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이 대한민국에서 정리해고에 관한 느낌을 나는 유감(遺憾)이라 적는다. 마음에 차지 않아 못마땅하고 불만스럽다. 무슨 뜬금없는 말이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정리해고에 관한 말이 뜬금없이 들리는 이 나라가 못마땅하다. 취임한 이래 줄곧 적폐청산을 외쳐 온 문재인 정부에서 노동 분야에 있어서는 적폐청산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도 않았다. 그러니 아직은 유감을 말하기에는 이르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정리해고에 관해서는 청산해야 할 적폐로 여기고 있지 않는 이 나라가 불만스럽다.

2. 문재인 대통령도 고용보장을 위한 공약을 했었다. 일자리 대책으로 정년까지 ‘보장받는 양질의 일자리’를 위해 “부당한 찍퇴·강퇴를 막는 희망퇴직 남용방지법”을 제정하고, “강퇴 원상회복을 위한 쿨링오프제(Cooling off, 사직숙려제도)”를 도입하겠다고 공약했다(19대 대통령선거 더불어민주당 정책공약집-나라를 나라답게, 71쪽). 정리해고에 관해서는 “기업유지가 어려운 경우로 한정하고, 해고회피노력 및 정리해고자 재고용우선 의무화”를 도입하겠다고 공약했다(나라를 나라답게, 353쪽). 그런데 알 수 없다. 이렇게 분명히 문재인 후보는 희망퇴직 남용을 제한하고 무분명한 정리해고를 규제하겠다고 공약했음에도, 오늘 이 나라에서 정리해고를 노동적폐로 인식하고 이를 청산해야 한다는 외침은 들리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노동운동이 그렇다. 그저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 고용노동부의 과제에 포함되는 것에 만족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3. 벌써 2개월 전이다. 아무런 대답을 해 주지 않고서 세상은 쏜살같이 흘러간다. 국회에서 토론회가 있었다. 하이디스 정리해고에 관한 토론회였다. 아무도 크게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은 정리해고를 주제로 한 토론회였다. 7월25일 ‘하이디스 사태로 본 외투자본 문제점과 입법방향’이라는 제목으로 국회 제4간담회실에서 열렸다. 대주주 대만 이잉크 자본이 공장폐쇄하고 그 공장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해서 문제가 된 하이디스 사태를 다시 한 번 진단하면서 입법적 과제를 모색하자는 취지의 토론회였다. 촛불집회의 승리로 쟁취한 촛불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했던 무분별한 정리해고 규제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문재인 정부가 주최해서 열린 토론회는 아니었다. 하이디스 정리해고 조합원들이 속한 금속노조가 기획해서 마련된 것이었다. 하이디스라는 한 사업장의 정리해고를 두고서 법적 문제를 살피고 그 해결방안을 찾기 위한 것이었다. 하이디스 정리해고자들은 이 세상에 자신들의 정리해고 문제에 관해서 대답을 해 달라고 외쳐 왔던 것이고, 그 일환으로 열린 국회토론회였다.

4. 공장폐쇄가 2015년 1월7일에 있었고, 그 생산부문 노동자들에 대한 정리해고가 같은해 3월31일에 실시됐다. 벌써 2년4개월 동안 외투자본 문제로, 정리해고 문제로 논란이 돼 온 사건이었다. 그러니 새삼스럽다. 하이디스 정리해고 사건을 두고서는 토론회가 열린다는 것도, 이렇게 내가 유감을 적는다는 것도 새삼스럽다 할 만하다. 그동안 하이디스에서 쫓겨난 노동자들은 광장과 거리에서 집회와 시위, 노숙과 농성으로 투쟁해 왔다. 겨우내 계속됐던 서울 광화문광장의 촛불집회에도 누구보다 열심히 참여해서 박근혜 퇴진을 노래하며 정리해고 철폐를 외쳤다. 그렇게 촛불집회에서 노래했던 대로 박근혜 퇴진은 이뤄졌건만, 하이디스 노동자들의 외침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촛불집회의 승리로 열린 촛불대선에서 촛불시민혁명의 정신을 계승하겠다고 공약하고서 대통령으로 당선됐건만 오늘 문재인의 나라에서 "정리해고 철폐"라는 하이디스 노동자들의 외침은 아직도 요원하기만 하다. 이 박근혜 없는 세상은 정리해고 없는 세상이 아닌 것이다. 광화문광장의 촛불집회는 박근혜 퇴진으로 분명히 하나였다. 하지만 정리해고 철폐를 두고서는 하나로 외쳤던 것은 아니었던 것일까. 노동자들만, 하이디스 해고자들만 간절했던 것일까. 촛불대선 이후에 문재인의 나라에서 하이디스 정리해고, 나아가 정리해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인 모습은 아직 찾아볼 수 없다. 그러니 나는 이렇게 촛불집회까지도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문재인 후보가 정리해고에 관해서는 “기업유지가 어려운 경우로 한정하고, 해고회피노력 및 정리해고자 재고용우선 의무화를 도입해서 무분별한 정리해고를 규제하겠다”고 공약했던 것은 촛불집회에서 노동자들이 외쳤던 정리해고 철폐가 아니라 그저 사용자가 분별없이 하는 정리해고만을 규제하겠다고 하는, 노동자를 기만하는 공약(空約)이었던 것일까. 의문에서 의심으로 나는 자꾸 나아가고 있다. 별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했던 ‘노동존중 사회 실현’은 현행 근로기준법상 정리해고제도를 그대로 두고서 그걸 위반하는 사용자를 규제하겠다는 것으로는 결코 실현할 수 없을 텐데 말이다.

5. 정리해고가 부당하다는 하이디스 정리해고자들의 절규를 대한민국은 좀처럼 들어주지 않았다. 박근혜 정권 아래서 공장폐쇄와 대규모 정리해고 실시를 전후해서 노동사무소와 고용노동청을 수도 없이 찾아다니며 사용자의 부당한 정리해고를 막아 달라고 호소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했지만 기대했던 구제명령은 없었다. 하이디스 정리해고자들을 추방한 세상은 그들의 호소를 외면한 채 아무렇지 않게 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촛불대통령인 문재인의 나라에서는 다를 것이라고 믿었다. 광화문광장 촛불집회에서 외쳤던 박근혜 없는 세상은 노동자도 사람답게 사는 세상일 거라고 하이디스 정리해고자들은 믿고 있었다. 대통령만 박근혜가 아닌 사람으로 바뀐 세상일 거라고 겨우내 광화문광장에서 수백만이 박근혜 없는 세상을 노래했던 것이 결코 아니었던 것인데 오늘 세상은 여전히 이 나라 노동자는 무분별한 정리해고의 세상, “기업유지가 어려운 경우”가 아니라도 생산성 향상 등 인원감축할 객관적인 합리성이 인정되면 정리해고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기업유지가 어려운 경우”에만 인원감축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노동자가 호소해도 듣지 않는 세상이 무심하게 흘러가고 있다.

6. 올해 6월16일, 하이디스 정리해고는 무효라고 선언했다. 2년 동안 진행해 온 민사재판이 몇 차례 선고가 연기되더니 마침내 하이디스 정리해고는 정당하지 않다며 무효라는 판결이 선고됐다. 이 판결로 새삼스럽게 국회에서 토론회가 열리게 됐던 것이다. 하이디스 정리해고에 이 나라가 처음으로 부당한 것이었다고 대답해 준 법원 판결이었다. 법원 판결을 계기로 다시 의원이 나서고 사측이 교섭에 나선다는 소식을 토론회 자리에서 들었다. 판결도 토론회도 너무 늦어 유감이었다. 하지만 하이디스에서 부당한 정리해고가 철회되고 고용이 보장될 수 있다면 늦더라도 유감이라 한 말을 얼마든지 철회할 의사가 있다. 그리고 지난달 11일, 하이디스 정리해고는 정당하다는 행정법원 판결이 있었다. 하이디스 정리해고가 정당하다고 했던 중앙노동위원회의 판정이 정당하다는 판결이었다. 민사재판 결과를 보고서 하겠다고 몇 차례 선고를 미루고서 한 행정법원 판결이었다. 행정법원 재판장은 판결을 선고하면서 원고 해고자들을 부르더니 민사판결과는 달리 정리해고가 정당하다고 본다고 말하더라고 해고자들 대표는 허탈하게 말했다. 정리해고가 정당하다니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 이유였다. 납득해서는 안 되는 하이디스 정리해고였다. 민사재판에서 해고무효라고 확인을 받으면 그만이라고 무시하려고 해도 노동자들을 크게 실망시킨 판결이었다.

7. 위법한 정리해고를 규제해 달라고 이 나라 노동자들이 겨우내 광화문광장에서 정리해고 철폐를 외쳤던 것이 아니다. 법대로 정리해고해야 한다고 정리해고 철폐를 노래했던 것이 아니다. 정리해고법을 위반한 사용자의 무분별한 정리해고를 규제해 달라는 것은 박근혜가 있는 세상에서도 얼마든지 노동자들은 호소할 수 있었다. 박근혜 없는 세상이라고 하이디스 정리해고가 부당하다고 법원이 판결한 것은 아니다. 현행 근로기준법 24조가 규정한 대로 정리해고 요건에 따라 판단하더라도 하이디스 정리해고는 부당한 것이기에 민사재판에서 해고가 무효라고 판결했던 것이다. 촛불시민혁명을 계승한다는 문재인의 나라라고 정리해고가 부당하다고 법원이 판결하는 것이 아니다. 정리해고 철폐 없는 세상은 유감이다. 노동자의 잘못, 합리적 사정이 없는데도, 사용자 사정을 내세워 하는 해고가 용납돼서는 안 된다. 사업장 존폐로 노동자를 해고하는 걸 정리해고로서 부당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용자 사업장은 그대로 유지되는데도 사업장 경영사정을 내세워 하는 정리해고는 부당하다고, 정리해고 철폐를 말하는 것이다. 거기까지는 아니라도,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한 대로 정리해고는 “기업유지가 어려운 경우”로 엄격히 한정해야 하는 것이고, 그걸 위해 조속히 정리해고법 개폐가 추진돼야 한다. 그리고 그와 별개로 종전에 정리해고된 노동자들이 사업장에 복귀해서 일할 수 있도록 노동행정에서 적극적인 권력 행사가 필요하다. 박근혜 없는 세상이 그저 꿈이 아니었던 것처럼, 정리해고 없는 세상도 실현 가능한 꿈인 것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