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설연휴가 시작된 올해 1월27일자 아침신문을 보고 많이 웃었다. 경향신문과 중앙일보가 1면에 같은 가족을 큼직하게 사진기사로 보도했다. 사진은 서울역에서 무궁화호를 타러 가는 젊은 부부와 어린 딸이 환히 웃는 모습이었다.

설연휴만 되면 서울역으로 뛰어가는 기자들의 빈곤한 상상력과 같은 사진을 고를 만큼 동질성을 가진 언론 다양성의 한계도 실감했다. 경향신문 사진은 자사 기자가 찍었지만 중앙일보 사진은 뉴시스 것을 받았으니, 세 언론의 데스크가 한 사진을 고른 셈이다. 그것도 1면 머리 사진을.

아마도 전날 서울역 승강장엔 여러 명의 기자가 엉켜 있었으리라. 명절만 되면 재래시장과 민족대이동이 시작되는 서울역으로 달려가는 기자들에게 시민은 어떤 정보도 감흥도 없다.

1월25일 조선일보가 사회면(14면)에 쓴 '강남 3구 여성이 서울에서 가장 날씬하다'는 제목의 기사도 그랬다. 기사는 서울연구원의 ‘서울시민 비만 실태와 대응방향’ 보고서에 근거했는데, 조선일보는 보고서의 여러 내용 중 여성 비만율이 가장 낮은 구는 강남구였고 다음이 송파구·서초구였다는 부분에만 집중했다. 굳이 성적 코드까지 동원할 내용도 아닌데, 꼭 그렇게 해야 직성이 풀리나 보다. 여성과 반대로 남성 비만율은 송파구가 가장 높고 강북구가 가장 낮아, 남녀를 합치면 조선일보가 굳이 제목에 반영한 구별 특성은 사라진다.

정작 보고서는 지하철역 가까이 살수록 비만에 걸리지 않을 확률이 높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집 앞 가까운 지하철을 타면 자연스레 활동량이 늘어나는 반면 대중교통이 불편해 승용차를 많이 이용하면 체중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보고서 결론대로 하면 굳이 강남과 강북을 대비시킬 이유도 없다. 지하철은 강남·강북 어디에도 다 있다. 같은 구 안에서 지하철이 가까운 곳과 먼 곳이 사는 사람 간의 비만 상관성에 더 집중해야 옳다.

조선일보가 지난 13일자 10면에 쓴 '야당의원 前보좌관 돈 받은 사건, 경찰 前간부로 수사 확대'란 제목의 기사는 온통 익명의 숲속에 사건의 실체를 숨겨 놓아 모호하기 짝이 없다. 조선일보는 “야당의원의 전직 보좌관 김모씨가 모 피라미드 사기업체 임원 유모 씨에게 돈을 받아 경찰 고위간부를 지낸 K씨에게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의원 이름도, 피라미드회사 이름도, 돈을 준 회사 간부 이름도, 돈 전달한 전직보좌관 이름도, 돈 받은 경찰 고위간부 이름도 다 익명이다.

다음날 동아일보는 10면에 '구은수 前서울경찰청장 집 등 압수수색'이란 제목으로 보도했다.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구은수 경찰공제회 이사장(59)이 2014년 서울경찰청장일 때 이우현 자유한국당 의원(경기용인갑)의 전직 보좌관 김아무개씨에게서 수천만원의 돈을 받았는데, 그 돈은 제2의 조희팔 사건으로 불리는 초대형 다단계 사기업체 IDS홀딩스 임원 유아무개(61)씨에게서 나왔다는 거다.

검찰은 IDS홀딩스 김성훈 대표와 임원 유아무개씨를 구속하고 지난주 구은수 전 서울경찰청장 집과 사무실, 이우현 의원의 전 보좌관 김아무개씨의 집과 최근까지 김씨가 일했던 이 의원의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김 전 보좌관도 긴급체포했다.

서울신문은 “(김 전 보좌관이) 지난 2006년 건설교통위 소속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하면서 건설업자로부터 부도가 난 충남 보령 소재 임대아파트를 대한주택공사에 인수될 수 있게 해 달라는 청탁과 함께 5천만원을 받았다가 징역 3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다”고도 보도했다.

조선일보의 오리무중 IDS홀딩스 기사를 보면 언론이 얼마나 힘 있는 이들에게 관대한지 잘 드러난다. 조선일보는 돈을 준 IDS홀딩스 임원과 돈을 전달한 전직 보좌관의 유모·김모라는 성을 밝혔다. 그러나 구은수 전 서울경찰청장은 성도 밝히지 않고 ‘K’라고만 했다. 전직 고위 경찰간부 중에 구씨가 흔한 성씨는 아니니까 구씨를 특정하지 못하도록 조선일보는 작은 부분까지 신경 써 고위직들의 신분을 감춰 줬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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