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현철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또 크레인이다. 이번에는 건설현장이었다. 지난 10일 아파트 신축공사장에서 타워크레인이 무너져 건설노동자 3명이 사망했다. 삼성중공업 타워크레인 사고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노동자들에 대한 외상후 스트레스 관리를 진행 중인 상황인지라 가슴이 더 먹먹해진다. 보도를 접한 노동자들이 또다시 그날의 참담한 기억을 떠올리게 될까 싶어서였다. 이미 이 지면에서 언급한 바 있으나 작금의 상황이 다시 펜을 들게 한다.

최근 고용노동부 자료를 인용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2012년부터 올해 5월까지 크레인 사고로 4천67건의 산재가 일어나 노동자 194명이 숨지고 3천937명이 다쳤다. 크레인으로 인한 재해는 중대재해인 경우가 많고 그 경험은 노동자들에게 심리적 트라우마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재해를 경험한 이들은 지금 어떤 상황에 놓여 있을까. 몸의 상처는 드러나지만 마음의 상처는 보이지 않기에 배려받기 어렵다. 몸의 상처가 아물어도 마음의 상처는 여전히 곪아 가고 있을 수도 있다.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와 관련한 우리 사회의 대응을 보자. 긴 경기불황 중 경험한 충격적 재해와 작업 중지, 이에 따른 경제적 부담은 동료의 죽음과 손상을 목도한 노동자들의 불안을 가중시켰을 것이다. 위태로움은 불을 보듯 훤했고, 부족하지만 당시 일부 진행된 외상후 스트레스 관련 설문 결과도 위험을 알리고 있었다. 그러나 제도가 미비해서, 선례가 없어서, 공공의 인력과 재원이 없어서 등등의 이유로 가장 중요했던 위기 개입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경제적 문제도, 심리적 문제도 어느 것 하나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고 있었다. 그간의 내부 사정이야 알 길 없지만 신임 노동부 장관이 임명됐고 지면에 다 옮기기도 어려운 여러 우여곡절 끝에 삼성중공업 타워크레인 사고 이후 노동자들에 대한 외상후 스트레스 관리를 지난 9월 중순에야 시작했다. 안전보건공단에서 필요한 재원을 지원하기로 했고, 경남근로자건강센터를 통해 지역 상담전문가와 자원을 연계해 공공 영역에서 풀어 보기로 한 것이다.

만시지탄! 그렇지만 해야 하는 일이었다. 뒤늦게 진행되다 보니 많은 노동자들이 당시 현장을 떠나 전국 각지로 흩어져 버렸다. 1천명이 넘는 노동자들을 일일이 접촉해 확인하고 설문하고 상태를 확인하는 일은 두세 배 시간과 자원이 수반되는 일이 돼 버렸다.

노동자들은 이야기한다.

“힘들고 어려울 때 노동부는 어디에 있었는가? 당신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어렵사리 잊고 지내던 일을 이제 와서 왜 다시 떠올리게 하고 힘들고 귀찮게 하는가?” “크레인만 보여도 가슴 떨려 멀리 돌아서 가야 하는 상황이 될 때까지 무엇을 했는가?” “가슴이 떨려서 다시는 조선소에서 일을 못할 거 같아서 떠나왔다. 그때 사업주와 정부는 무엇을 해 줬는가?”

노동자들의 날 선 반응을 감내해야 하는 감정노동은 일선 설문요원과 심리상담가들의 몫이었고 훌륭하게 수행해 냈다. 왜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불편한 것은 관리 프로그램을 시작하자마자 쏟아지는 행정관서의 요구와 질문들이다.

“몇 명을 설문했는가? 몇 명이 문제가 있는가? 몇 명을 상담했는가? 그럼 몇 퍼센트인가?”

오로지 숫자로 답해야 하는 질문들. "당시의 경험은 어떤 식으로 노동자들을 힘들게 만드는지, 노동자들의 상황이 악화될 만한 다른 요인들은 없는 것인지, 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어떤 지점을 힘들어하는지, 앞으로 필요한 것들은 어떤 것이 있을지"처럼 숫자로는 결코 표현할 수 없는 핵심적인 문제들에 대한 관심과 질문은 찾기 힘들다.

이해한다. 제도와 행정적 절차에 나와 있지 않으면 옴짝달싹하기도 힘든 공공행정 노동자들의 낮은 직무자율성과 그로 인한 스트레스를. 공감한다. 부족하기 짝이 없는 인력으로 산재공화국의 근로감독관으로, 산재예방과 관리담당부서의 노동자로 버텨야 하는 삶의 척박함을. 우려한다. 선기기간 유권자들에게 한껏 낮추던 위세를 국정감사라는 공간에서 맘껏 펼쳐 보이듯 쏟아지는 국회의원실의 자료요청 앞에서 소진되고 마는 공무원 노동자들의 과로를.

하지만 노동자들은 또 이야기한다.

“나야 괜찮은 상황이지만 같은 회사에서 동생같이 일하던 막대들을 보낸 ○○이는 어떡할지 걱정이다.” “나야 일도 나가고 설문이라도 답하지만 더 힘든 사람은 전화도 받기 힘들 것이다. 그들을 챙겨서 살펴야 한다.” “뒤늦게 이렇게 나오는 것이 화가 나고 분통 터지지만 이런 일이 또 생겼을 때 제대로 해야겠기에 설문에 응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체득하고 알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고 했던가. 노동자들에 대한 사랑, 노동부 존재이유에 대한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공감이 기본이다. 왜 하는지 알아야 잘할 수 있다. 숫자로 표현되지 않는 이면, 혹은 숫자로 대표되는 본질을 들여다보는 국정감사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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