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역 택배노동자 10명 중 7명은 몸이 아픈데도 출근해 일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휴무시 대체차량 비용부담 탓에 아픈 몸을 이끌고 일하고 있었다.

최근 잇단 과로사로 장시간 노동 해소 필요성이 제기된 우체국 노동자보다 노동시간이 길어 건강보호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대체차량 비용부담에 “아파도 일해”

서울노동권익센터와 강병원·최인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6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택배기사 노동실태와 정책대안 모색’ 토론회를 개최했다. 서울노동권익센터는 서울지역 택배기사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노동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택배노동자들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74시간이나 됐다. 연간 노동시간으로 환산하면 3천848시간으로 지난해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인당 연간 노동시간 1천764시간의 두 배를 웃돌았다. OECD에서 두 번째로 장시간 노동을 하는 우리나라 평균 노동시간(2천69시간)보다 1천779시간이나 길었다.

장시간 노동에도 쉬는 날이 거의 없었다. 응답자들의 한 달 평균 근무일수는 25.3일. 일요일을 제외하고 주 6일 근무하기 때문이다. 일요일과 공휴일을 제외한 한 달 평균 휴일은 고작 0.152일이었다. 일요일과 공휴일을 빼면 휴일이 없다고 답한 비율이 90.6%나 됐다.

쉬는 날이 거의 없다 보니 몸이 아픈 날에도 일하는 노동자들이 많았다. 응답자들의 74.1%는 지난해 몸이 아픈데도 출근한 경험이 있었다.

대체차량 비용부담이 큰 점도 택배노동자들이 쉬지 못하는 주요 이유다. 쉬려면 용차 혹은 대차라고 부르는 차량을 수배해야 하는데, 그 비용이 배송 수수료의 두 배다. 비용은 모두 택배노동자가 부담해야 한다.

“건강상태 면밀한 조사 필요”
“직접고용 늘려 노동시간 줄여야”


최근 1년간 응답자들이 걸린 질병을 보면 상체근육통(85.8%)·하체근육통(63.8%)·요통(50%)·위장병(26%) 순으로 많았다. 무거운 화물을 들면서 근골격계질환에 많이 노출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택배노동자 주당 평균 노동시간 74시간은 우체국 집배원들보다 길다. 노동자운동연구소가 2014년 조사한 집배노동자들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55.9시간이었다. 택배노동자들도 집배노동자들처럼 과로사할 가능성이 높은 환경에 처한 것이다.

심혈관계질환에 걸린 택배노동자는 500명 중 2명뿐이었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신태중 서울노동권익센터 연구위원은 “이번 조사 과정에서 면접한 일부 택배기사들은 주변 기사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은 경험이 있다고 전했다”며 “택배기사의 장시간 노동과 건강상태에 대한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택배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 해소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신태중 연구위원은 △법정 노동시간 적용 △여유인력 확보를 통한 휴게·휴일 보장 △화물 분류작업 투입 금지 △수수료 현실화와 표준운임제 시행 △택배업체와 기사 간 불공정계약 관행 개선 △산재보험 가입률 제고를 주문했다.

택배업체와 대리점이 기사를 직접고용해 노동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화물 개수당 수수료를 받는 구조에서 택배기사들이 조금이라도 수익을 올리기 위해 장시간 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얘기다.

이주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정부가 직접고용 의무비율 시행지침을 마련하거나 지난해부터 시행하고 있는 화물운송서비스 평가업무 지침에 직영차량 비율과 기사 처우수준을 반영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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