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광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

아주 잠깐이라도 자신의 집에 낯선 이가 방문하면 불편하고 조심스러운 것이 인지상정이다. 이럼에도 우리 모두는 불가피하게 낯선 이들의 방문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바로 무언가를 설치하거나 점검하는 노동자들의 방문이다.

사적인 공간에 불가피하게 낯선 이와 함께하는 힘듦은 비단 ‘집주인’만의 것은 아니다. 어떠한 이유이건 간에 방문하는 노동자 역시 다르지 않다. 실적 압박이 있거나, 방문 이유가 고객 불만을 해결해야 하는 것이라면 그 정도가 오죽하겠는가.

그런데 ‘오죽하겠는가’라는 정도가 상당히 심각하다. 지난달 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방문 설치·수리기사 안전과 인권 실태조사-방문노동자의 안전과 작업중지권 토론회'에서 발표된 설치 노동자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77%가 고객에게 폭언·폭행을 당했다고 답했다. 이 중 31.4%가 폭력 또는 물리적 위협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했다. 폭력 정도를 보면 신체적 접촉에서 물건 던지기, 칼이나 몽둥이 같은 흉기까지 사용하는 등 아찔한 상황이었다.

‘고객의 집’이 ‘공포의 집’이 되는 순간이다. 이러한 사태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 물었더니 무려 85.4%가 "개별노동자가 알아서 해결하거나 회사에 기대할 것이 없어 알리지 않고 해결한다"고 답했다. 폭력 실태도 문제지만 이를 해결하는 과정과 방법이 더 큰 문제인 것이다.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문화도 문제지만, 이를 방치거나 심지어 조장하는 이른바 ‘고객우선’ 방침과 안전배려 의무를 저버리고 이윤에 집착하는 회사 행태가 결정적인 문제다.

노동자의 신체적·정신적 안전과 건강을 고려한다면 이 같은 상황에 대처할 노동자 보호매뉴얼이 존재해야 한다. 보호매뉴얼의 핵심 내용은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침해받을 위기 상황에서 노동자에게 작업을 중지하고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권장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방문노동자들은 그곳이 공포의 집이 아니기를 운에만 맡기고 있다.

방문노동자들은 이렇게 정신적·신체적 안녕이 위협받는 상황과 환경에 대한 대안으로 ‘작업현장에서 노동자 판단으로 작업을 중지하고 대처할 수 있는 권리’와 ‘무조건 고객 위주에서 벗어나 고객과 작업자 동등원칙 확립’을 요구하고 이를 공식 확인하는 ‘체계적 매뉴얼’을 제시했다. 간접고용형태 개선과 법·제도 개선·보완도 주문했다.

개별회사 차원의 대처도 중요하지만, 국가 차원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직접적으로는 산업안전보건법 ‘작업중지’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 ‘작업중지’에 있어 노동자와 노동조합에 필요한 권한을 부여하고, 다양한 조건에서 적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방문노동자의 응답과 같이 ‘작업중지와 거부’ 권리는 제조업 사업장 노동자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전 산업의 모든 노동자에게 필요하다. 그렇게 법을 개정해야 한다.

사용자는 안전배려 의무에 충실하고, 국가는 법·제도를 정비해 노동자가 부당하고 위험한 일과 환경을 거부할 수 있고, 보장된 권리 속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노동자의 안녕은 운이 아니라 법과 제도로 보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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