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철 민주노총 조직쟁의실장

“내년 2월까지 노사정위에 복귀할 것을 요청한다.”

문성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장이 9월19일 기자간담회에서 민주노총에 내년 2월까지 노사정위 복귀를 요청했다고 한다. 민주노총에 해야 할 요청을 기자들에게 한 것도 이해 못할 내외화법이지만, 누구보다 민주노총을 잘 알고 있는 ‘어르신’인 문 위원장의 취임 이후 언행과 행보는 한숨을 자아낸다.

이에 며칠 앞선 9월14일 반장식 청와대 일자리수석은 사회적 대화 전망을 묻는 기자들에게 (총연맹이 아닌) ‘사업장과 산별 등 개별단위 움직임을 통해 노사협력이 잘되면서 분위기가 확산되길 기대’했다고 전해진다. 이쯤 되면 노사정위 재가동을 둘러싼 새 정부의 바둑알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대략 알 법하다.

문성현 위원장은 취임을 전후해 몇몇 완성차 사업장을 방문한 것을 비롯해 일부 영남지역을 찾아 노사정위 재가동 필요성을 역설했다. 초기 광폭 행보를 보인다는 점에서 이례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이 과정에 (노사정위 참가 단위인) 총연맹을 제치고 직접 현장-산별-지역 설득에 나섰다는 점에서 더욱 이례적이었다.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은 물론이고,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이런 방식의 결례는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민주노총에 일언반구 없이 감옥에 있는 한상균 위원장을 찾아가 노사정위원장 명함을 앞세운 특별접견을 잡고 이야기를 했다고 하니, 참으로 점입가경이다.

특히 한상균 위원장을 일방적으로 불러내 이런 식으로 대하는 것은 노정관계를 떠나 도의상 할 행동이 아니다. 청와대가 노사정위원장 행보를 알고도 두는 건지, 모르고 있는 것인지, 이도저도 아니면 알고 부추기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이렇게 해서는 곤란하다. 오죽하면 현장에서 ‘정권이 바뀐 뒤 국가정보원이 손 놓은 노동계 공작을 이제 노사정위원장이 하는 거냐’는 이야기까지 나오겠는가.

문성현 위원장은 금속산업연맹 위원장을 지냈던 지도급 인사다. 누구보다 노사정위를 둘러싼 민주노총 내부 쟁점을 잘 알고 있는 이다. 그런데도 민주노총 2기 직선 위원장 선거 직후인 내년 2월을 시한으로 정해 노사정위 참가를 압박하고, 일부 사업장과 지역·산별만을 상대로 행보를 갖는 것은 자칫 정치적 지배·개입 부당노동행위라는 오해를 사기 충분하다.

일국의 장관급인 노사정위원장이다. 또 노동계 어르신이기도 하다. 경거망동은 삼가는 것이 옳다.

시절이 하수상하다 보니 얼마 전 열린 정의당 주최 토론회에서도 민주노총과 노사정위원회가 도마에 오른 모양이다. 이날 토론회에서 제기된 일부 정규직 노조를 향한 날 선 비판은 민주노총이 겸허히 수용하고 성찰해야 할 내용도 많았다. 판매연대와 기아자동차, 전교조 등 당일 언급된 비정규직 관련 지적은 민주노조운동이 백번 곱씹어야 한다. 하지만 ‘비판을 위한 비판’ 수준으로 오히려 화자의 의도를 왜곡하는 언급도 있었다. 한국노총 추천으로 대통령 위촉직인 최저임금위원 감투를 쓴 인사가 최저임금 투쟁을 한 발 더 발전시키기 위한 반성적 평가를 부정하고 무책임하게 민주노총을 비판하는가 하면, 자신이 발표한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 성명에도 어긋나는 평가를 자극적 단어와 함께 내뱉는다. 이 비판이 모아지는 꼭짓점이 결국 노사정위 재가동이라니, 헛웃음이 나온다. 이율배반이자 표리부동이다.

노동조합이 교섭과 투쟁을 병행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민주노총은 그런 맥락에서 중앙집행위원회 논의를 통해 조직 내 찬반에도 불구하고 일자리위원회 참여를 결정했다. 하지만 이 원칙이 곧바로 노사정위 참가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 게다가 일자리위는 고용정책 관련 정부위원회 성격을 스스로 명확히 하고 있었으며, 사회적 대화기구인 노사정위원회의 전략적 지위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 민주노총 중집 결정의 주요 근거 중 하나였다.

사회적 대화는 호황기 노동운동이 택했던 전략이며, 그 시작이 됐던 몇몇 나라들의 사회적 대화도 경제위기를 맞으며 서서히 힘을 잃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오죽하면 박근혜 정권 시절 네덜란드 모델 이야기가 나왔을 때 네덜란드노총 관계자가 코웃음을 쳤겠는가.

민주노총 안에도 노사정위 복귀를 주장하는 조합원들이 있다. 그리고 민주노총은 조직 내에서 이런 주장이 공식화되면 대의원대회를 통해 논의를 하도록 체계가 마련돼 있다. 몇몇 집행부의 성향이나 판단으로 복귀할 수 없으며, 반대로 몇몇 집행부의 성향이나 판단으로 무조건 복귀하지 않을 수도 없다.

게다가 사회적 대화 복원을 주장하는 이들 중 대다수가 현재의 노사정위로는 어렵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이런 상황과 논의구조를 모르는 분들이 던지는 지적이야 그에 맞게 수용하겠으나, 이를 잘 알고 있는 민주노조운동 명망가들이 보이는 언행은 안타깝다.

전략과 전술을 깨치는 놀이 중 으뜸은 바둑이라고들 한다. 번갈아 돌을 내려놓는 공정한 과정 속에 승부의 '시작과 끝'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바둑을 소재로 한 경구도 많은데, 그중 하나가 경적필패(輕敵必敗)다. 상대를 약하게 봤다가는 반드시 패한다는 금언이다. 상대방을 가벼이 여기고 이를 떠벌리는 사람은 '하수'로 취급된다. 최근 노사정위를 둘러싼 말잔치, 상대방을 가벼이 여기는 언행에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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