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양대 지침이 폐기된다. 25일 고용노동부는 김영주 장관이 주재한 첫 전국기관장회의에서 일반해고 지침과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에 관한 지침을 폐기하기로 결정했다. 1년8개월 만에 지침이 폐기되게 됐다고 언론은 보도하고 있다. 지난해 1월22일, 박근혜 정권의 이기권 노동부 장관이 그 지침을 발표했었다. 이 나라 노동자들을 저성과자로 내몰아 내쫓을 수 있도록 안내한 일반해고 지침, 그리고 이런 일반해고제는 물론 임금피크제·성과연봉제 등 노동자에 불이익한 취업규칙을 사용자의 일방적인 변경에 의해서 도입할 수 있도록 사회통념상 합리성 운운하며 안내한 취업규칙 변경지침 등 양대 지침이었다. 그 양대 지침을 폐기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마땅히 ‘드디어’ ‘마침내’를 섞어서 폐기에 대한 감회를 쏟아 내야 마땅한 것이 아닐까. 하지만 나는 그저 양대 지침이 폐기된다고 쓰고 있다.

2.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일제히 “양대 지침 폐기를 환영한다”고 입장을 발표했다. 민주노총은 “법을 무시한 전형적인 행정독재였던 양대 지침 폐기를 환영”하고, “노동적폐 청산과 비정상적 노동정책의 정상화를 위한 첫걸음으로 평가하고 기대한다”고 논평했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지금이라도 2대 지침의 공식폐기를 선언한 것은 다행스런 일로 환영한다”며 한국노총은 “지침은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을 심화시키고 사용자 마음대로 노동조건을 개악시킬 수 있도록 하는 내용으로 노정관계를 파탄 내고 한국노총이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 불참하는 원인이 된 지침”이며, “이번 2대 지침 폐기는 문재인 정부의 대선공약 이행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형편없이 파괴됐던 노정 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렇게 오늘 이 나라에서 양대 지침 폐기에 관한 입장은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을 가릴 것 없이 일제히 ‘환영한다’이다.

3. 매일노동뉴스 홈페이지에서 칼럼을 뒤졌다. ‘김기덕의 노동과 법’ 칼럼목록에서 양대 지침 관련해서 썼던 것을 찾아 읽었다. 양대 지침은 1년8개월 전인 2016년 1월22일 노동부 장관 이기권의 발표로 갑자기 이 나라 노동자들에게 닥쳤던 재앙이 아니었다. 이미 2015년 9월13일 노사정위 대표자들의 합의가 있었다.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박병원 한국경총 회장·이기권 장관·김대환 노사정위원장은 노사정 대표자회의를 열어 이날 오후 7시30분께 최종 조정문안을 채택했다. 이에 방송과 신문 등 언론은 노사정 대표에 노사정위원장까지 참석해서 노사정이 사회적 대타협을 한 거라고 환호하고 보도했다. 이틀 뒤인 15일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합의문’으로 발표했다. 그것은 박근혜 정권이 발표하고 추진해 왔던 노동시장 구조개혁안에 관한 것이었다. 노동자권리와 관련해 주요 합의사항은 비정규직법·근로시간단축·통상임금·임금피크제·일반해고, 그리고 그 절차로서 취업규칙 변경 등이었다. 당시 노사정 합의에서 주된 논의는 임금피크제·일반해고, 그리고 그 절차로서 취업규칙 변경에 관해서였다. 임금피크제 등 임금제도 개선에 관해 “임금피크제 등 임금체계 개편이 고용친화적인 방향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연구·교육, 모델개발·확산 및 단체협약·취업규칙 개정에 적극 협력하고 정부의 선도적 역할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대해 당시 나는 “임금피크제 등 임금체계 개편을 ‘고용친화적인 방향’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단체협약·취업규칙 개정에 적극 협력하고, 정부의 선도적 역할을 강화한 점이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절차에 노조가 적극 협력하고 무엇보다도 그 절차를 정부가 행정지침을 통해서 할 수 있도록 합의한 것이라고 읽힌다”고 노사정 합의를 비판해서 칼럼에 썼다. 또한 “일반해고에 관한 합의 부분을 읽어 보면 ‘노사정은 기준과 절차를 법과 판례에 따라 명확히 한다’고 합의하면서도 이 과정에서 정부가 ‘일방적으로 시행하지 않’고 노사와 충분히 협의를 하도록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반해고의 기준과 절차를 노사정 합의가 아니라 정부가 제도개선시까지의 분쟁예방 등을 위해 행정지침으로 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아닌가라고 읽히는 지경”이고, “노사와 충분한 협의는 노사와 합의 없이 정부가 시행할 수 있도록 허용해 준 합의라는 것”이라고 나는 비판했었다. 이렇게 쓰고서 나는 결론에서 “임금피크제·일반해고, 이에 관한 취업규칙 변경까지 합의는 노동자권리를 삭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말았다”고 개탄하면서 ‘배신의 합의’라는 제목을 달아 2015년 9월15일 칼럼을 매일노동뉴스에 게재했었다. 이뿐이었겠는가. 그 다음주에 게재한 칼럼에서도 ‘합의의 가면’이라는 제목으로 노사정 합의를 비판했고, 그 뒤에도 임금피크제·일반해고·노동시간단축·통상임금 등 그 합의와 추진이 노동자권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지적해야 했다.

4. 사실 뭐가 문제겠는가. 지침을 발표하거나 말거나, 지침을 폐기하거나 말거나 그것은 노동부의 일이고 뭐가 문제이겠는가. 법도 아니고, 법을 해석·적용하는 법원의 판례도 아닌데 말이다. 하지만 노동부 지침인데 뭐가 문제이겠냐고 대범하게 대응할 수가 없었다. 위법한 지침이면 위법한 것이니 무시하면 그만인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런 지침대로 사용자가 노동자권리를 삭감하면 법대로 하면 그만인 것이라고 이 나라에서 노동자도, 노동조합도, 그리고 노동자권리 타령으로 사는 나도 무심하지 못했다. 법도 판례도 아니지만 그에 따라 사용자들이 이 나라 노동자들을 저성과자로 몰아 해고하고, 취업규칙을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불이익하게 변경해서 임금피크제·성과연봉제 등으로 임금 등 근로조건을 삭감하는 게 걱정이 됐다. 노사정 합의를 비난하고 노사정위에서 탈퇴하고 노동자대회 등 노동자투쟁에서, 심지어 지난 겨우내 촛불집회장에서도 양대 지침 폐기를 외쳤다. 법을 무시한 위법한 지침이면 굳이 이 나라 노동운동이 그걸 폐기하겠다고 전력으로 투쟁할 것까지는 없었던 것일 텐데도 말이다.

5. 문재인 정부는 양대 지침을 폐기했다. 촛불집회로 박근혜 정권을 심판하고서 촛불대선을 통해 집권한 권력이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당신은 더욱 감격해서 환영한다고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드디어 노동자투쟁이 승리한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법도 아니고 법원의 판례도 아닌 위법한 지침을 노동부가 폐기하겠다고 결정한 것이라면 그 소식을 듣는 노동의 입장이 환영한다고, 마침내 노동자투쟁이 승리한 것이라고 감격해야만 할 일은 아니다. 도대체가 노동자권리를 위해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않은 걸 두고서 말이다. 위법한 지침 폐기로 이 나라 노동자에게 권리가 더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법이 선언한 노동자의 권리가 그대로 보장될 뿐이다. 노사정 합의 이후 지난 2년 동안 이 나라 노동운동은 투쟁해 왔던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양대 지침 폐기를 위한 것인 한 노동자권리를 위해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투쟁이었다고 나는 감히 말할 수밖에 없다. 사용자의 저성과자에 대한 일반해고는 근로기준법 23조에 의해서, 사용자의 일방적인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은 근로기준법 94조1항 단서에 의해서 규제된다. 노동부 지침은 이런 근로기준법 규정에 반할 수가 없고, 반하면 효력이 없다. 그러니 노동자권리를 위한 일반해고 및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관련 투쟁이라면 근로기준법에서, 저성과자에 대해서는 일반해고를 할 수 없도록 하고 사회통념상 합리성 여부와 관계없이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을 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 바로 그것이 법원이 저성과자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결하고,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인정되면 과반수노조 등 노동자측의 동의 없이도 취업규칙을 불이익변경할 수 있다고 판결을 했으면, 노동자권리를 위한 노동운동이 해야 할 일인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렇지 않다. 오늘 양대 지침 폐기 소식을 듣는 이 나라 노동운동의 입장은 ‘환영한다’고 밝히고 있다. 법이 선언한 노동자권리를 무시한 지침을 폐기하는 것을 두고서 당연히 환영한다고 논평하고 성명을 발표할 수 있겠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 노동운동은 거기서 더 나아가지 못한 채 달려왔을 뿐이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달려가고 있다고 보일 뿐이다. 이 나라 노동자투쟁으로 오늘 양대 지침 폐기에 이른 것이라고 자화자찬하며 환영한다고 할지 몰라도, 노동자권리로 보자면 양대 지침 폐기는 한 걸음도 더 나아간 것이 결코 아니다. 물론 “첫걸음”(민주노총)이고, “최소한의 조치”(한국노총)라고 논평하고 성명을 발표한 것이니 양대 노총의 문제인식도 나와 다름 없는 것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 ‘환영한다’는 논평과 성명에서는 “노동적폐 청산과 비정상적 노동정책의 정상화를 위한 첫걸음”이고, “파괴됐던 노정 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고 말하고 있어 노동정책의 비정상을 정상화하고 노정 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것으로 바라보고 있음이 분명하다. 오늘 노동부 지침의 폐기를 듣는 노동운동의 입장에서는 ‘환영’ ‘노동정책의 정상화’ ‘노정 간 신뢰 회복’ 등의 말 말고도 해야 할 말이 있다. 위법한 것이라면 환영하지 않아도 당연히 그것은 폐기해야 마땅한 것일 테고, 노사정위 등 사회적 대화기구 참여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 말고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변경 지침에 의해서 문제가 됐던 바로 그 노동자권리에 관해서 할 말이 있다. 사용자의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을 규제해서 고용 등 노동자권리 향상을 위해서 할 말을 해야 한다. 당장 법 개정이 어렵다면 박근혜 정권이 했던 것처럼 노동부 지침을 통해서라도 규제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저성과자에 대한 일반해고제도, 사용자의 일방적인 취업규칙 불이익변경도 현 근로기준법에 관한 해석으로 얼마든지 용납되지 않는다고 노동부는 노동행정에서 집행할 수가 있다. 노동자권리를 침해하는 위법한 지침의 폐기를 환영하더라도 노동자권리를 위해서 위법하지 않은 지침 마련을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