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스트리올 글로벌노조가 개최한 '산업 4.0과 노동의 대응' 회의에 다녀왔다. 디지털화·자동화·로봇화가 일의 내용과 성격, 노사관계와 단체교섭 구조, 노동조합 구성과 체계에 미치는 영향을 토론하고 노동운동의 대응책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기술 변화와 기계 확산이 노동자들이 일하는 공장과 사무실의 조건과 환경을 어느 정도까지 변모시킬 것인가. 특정한 시공간에 얽매이는 전통적인 고용관계가 유연화되고, 물리적 시간과 공간을 가로지르는 새로운 형태의 일자리가 등장하는 상황을 노동조합은 어떻게 규율하고 통제할 것인가. 이런 문제들을 둘러싸고 사례 발표와 토론이 이뤄졌다.

영국 최대 노조인 유나이트(Unite)는 ‘위협 보고서(Threat Paper)’에서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는 자동화로 향후 20년 동안 조합원 23만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예상했다. 자동화 흐름은 일자리 감소, 단체교섭 파편화, 임금 하락 위협을 가져오지만 동시에 숙련 향상, 깨끗하고 안전한 일자리 창출, 핵심 노동자 교섭력 증강, 더 나은 임금 및 노동조건 등의 기회도 가져온다고 예측하면서 좋은 일자리(Decent Work)와 보편적 기본소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018년 발표 예정으로 ‘21세기 작업장 선언(21st Century Workplace Manifesto)’을 만들고 있는 유나이트는 양질의 정보 획득과 현장활동가 교육, 산업과 업종을 아우르는 단체교섭과 노조활동을 우선 사업으로 선정했다. 사업장 수준의 노력과 관련해 유나이트 사업에서 눈에 띄는 것은 ‘신기술협약(New Technology Agreement)’을 마련한 것이다.

자동화와 디지털화의 도전에 맞서 조합원들에게 좋은 일자리(Work)와 효과적인 대변(Voice), 괜찮은 임금(Pay)을 보장해 주는 데 초점을 맞춘 단체협약인 신기술협약은 새로운 기술과 기계를 도입할 때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게 아니라 노조대표자에게 실질적인 정보권과 협의권을 보장하는 조정된(coordinated) 노사관계 구축을 목표로 한다.

협약은 고용보장,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 억제, 적절한 교육훈련 제공, 기술 도입과 임금인상 연계, 감시·감독 장치의 공정한 운용, 안전과 건강에 대한 부정적 영향의 예방, 고용과 처우상의 차별 금지, 임금 보전을 전제로 한 노동시간단축, 새로운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노사 간에 교섭할 안건으로 제시한다.

또한 현장 단위노조가 해야 할 일로 기존 교섭위원회로 하여금 기술과 기계 문제를 책임질 수 있도록 하고, 필요한 경우 노조 교섭위원회 안에 소위원회를 설치하고, 안전보건대표자를 두듯이 기술대표자(technology union representative)를 임명해 신기술과 기계 도입 문제를 노동조합 일상활동에 포함시킬 것을 권고하고 있다.

독일 금속노조(IG Metall)는 ‘기계가 통제하는 사람’ 모델과 ‘사람이 통제하는 기계’ 모델을 대비시키면서 새로운 디지털 세계의 형식과 내용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여러 가능성에 열려 있는 단계이므로 노동조합의 적극적이고 선제적인 참여를 강조했다. 특히 기술변화와 교육훈련, 노동조건을 노사가 공동으로 결정하는 노동자 경영참가 제도의 실천적 정책적 중요성을 재차 확인했다.

독일 노동조합은 산업 4.0을 ‘노동의 인간화’를 실현하는 새로운 기회로 보고 기업조직과 생산방식(company map)을 노사가 공동으로 기획하는 프로젝트(Industry and Work 4.0)를 노동부 지원을 받아 시행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국제노동기구(ILO) 정책담당자는 “일자리(job)는 사라지지만 일(work)은 지속된다”는 흥미로운 표현을 내놓았다.

일의 세계(the world of work)에서 인간이 기계의 의해 축출될지, 아니면 기계가 인간과 더불어 조화롭게 일하게 될지는 결국 ‘사람 대 기계의 관계’가 아닌 ‘사람 대 사람의 관계’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역사적으로 기계에 대한 통제와 지배를 둘러싼 노사 간 힘겨루기는 자본주의 공장제가 등장할 당시부터 인간해방을 지향하는 노동운동의 고민거리였다.

산업 4.0으로 표현되는 일의 기계화·자동화·디지털화 문제는 결국 인간들의 관계인 생산관계와 계급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통찰과 과학적인 이해가 노동운동의 중단할 수 없는 숙제임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줬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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