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보이지 않는다. 광주행 KTX에서 읽었다. 어제 현대제철 순천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불법파견 근로자지위소송 항소심재판으로 광주고등법원에 가는 길이었다. 지난 9월20일자 보도기사였다. “19일 오후 1987년 노동자대투쟁 30주년을 맞아” 정의당과 그 부설 미래정치센터가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노동이 있는 민주주의,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개최한 토론회 소식이었다. 한 달이 다 돼가는 토론회 기사에 나는 암담해 했다. “민주노총 주력세대는 쇠퇴한 게 아니라 타락했다.” 제목만큼이나 깜깜한 기사였다(매일노동뉴스 2017년 9월20일자). 그때는 아직 늦더위가 가시지 않은 날이었을 텐데, 지금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있다. 완연히 가을 색으로 세상은 바뀌었음에도 나는 철지난 뉴스를 흘려버리지 못했다. 깜깜하다. 가야하는데 갈 길이 보이지 않는다. 노동자의 이름으로 투쟁의 길이 시작된 이래 오늘 같은 날이 있었던가. 민주노조운동 30년이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된 민주노조운동이 겨우 한 세대의 시간을 지나왔을 뿐이다. 그런데도 또렷하던 길이 흐려지더니 보이지 않는다. 민주니 자주니, 노동이니 민중이니, 계급이니 민족이니 최고와 최저의 강령 사이를 오가며 세상을 달리하는 양 서로 차이를 벌려 투쟁을 외쳐 왔던 30년이건만 오늘은 그 외침조차 자꾸 초라해진다. 이 나라에서 그런가. 100년. 1917년 노동자세상을 내걸고 전개됐던 러시아혁명에서 이 세상의 노동운동은 한 세기의 시간을 지나왔다. 드높았던 노동의 깃발도 세상을 울렸던 혁명의 노래도 사라졌다.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2. 노중기 교수는“‘비정규노동 중심의 사회연대체제 구축’을 새로운 노동체제로 제안하면서 민주노총 또는 이른바 민주노조운동 진영을 비판했다”며, 노 교수는 “총연맹은 정보제공·연구·평가기능을, 산별노조는 조직화와 투쟁사업을 해야” 하는데, “총연맹이 정책연구는 하지 않고 산별노조가 해야 할 투쟁을 뻥파업으로 하면서 (우리가 투쟁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알리바이 기구가 돼 버렸다”고 지적했다고 보도하고 있었다. 그는 “정책연구를 하지 않으니 정파들은 서로 자기가 옳다면서 대화를 하지 않는데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위기”라고 덧붙였다고 했다. 아픈 말이다. 총연맹이 정책 기능을 제대로 하고, 산별노조가 조직과 투쟁 사업을 성과 있게 해 냈다고 당당히 내세울 수 없는 실정이니 말이다. 자꾸 의기소침해질 수밖에 없는 비판의 말이라고 어쩔 수 없이 민주노총과 산별노조는 아파할 말인 것이다. 이런 말을 듣게 되면 민주노총 등 총연맹은 정책 기능을 강화하고 금속노조 등 산별노조는 조직 확대와 투쟁 강화를 위해 결의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여기게 된다. 아프게 반성하게 될 수밖에 없다. 이제라도 정책연구에 매진해서 민주노총 각 정파들이 제대로 대화해서 이 나라 노동운동의 위기를 타개해 나가길 진정으로 바라게 된다. 어쩌다 우리의 총연맹, 특히 민주노총은 “정책연구는 하지 않고 산별노조가 해야 할 투쟁”이나 하면서 ‘뻥파업’이나 하는 투쟁의 ‘알리바이 기구’로 전락하고 만 것일까. 스스로를 자책하는 이런 의문에 빠지면 뭔가 새로운 노동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교수의 지적에 동조하게 된다. 그래야 하는 것일까. 소심하지만 나는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총연맹은 정책기능을 하지 않고 산별노조는 조직과 투쟁사업을 하지 않은 것일까. 하지 않았다고 말할 순 없다. 했지만 제대로 되지는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겠다. 그럼 총연맹이 정책기능을 제대로 하고 산별노조가 조직과 투쟁사업에 매진해야 한다고 이 나라에서 노조운동은 인식하고 있지 않는가. 아니다. 정도는 차이가 있어도 그렇게 사업을 전개해야 한다고 여기고 있다. 단지 그것이 제대로 되지 않을 뿐이다. “총연맹이 정책연구”를 하긴 했지만 “산별노조가 해야 할 투쟁”을 총연맹 차원에서 수행할 요구와 필요로 뻥파업이라는 비난을 감수하고라도 전개해 왔다. 사업장 단위 투쟁이라도 해당 노조의 투쟁으로 되지 않으니 총연맹의 깃발을 걸고서 투쟁을 외쳐 왔다. 그건 “(투쟁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알리바이”는 아니었다.

이날 토론회에서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도 최근 불거진 최저임금 인상 논란과 비정규직 정규직화 논란을 언급하면서 민주노총을 겨냥했다”고 보도됐다. 이남신은 “금속노조 기아자동차지부가 사내하청지회를 지부조직 편제에서 제외하고, 금속노조가 현대자동차 판매비정규 노동자들을 가입시키지 않는 것에 대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며 그는 “민주노조 주력세대는 쇠퇴한 게 아니라 타락한 것”이라며 “원칙적으로 보면 금속노조를 민주노총에서 제명해야 할 일”이라고 주장했다고 매일노동뉴스는 보도했다. 이 나라에서 민주노조운동이 이 모양인 것이, 민주노조 주력세대가 쇠퇴한 탓이 아니라 타락한 탓이라고 진단한 것이니 너무도 아픈 비판이 아닐 수 없다. 타락. 도저히 용납하기 어려운 말이다. 민주노조운동에는 타락은 그저 노조운동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이니 말이다. 투쟁으로 쌓아 온 이 나라 민주노조운동이 별 볼 일 없는 것이라고 비난하는 말이다. 노동자대투쟁 30년을 맞이한 오늘 민주노총 등 민주노조운동의 진영에는 더 없이 아픈 말이 이 ‘타락’했다는 말이다. 도대체 어쩌다 이런 말을 다 들을 지경이란 말인가. 1987년 노동자대투쟁 당시에는 얼마나 대단했다고, 그때 세웠던 민주노조운동이 “쇠퇴한 게 아니라 타락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그때 30년 전에는 사내하청·비정규 노동자와 한 조직으로 편제해야만 민주노조라고 불렀던 것도 아니다. 고작해야 정규직끼리의 노조를 두고서 거창하게 민주노조라고 외쳤다. 노조라고 해 봐야 기업별노조였다. 노사협의회와 다름없는 어용노조를 노조답게 바꿔 내겠다고 민주노조를 외쳤던 것이다. 돌이켜 보면 대단한 민주노조운동도 아니었던 것이다. 비정규직·사내하청 노동자는 당연히 배제하고서도 민주노조라고 환호했다. 그리고서 30년, 민주노조운동은 사내하청·비정규직도 한 노동조합으로 묶었다. 정규직끼리였던 것을 노동자끼리 산별노조체계로 전환해 왔다. 그랬는데도 “쇠퇴한 게 아니라 타락한 것”이라고 비난받고 있다. “금속노조 기아자동차지부가 사내하청지회를 지부조직 편제에서 제외하고, 금속노조가 현대자동차 판매비정규 노동자들을 가입시키지 않는” “있을 수 없는 일”에 타락이라고 비난을 받았다. 금속노조라는 노동조합으로 하나였지만, 기아차지부와 현대차지부로 지부 편제에서 하나로 하지 못해서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이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사내하청이든 판매든 노동자는 하나다. 그래야만 사용자 자본과 권력에 맞서 노동자의 권리를 쟁취해 나갈 수 있다. 이렇게 수단으로서 의의가 있다. 그래야만 차별의 세상을 넘어 노동자는 자유와 평등을 꿈꿀 수 있다. 이렇게 목적으로서 의의가 있다. 수단이라면 교섭과 투쟁하기 편한 대로 노조로 조직을 편제하면 그만이다. 그저 수단만이 아니기에, 노동조합 자체가 노동자세상을 꿈꾸는 노동자조직이어야 하기에 차별 없이 하나로 조직돼야 하는 것이고, 그래서 작은 차이로 나뉘는 것조차 안타깝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더라도 나는 감히 ‘타락’을 말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 나는 이남신과 달리 민주노조운동의 주력을 맡아 왔던 현대차·기아차지부의 금속노조를 민주노총에서 제명해야 하는 일이라고 감히 말하지 못한다.

3. 이날 토론회에서는 민주노총의 사회적 대화 참여를 주문했다고 기사는 쓰고 있었다. 노중기 교수는 “노동이 수세적이었던 참여정부와 달리 경제민주화와 노동존중을 추진하는 문재인 정부에서는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 들어가 전략적인 과제를 요구로 제출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남신 활동가는 “어렵지만 주도적으로 개입하면서 노동자들의 이해를 관철시키는 전방위 전략이 필요하다”며 “투쟁과 교섭을 투트랙으로 하자”고 제안했다고 보도하고 있었다. 이 자본의 세상에서 노동자의 권리와 자유를 위해 활동하는 노동자단체인 노동조합이 교섭과 투쟁을 해야 한다는 건 너무도 당연하다. 교섭과 투쟁은 투트랙이 아니라 노동조합의 당연히 걸어야 할 트랙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날 토론회에서는 노사정위원회 등 사회적 대화를 두고서 참여해야 한다고 투르랙을 말했다. 얼마 전 문성현 위원장이 노사정위원장으로 임명되고 나서 더욱 본격적으로 문재인 정부는 사회적 대화를 말하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서도 맥락은 다르지 않았다. 비정규직을 위한 사회적 연대체제니 대기업 정규직노조운동의 타락이니, 그래서 가야 할 길은 비정규직노동 중심의 운동인 것이고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사회적 대화기구에 적극 참여한다는 식이라고 나는 이날 토론회 기사 읽기를 마쳤다. 그런데 그러면 되는가. 도대체가 새로운 노조운동의 상이라고 나는 읽어 내지 못하겠다. 타락했다는 민주노조운동의 주력세대를 어떻게 할 것인지는 찾아볼 수가 없다. 타락했다면 이제라도 타락에서 빠져나와 민주노조운동의 길, 노동자의 권리와 자유를 위한 투쟁의 길을 가도록 해야 할 것인데 말이다. 비정규직 중심의 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 말고, 사회적 대화 말고는 없다. 나는 오늘 민주노조운동이 지리멸렬인 것은 그 조합원·노동자 대다수를 투쟁의 길에 세우지 못해서라고 본다. 민주노조운동은 노동자의 권리와 자유를 위해 사용자 자본과 권력에 맞서 더욱 더 자주적으로 투쟁하는 노조운동이다. 민주노조운동의 길은 투쟁의 길인 것이다. 주력인 노동자들이 앞장서 노동자 스스로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길인 것이다. 그것으로 쇠퇴든 타락이든 노조운동은 평가될 것이다. 앞으로 또다시 30년, 100년의 노동운동은 말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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