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운송사업의 발전에 관한 법률(택시발전법)에 따른 운송비용 전가금지 제도가 이달부터 전국 지방자치단체까지 확대 시행됐다. 운송비용 전가금지는 택시운행에 필요한 유류비·사고처리비·세차비·차량구입비를 택시기사에게 부담시키지 못하게 하는 제도다. 광역자치단체는 지난해 10월부터, 기초자치단체는 올해 10월부터 시행했다.

그런데 택시운송 사업주들이 자신들이 부담해야 할 운송비용을 기사에게 떠넘기는 편법을 쓰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유류비 미사용분을 환급하거나 차종별 사납금을 차등 징수하는 식이다. 지난달 18일 국토교통부가 '택시운송비용 전가금지 관련 추가지침'을 내놓았지만 사업주들은 '배째라' 식으로 반발한다.

일례로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회장 박복규)가 노조 명의를 도용해 "운송비용을 택시기사들이 일부 부담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취지의 탄원서를 사업장에 배포했다가 노조에 적발됐다. 전북지역 한 택시회사는 운송비용 전가금지 제도가 시행되자마자 관할 행정기관 휴업허가도 받지 않은 채 보름째 무단휴업 중이다. 노동계는 실태조사를 통해 운송비용 전가금지 위반 사업주를 강력하게 제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토부 '운송비용 전가금지 추가지침'에도 법 위반 여전

15일 국토교통부와 택시업계·노동계에 따르면 택시발전법상 운송비용 전가금지제도가 시행된 지 1년이 지났지만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국토부는 지난달 발표한 '택시운송비용 전가금지 관련 추가지침'에서 △유류비 사용기준을 임의로 정하고 미사용 유류량을 금액으로 환산해 택시기사들에게 돌려주는 행위 △차종·차령에 따라 운송수입금 기준액(사납금)에 차등을 두거나 신차에 대한 추가금을 부과하는 행위를 운송비용 전가금지 위반으로 규정했다. 지난해 광역자치단체 시행 뒤 이런 방식의 꼼수로 택시기사들에게 운송비용을 전가하는 사업주들의 편법이 난무하자 추가지침으로 해당 행위가 법 위반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추가지침은 올해 4월부터 국토부와 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전택노련·민주택시노조, 전문가가 참여한 '택시근로자 여건 개선을 위한 TF'에서 합의·도출한 내용이다.

그럼에도 현장에서는 보란 듯이 추가지침을 위반하는 사례가 속속 적발되고 있다. 민주택시노조에 따르면 경북 구미 한 택시회사는 이달 운송비용 전가금지 시행을 앞두고 종전에 지급하던 유류량을 40리터에서 50리터로 늘리면서 사납금을 8만1천원에서 10만7천원으로 2만6천원 올렸다. 미사용분은 리터당 600원씩 계산해 택시기사들에게 돌려주기로 했다. 구형 차량을 배차받은 택시기사에게는 사납금을 3천원 덜 받았다. 충남 서산에서는 회사가 유류량을 30리터에서 41리터로 늘리면서 사납급을 9만6천원에서 13만1천원으로 올렸다.

사업주들은 미사용분을 기사에게 돈으로 돌려주면서 '성과급'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노동계는 미사용분을 돌려받는 것 자체가 의미 없다고 비판했다. 통상 사용하는 유류량보다 과도하게 지급하고, 이를 이유로 사납금을 대폭 올리기 때문이다. 국토부도 이 같은 행위가 "택시기사의 선부담을 전제로 하고 있다"며 운송비용 전가금지 위반으로 보고 있다.

천안에서는 사납금을 16만8천원에서 21만8천원으로 올리면서 사납금을 초과한 카드매출 금액의 40%를 회사 몫으로 떼어 간 업체도 있다. 예컨대 하루에 교통카드 매출금액이 25만원인 경우 사납금을 초과하는 금액(3만2천원)의 40%인 1만2천800원을 회사가 가져가는 것이다. 김성재 민주택시노조 정책국장은 "카드사용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어, 각종 세금을 줄이려는 업체들이 이런 꼼수를 쓴다"고 설명했다.

노조 명의 도용해 탄원서 배포한 택시연합회
운송비용 전가금지 시행 앞두고 휴업한 택시회사


최근에는 택시연합회가 "미사용 유류비 환급과 노후차량 사납금 인하를 허용해 달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노조 명의를 도용해 사업장에 배포했다가 노조가 거세게 항의하는 일도 일어났다. 임승운 전택노련 정책본부장은 "마치 택시기사들이 운송비 전가금지 위반 사항을 다시 허용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처럼 꾸민 탄원서를 만들었다가 현장 제보로 들통났다"며 "택시연합회에 항의하고 재발방지를 요구했다"고 말했다.

택시연합회 관계자는 "상급단체(전택노련·민주택시노조)와 견해차가 있는 지역 단위노조에서 탄원서 샘플을 요구해 만들어 준 것일 뿐"이라며 "연합회가 탄원서를 뿌리고 기사들의 연명을 요구한 건 아니다"고 해명했다. 택시업계 관계자는 "박복규 회장이 TF에서 추가지침에 합의했다가 사업주들에게 엄청난 항의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코너에 몰린 연합회가 탄원서까지 만든 것 아니겠냐"고 귀띔했다.

전북 익산 소재 ㅎ택시는 지난달 30일 회사에 '전 차량 운행정지'라는 제목의 공고를 붙였다. 회사는 "2017년 10월1일부터 시행되는 택시발전법에 의한 노사협상을 했으나 협상 결렬로 10월1일부터 전 차량 운행을 정지한다"며 "30일 오후 12시까지 LPG 충전 완료 후 차량을 차고지에 입고하라"고 밝혔다. 노사는 사납금 인상액을 놓고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

회사는 추석연휴 직후인 이달 10일 익산시청에 내년 10월9일까지 1년간 휴업하겠다는 내용의 휴업허가 신청서를 냈지만 익산시가 불허했다. 장기간 휴업이 지속되면 택시기사 생계가 곤란해지고, 시민들의 택시이용 불편이 초래된다는 이유에서다.

김성재 정책국장은 "운송비용 전가금지가 시행되자마자 사업주가 임의로 택시운행을 전면 중단시킨 데다, 익산시 휴업허가도 받지 않고 무단휴업을 하고 있다"며 "강력한 행정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운송비용 전가금지 시행을 둘러싼 사업주들의 편법과 반발에 국토부는 법 위반 여부를 철저히 점검하겠다는 방침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사납금 기준액 등 근로조건은 노사 간 자율적 협의로 결정하는 것이지만 자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악용하는 사례도 많다"며 "운송비용 전가금지 위반 여부를 점검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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