 우리 사회 문제를 풀 수 있다면 좋겠다. 사회적 대화 말고는 풀 방법이 없다는 것이 답답하다. 각 주체들이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하며 해법을 찾는 것이 사회적 대화의 핵심이다. 책임을 가진 정부가 깊게 생각해야 한다. 노동계가 먼저 사회적 대화를 제안하는 것은 맞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민주노총도 여러 고민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계가 함께 힘을 모아 우리 사회의 복잡한 문제를 풀어 냈으면 좋겠다. 지난달 청와대 간담회에서 대통령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사회적 대화가 진전되기를 희망한다’고 화답했다. 대통령의 생각과 의지를 충분히 확인한 자리였다. 그런데 열흘이 넘도록 노동부나 사회적 대화기구인 노사정위에서 반응이 없다. 청와대 간담회 이후 대통령은 공식회의 석상에서 사회적 대화를 언급하는데, 주무부처가 팔짱만 끼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 우리에게 주어진 노동과제들이 산적해 있고 가야 할 길은 아직 멀다. 사회적 대화 스타트 건(총)은 정부 손에 쥐어져 있다.”
 

정기훈 기자

“꼰대문화 버리고 젊은층 흡수해야

- 노동계의 오래된 과제 중 하나가 '노동운동의 노후화'다. 현장순회 때 ‘젊은 한국노총’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노동계 내부에 꼰대문화가 있다. 촛불혁명을 거치며 광화문광장을 비롯한 전국에서 많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자기주장을 펼쳤다. 구호도 외치고 노래도 불렀다. 기존 노동계 집회문화와 차이가 있었다. 젊은 사람들이 노동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아직 노동계가 변화하지 못하고 있다. 변화는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온다. 노동계가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꼰대들이 버티고 있으니 젊은 사람들이 노동운동에 들어오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청년 조직화를 위한 청년위원회나 여성할당제 같은 청년할당제를 적용할 생각이다. 젊은 사람들이 노동운동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인식을 갖도록 교육해야 한다. 청년들을 이해하고 그들과 같이할 수 있는 문화마당이나 교육을 비롯한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해야 한다. 최근 한국노총은 좀 더 젊어지기 위해 신규채용을 했다. 그들이 한국노총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어 줄 것이라 기대한다.”

- 임원선거 공약 중 하나가 ‘100만 조직화’였는데. 복안이 있나.

“올해 2월1일 취임한 뒤 조직을 개편했다. 한국노총이 미조직·비정규 노동자들에게 보다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미조직비정규사업단도 개편했다. 추석연휴에 일본노총(렌고) 대회에 참석했는데, 35만명을 새로 조직화했다더라. 한국노총 조합원의 40%를 2년 만에 조직한 셈이다. 대다수가 비정규직 일반노조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최근 현장순회 토크콘서트에서 조직화를 강조하고 있다. 현장 관심도 높은 것 같다. 미조직·비정규 노동자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갈 생각이다. 임기 안에 100만 조합원을 달성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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