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25일 저성과자 해고 근거를 제공한 공정인사(일반해고) 지침과 노동자 동의 없이 사용자 마음대로 성과연봉제나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수 있게 한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 지침을 폐기했다. 양대 지침은 박근혜표 노동개혁의 고갱이다. 사용자에게 유리하도록 노사관계·노동시장을 재편하려는 박근혜 정부 의도가 담겨 있다. 문재인 정부가 꼽은 대표적인 노동적폐다. 노동계가 적폐청산 신호탄이 올랐다고 기대하는 이유다.

◇노동적폐 청산 속도 붙나=김영주 노동부 장관은 이날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취임 후 첫 전국기관장회의를 열고 "오늘부로 2대 지침을 폐기한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2대 지침은 마련 과정에서부터 필요성과 내용에 대해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다"며 "정부가 서둘러 지침을 발표해 한국노총의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불참과 노정갈등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2대 지침은 도입부터 노동계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법률로 정해야 할 해고 요건과 취업규칙 변경 요건을 행정지침으로 완화하겠다고 하면서 현장에 극심한 노사갈등을 초래했다.

공정인사 지침은 사용자가 해고하고 싶은 노동자를 잘라 내는 칼로 쓰였다. 성과를 내기 어려운 부서로 발령해 저성과자를 만든 뒤 역량향상 프로그램(PIP) 교육을 시킨 다음 낮은 평가점수를 매겨 해고하거나 스스로 퇴사하게 만드는 일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취업규칙 지침은 임금피크제·성과연봉제 도입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노동조건 불이익변경을 사용자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해 줬다. 지난해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254개 공공기관과 지방공기업 중 80곳(31%)이 노사합의 없이 이사회 의결로 취업규칙을 바꿨다. 아직도 민·형사 소송이 수십 건 진행 중이다. 김 장관은 기관장회의 뒤 기자들과 만나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노동자단체를 만날 때 '2대 지침은 정부가 법을 어긴 것'이라는 말을 많이 했다"며 "정부가 지침으로 저성과자를 해고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노동법 위반"이라고 말했다.

2대 지침을 근거로 추진된 공공기관 성과연봉제가 올해 6월 폐기된 데 이어 노동계가 요구한 2대 지침이 이날 폐기되면서 노동 분야 적폐 청산이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주간 최장 노동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축소하고 기업규모별로 단계적으로 실시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정기국회에서 처리하자고 국회에 요구하고 있다. 정기국회에서 합의에 실패할 경우 정부가 내년 1월1일 주 68시간 노동을 가능하게 한 노동부 행정해석을 폐기할 것으로 보인다. 홍영표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은 이달 11일 열린 ㈔노사공포럼 초청간담회에서 "올해 정기국회에서 보완입법이 되지 않으면 내년 1월1일부로 행정해석을 폐기할 수밖에 없다"며 "정부도 그런 입장"이라고 말한 바 있다.

◇사회적 대화는?=정부는 2대 지침 폐기를 기점으로 사회적 대화가 복원될 것이라는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김 장관은 "새 정부 핵심기조인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위한 사회적 대화 복원의 물꼬가 트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이와 관련해 "2대 지침 폐기는 환영하지만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라고 요구하는 건 과하다"고 선을 그었다. 2대 지침 폐기와 사회적 대화 혹은 노사정위 복귀 문제는 별개라는 얘기다. 남정수 대변인은 "노사정위가 정부의 불법 노동개악을 정당화하는 기구로 활용됐던 만큼 그에 대한 평가와 반성부터 한 뒤 복귀를 요구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한국노총은 사회적 대화를 시작하자는 쪽에 힘을 싣고 있다. 다만 노사정위가 아닌 새로운 대화기구에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노동현안부터 양극화 해소를 위한 주거와 의료·복지정책 등 다양한 의제를 재편된 사회적 대화기구에서 논의하자는 것이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정부 행정지침에 따라 노동정책이 관철되는 방법으로는 장기적으로 더 큰 갈등을 조장할 수 있다"며 "이해관계자들이 밑에서부터 조정과 타협을 통해 수용해 나갈 수 있는 새로운 대화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노총은 26일 기자간담회에서 새로운 사회적 대화기구 관련 내용을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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