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삼성 비자금 의혹 관련 특검에서 확인된 1천여개에 이르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차명계좌가 실명으로 전환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회장은 차명계좌에 있던 4조5천억원 중 4조4천억원을 과징금·세금 추징 없이 빼 갔다. 과징금 환수시한이 1년여밖에 남지 않아 금융당국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국회 정무위원회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아 16일 공개한 '2008년 조준웅 특검시 확인된 은행별 차명계좌 및 실명전환 현황'에 따르면 이건희 회장이 차명으로 개설한 64개 은행계좌 가운데 단 1개만 실명으로 전환됐다. 63개 계좌는 계약해지 또는 만기해지됐다. 957개 증권 차명계좌는 단 한 건도 실명 전환되지 않았다.

앞서 2008년 조준웅 특검은 삼성 전·현직 임원 486명의 명의로 된 1천199개의 차명계좌에 주식과 예금 등 총 4조5천373억원 상당의 이 회장 차명재산이 예치돼 있는 것을 확인했다. 특검이 이를 이병철 선대 회장에게 상속받은 재산이라고 인정하면서 '삼성 봐주기 특검'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이 회장은 사과문을 발표하면서 "조세포탈 문제가 된 차명계좌는 경영권 보호를 위해 명의신탁한 것으로 모두 실명으로 전환하겠다"며 "누락된 세금을 모두 납부한 후 남는 돈을 회장이나 가족을 위해 쓰지 않고 유익한 일에 쓰도록 하는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금감원 확인 결과 이 회장은 약속과 달리 주식과 예금 같은 차명재산 중 4조4천억원을 이미 찾아가면서 세금과 과징금을 내지 않았다.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금융실명법)에 따르면 실명전환 의무기간(1993년 8월12일~10월12일)이 지난 뒤 실명전환할 경우에는 과징금과 함께 그동안의 이자·배당수익 등에 세금을 부과하도록 돼 있다. 박용진 의원은 이 회장이 내야 할 과징금이 2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했다.

박 의원은 "이 회장은 특검이 차명계좌를 찾아내자 실명 전환과 세금 납부, 사회공헌을 약속했지만 결국 약속도 어기고 국민도 속였다"며 "국세청은 실종된 경제정의와 미뤄진 공정과세를 실현하기 위해 당장 징수작업에 착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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