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호동 ㈔디지털노동문화복지센터 이사장이 지난 15일 원주금융회계고등학교에서 <전력질주> 북콘서트 특강을 하고 있다. <김학태 기자>
<전력질주> 두 번째 북콘서트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재학생 앞쪽 왼쪽부터 전교조 원주금융회계고분회 분회장인 민찬기 교사, 봉혜경 ㈔디지털노동문화복지센터 상임이사, 이호동 이사장, 박운 매일노동뉴스 공동대표, 이도형 남한강 생태마을 네트워크 사업총괄 대표. <김학태 기자>

“실례가 안 된다면, 밀양 송전탑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순간 조용해졌다. 특강을 하던 전력산업 출신 노동자에게 던져진 날카로운 질문. 곧이어 “오~” 하는 웅성거림. 강사는 고2 학생에게 “혹시 사전에 토론해서 준비한 건가요”라고 농을 던진 뒤 자세를 가다듬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 그냥 따르쇼, 이래선 안 됩니다. 충분히 토론하고 인내하면서 처리해야 하는 문제인데 정부가 막 밀어붙였어요. 주민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면 송전선로를 옆으로 돌려야 합니다. 전문용어로 국민적 수용성이라고 하는데, 국민이 수용할 수 있는 그런 조치를 먼저 취해야죠. 밀양 송전탑 문제는 우리 시대에 굉장히 안타까운, 그리고 전력을 공급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반성적 과제를 전력당국에 준 사건입니다.”

“왜 위원장을 하셨어요?”

“그냥 조합원을 해도 되는데 왜 위원장을 하셨어요?”

고1 학생이 연타를 날렸다. 햇수로 16년째 해고자 신분인 강사는 멈칫했다.

“하…. 이 일을 어떡하죠. 가급적 노조위원장 시절 이야기는 피하려고 했는데 이런 질문이 나왔네요.”

이달 15일 오전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에 위치한 원주금융회계고등학교(교장 고승훈)에 이색적인 자리가 마련됐다. 매일노동뉴스가 올해 3월 발행한 <전력질주> 두 번째 북콘서트. 첫 번째 북콘서트는 6월 인천광역시 옹진군 덕적도에서 열렸다. 저자는 공공전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도서산간지역 북콘서트를 희망했다.

<전력질주>는 2002년 한국발전산업노조의 전력·에너지산업 민영화 저지투쟁을 기록한 투쟁백서다. 발전노조 파업과 명동성당 농성, 한국 전력산업과 일본 전력사회화 투쟁, 전력산업 공적 소유와 운영의 길을 제시한 책이다. 저자인 이호동(52) ㈔디지털노동문화복지센터 이사장은 당시 발전노조 초대위원장으로 2002년 2월25일부터 38일간 파업을 이끌었다.

북콘서트는 원주금융회계고 재학생 특강 형식으로 진행됐다. 부성현·박운 매일노동뉴스 공동대표와 봉혜경 디지털노동문화복지센터 상임이사, 이도형 남한강 생태마을 네트워크 사업총괄 대표가 함께했다.

원주금융회계고는 강원도 원주와 경기도 여주, 충청북도 충주 등 삼도가 인접한 지역에 있다. 남한강과 섬강 사이에 자리 잡은 특성화고다. 금융회계 전문가 양성을 목표로 금융회계과를 운영하는데, 올해 9월 기준 전교생은 73명이다.

노동조합운동과 노동자 파업, 전력산업과 공공성. 금융회계를 공부하는 특성화고 학생에게 어울리는 주제일까. 이호동 이사장은 자신의 경험부터 풀어냈다.

“너무 긴장하지 마시고요. 노조위원장 출신치고는 제가 만만해 보이는 몽타주잖아요(웃음). 30여 년 전 저도 특성화고를 다녔습니다. 수도전기공고라고. 국비장학생이었죠. 여러분들처럼 3년간 기숙사 생활을 했습니다. 자유롭고 즐겁게 생활해야 할 시기에 공동체생활을 이어 나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분위기가 다소 밝아졌다. 학생들은 동질감을 느낀 듯 호기심을 나타냈다.

전기 주인은 국민, 함부로 팔아서야

“원래 전력질주는 죽기 살기로 온 힘을 다해 달린다는 뜻이죠. 책 <전력질주>는 그게 아니에요. 전기의 ‘전력’을 말합니다. ‘질’과 ‘주’는 조어입니다. 전기의 질을 어떻게 높일 것이며, 전기의 주인은 누구인가. 이 문제의식을 담은 책이 <전력질주>입니다.”

강의 주제는 1887년 국내 처음으로 전깃불을 밝힌 경복궁 건청궁 이야기에서 생산·소비가 동시에 일어나는 상품인 전기의 특성, 공공재 정의, 국가기간산업의 중요성, 외환위기로 이어졌다.

“1997년에 우리나라에 엄청난 사건이 일어납니다. 외환위기에 빠지죠. 금 모으기 운동까지 했어요. 돈 되는 건 다 팔자, 이렇게 결정합니다. 절대 팔아서는 안 되는 전력·철도·가스회사까지. 그때 해외자본들이 한국 전력산업을 보고 그랬어요. 먹기만 하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국가기간산업을 외국에 팔아넘기는 조건으로 외환위기를 극복한 거예요. 돈을 그냥 빌려주는 게 아니거든요. 여하튼 그렇게 해서 외환위기를 극복하게 됩니다.”

해외자본들은 외환위기 이후 국가기간산업에 군침을 흘렸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현재 세계은행)을 비롯한 초국적 자본이 한국 정부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압박했다. 그래서 나온 대표적인 조치가 전력산업 민영화 추진이었다.

“노동자들은 민영화에 반대했습니다. 사회 전체를 위해 희생하자고 마음먹었죠. 위원장인 저에게 엄청난 어려움이 닥쳐올 것이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인간적인 고초를 겪었습니다. 2002년 파업으로 고통을 당했던 사람들은 다 복직이 됐어요. 저만 16년째 해고자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파업 당시 국민을 위한 희생, 그 과정에서 얻은 징계를 훈장으로 알겠다는 입장을 냈는데, 결국 민영화를 중단시켰습니다. 물론 제 가족들은 고통을 겪었죠. 막내가 구속되고 해고됐으니까. 왜 위원장을 맡았냐고 하시는데, 사람마다 가치판단과 기준은 다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아버지 어머니도 노동자”

이호동 이사장은 파업으로 감옥에 갔다 왔다. 그로부터 16년째 해고자 생활을 하고 있다. 특수한 사례다. 사촌동생 결혼식 주례를 하면서 우스갯소리로 “형처럼 살지 마라”고 했을 만큼. 이 이사장은 “공익을 위해 싸우고 불이익을 받는 사람이 많은 사회는 올바른 사회가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익 기능은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겁니다. 세월호에 빠져서 나오지 못한 학생들은? 그렇죠. 국가가 지키고 구해야죠. 그런 일이 없도록 미연에 방지하고 유사시에는 그들을 건져 내야죠. 그게 제대로 된 사회입니다.”

그는 특강에 앞서 “노동자를 부끄러워하지 마라”고 거듭 강조했다.

“일반 직장인들, 흔히 노동자라고 하죠. 일하는 사람들. 노동자라는 이름이 나쁜 게 아니거든요. 그게 각색돼서 왜곡됐을 뿐입니다. 여러분들의 아버지 어머니도 노동자입니다. 농민일 수도 있죠. 일하는 분들을 통칭하는, 월급을 받으면서 일하는 모든 분들을 통칭하는 이름이 노동자예요. 외국에서는 그것을 왜곡되게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그 이름을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이날 특강을 주선한 전교조 원주금융회계고분회 분회장 민찬기 교사는 “2002년이면 한일 월드컵으로 온 나라가 들떠 있는 민주정부 시기였는데 그래서 싸움이 외롭고 힘들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런 측면도 있었죠.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대의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민영화가) 거역할 수 없는 대세처럼 여겨졌어요. 문재인 정부가 민주정부 3기라고 하는데요. 양심수를 비롯해 우리 사회 민주화를 위해 싸운 많은 사람들이 잃었던 권리를 회복하는 계기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이호동 이사장은 끝으로 “사회 공익을 위해 자신의 삶과 사회 공익을 일치시키는 훌륭한 사회인으로 성장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한편 <삶이 보이는 창>을 발간하는 디지털노동문화복지센터는 최근 충주 소태면 덕은리에 있는 덕은학교를 ‘치유와 쉼터’로 리모델링 중이다. 충주교육지원청으로부터 폐교 상태인 덕은학교를 임대한 덕은학교 영농법인과 공동운영을 위해 업무협약을 맺었다. 일상에 지친 노동자들이 편히 쉬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글·사진=김학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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