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공인노무사회
"추가 재정부담이 늘어날 텐데, 사회적 합의를 통한 정책적 고려가 필요하다."(이승길 한국사회법학회 회장)

"언제까지 재정부담 운운할 것인가?"(임성호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연구소 실장)

한국사회법학회·한국공인노무사회 공동주최로 지난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출퇴근재해 도입에 따른 과제와 전망' 세미나에서 출퇴근재해를 업무상재해로 인정하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과 관련해 "성급한 입법조치"라며 유예를 요구하는 학계·재계 참석자들과 조속한 법안 통과를 촉구하는 한국노총 간부가 입장차를 드러냈다.

통근버스 사고 같은 예외적인 경우만 인정하는 산재보험법상 출퇴근재해 조항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헌법상 평등 원칙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했다. 국회는 올해 안에 개정안을 마련해야 한다. 헌법재판소 결정 후 국회 논의가 급물살을 타면서 올해 6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출퇴근 도중 다친 사고를 업무상재해로 인정하는 산재보험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를 통과하면 내년부터 거의 모든 출퇴근길 사고는 산재로 인정받는다. 개정안은 현재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이날 세미나는 산재보험법 개정안을 둘러싼 쟁점과 과제를 논의해 보자는 취지로 열렸다.

이승길 교수 "출퇴근재해 도입 조급하게 진행"

주최측이자 발제를 맡은 한국사회법학회장 이승길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정권이 교체되면서 너무 급하게 진행되는 것 같다"며 "적합한 운영방안 마련이나 사전 준비작업 없이 개문발차했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출퇴근재해 대부분이 교통사고라는 점을 감안하면 산재보험에 상당한 규모의 추가 재원이 필요할 것"이라며 "추가적인 재정부담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를 통한 정책적 고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산재보험료 부담주체를 사용자뿐만 아니라 출퇴근재해 노동자에 대한 별도 보험료율 체계, 보상수준, 보험료 부과방식을 적절하게 설정하는 방안을 논의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최종석 한국경제신문 편집국 전문위원 겸 좋은일터연구소 부소장은 "요즘 노동현안이 법원 판례에 의존하는 사법화 경향이 있는데 출퇴근재해 산재보험 적용도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이벤트성으로 추진되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그는 "산재보험료 인상에 따른 기업의 인건비 부담 증가로 이어질 우려가 있는 만큼 사전에 충분한 정보제시와 협의가 있어야 한다"며 "촉박한 제도시행 준비 과정을 감안해 국회 본회의 논의시 시행시기를 유예하는 등 신축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우택 한국경총 안전보건본부장은 "통상적 출퇴근재해를 업무상재해로 인정하면 법 체계상 불합리한 사업주 부담을 발생시키고, 사업장별 단체협약에 따른 부가보상까지 적용되는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임 본부장은 "통상적 출퇴근 경로 일탈·중단 행위 적용제외를 엄격히 해야 하고, 근로자 과실에 대한 보험급여 지급은 제한해야 한다"고 밝혔다.

임성호 실장 "재정부담? 수십년 동안 노동자가 부담"

"행정적·재정적으로 준비가 부족하다"거나 "사용자 부담이 증가한다"는 발제자와 토론자들의 주장에 임성호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연구소 실장은 "출퇴근재해 도입 과정에서 나타날 일부 위험성을 지나치게 과대포장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임 실장은 '사용자 부담론'에 대해 "재정적 부담이 있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그간 노동자들이 출·퇴근 없는 노동이 없는데도 출퇴근재해를 인정받지 못한 데다 자기 돈을 썼다"며 "사업주가 부담해야 할 비용을 수십년간 노동자들에게 전가시키지 않았냐"고 반문했다. 이어 "노동자들이 그간 계속 부담하던 비용이었는데 마치 새로운 비용이 발생하는 것처럼 말하면 안 된다"며 "언제까지 재정부담을 운운할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최근 사업장 안전보건 실태조사 과정에서 확인한 중견기업 A사의 산재현황을 언급했다. 임 실장은 "공상으로 처리된 게 30건이고 산재로 처리된 것은 1건밖에 없었다"며 "노사관계상 상당수 재해가 공상처리되거나 개인이 처리했던 것을 감안하면 (법이 시행된다고 해도) 출퇴근재해 청구가 얼마나 들어올지 사실상 추산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임 실장은 특히 개정안의 조속한 통과를 요구하면서 "요즘 출퇴근재해 관련 토론회들이 많은데, 모두 '너무 성급하다' '혼란이 있을 것이다' '구상권 문제가 해결되지 못할 것이다' 같은 똑같은 얘기만 하고 있다"며 "무엇이 제도 연착륙을 막고 있는지 반성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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