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곽상신 워크인연구소 연구실장

노조하기 좋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한데 모였다는 소식이 들렸다. 92개 단체가 힘을 모았다고 한다. 참여단체들 면면을 보니 노동단체와 시민단체가 섞여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계급과 계층을 대표하는 단체가 노조라는 계기를 통해 힘을 모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역사적 사건이다. 촛불이 만들어 낸 연대의 힘이다.

노조하기 좋은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를 생각해 본다. 노조활동을 이유로 어떠한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되며 노조할 권리가 제도적으로 보장되는 세상일 것이다. 사용자 경영권과 노동자 단결권이 평등하게 보장되는 세상이어야 노동자들이 인간으로서의 보편적 존엄성을 지킬 수 있다.

노조하기 좋은 세상이 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노조활동을 침해하는 제도를 개선하는 것과 노조 조직력을 확대하는 것이다. 두 개의 목표는 상호보완적 관계에 있다. 더 근본적인 것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조직력을 확대하는 것이라고 답하겠다.

그런 점에서 보면 우리 성적표는 초라하다. 조직률이 10% 초에서 오르내리는 것이 벌써 10년을 지나고 있다. 조직률이 낮은 데다 정체현상까지 보이는 원인을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생산과정과 그로 말미암은 고용형태 변화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이런 현상은 노동력 변화에서 추정해 볼 수 있다. 2006년부터 2015년까지 조직대상 노동자는 395만5천명 늘었는데, 주로 늘어난 업종은 전문과학기술서비스(112.3%)·보건복지업(104.2%)·사업시설관리업(93%)이었다. 제조업은 21% 증가하는 데 그쳤다.

고용이 증가한 사업체 규모는 300인 이하 사업장이 80% 이상이다. 제조업 종사자가 404만명으로 여전히 가장 많지만, 제조업 종사자 비중은 22%에서 19%로 떨어졌다. 경제활동인구조사에서 노동력 구성변화를 보면 여성과 고령자 고용률이 꾸준히 증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령자(55~64세)의 경제활동참가율이 지난해 기준으로 68%로 올랐고 여성 경제활동참가율도 58.4%까지 올랐다. 같은 기간 고용형태에 따른 노동자 증감을 보면, 정규직은 163만명 증가했고 비정규직 중에서는 시간제 노동자가 65만명 늘어났다. 전체 비정규직이 26만명 증가한 것에 비하면 시간제 노동자 증가세가 두드러진다.

노동력 특성 변화는 서비스업·소규모·여성·고령자·비정규직으로 특징된다. 이들은 조직활동에 취약성을 드러내는 계층이다. 조직화 노력이 갑절 이상 필요하다는 뜻이다. 실제 이들의 노조 가입률은 낮다. 특히 비정규직의 노조 가입률은 1.8%, 그중에 시간제 노동자 가입률은 0.6%에 불과하다.

조직대상을 누구로 정할 것인지 윤곽은 잡혔다. 문제는 이들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다. 이들을 전통적인 방식인 사업장 단위로 조직화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조직화의 벽을 무너뜨리려면 조직단위와 교섭권을 사업장이라는 울타리에서 외부화해야 한다. 지금까지 조직단위는 초기업 수준으로 확장시켰지만, 교섭권은 아직 사업장에 갇혀 있다. 노조활동이 취약한 계층일수록 사업장 교섭은 실효성이 없을 수밖에 없다. 소규모 사업장이나 파견·용역 노동자처럼 사용자가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경우는 사업장 단위 교섭이 조직화의 장애요인이다.

취약한 계층일수록 교섭을 외부화해야 노조 생존력을 높일 수 있다. 교섭권 외부화가 가능해지려면 제도개선이 선행돼야 한다. 사업장에서 일정 규모 조합원이 초기업노조에 가입하면 해당 사업장은 반드시 교섭에 응하도록 만드는 방법이 있다. 예를 들어 2명 이상이 초기업노조에 가입했을 때 사용자가 초기업노조와 공동교섭이나 대각선 교섭에 임하도록 하는 식이다. 조합원 노조 가입을 쉽게 하고 단체교섭 실효성도 높여 노조 조직률을 올리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우리는 희망연대노조나 청년유니온 등에서 새로운 조직화 가능성을 확인했다. 남은 과제는 제도 변화로 연결하는 일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제도 변화는 정치적 동맹관계 변화에서 출발한다. 정권이 교체되고 노조하기 좋은 세상을 만들자고 92개 단체가 조직된 것은 전략적 정치동맹을 맺을 기회다. 촛불로 만든 기회를 노동자 참여 민주주의로 발전시켜 나가기를 기대한다.

워크인연구소 연구실장 (imksgo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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