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호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 국장

무대 앞에는 5명의 여성노동자가 서 있다.

“저희가 오늘 이 자리에 서는 건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 같습니다”라며 이야기를 시작하는 양세연 보도국 AD의 목소리는 가는 떨림이 있었지만 차분했다.

“저희는 뉴스데스크 편집부 소속으로 거의 모든 뉴스에서 자막 교열을 보고, 생방송 진행을 담당했습니다. 파견업체에서 파견된 2년 계약직으로 제작거부를 한다는 것은 곧 퇴사를 의미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희가 저항할 수 있는 건 이 방법뿐이었습니다.”

파업 중인 언론노조 MBC본부 집회에 이들은 지지발언을 위해 나섰고, 나는 이 모습을 페이스북을 통해 동영상으로 봤다.

첫 문장에 썼듯이 이들은 ‘조합원’이 아닌 ‘노동자’다. 파견업체 소속으로 계약기간이 짧게는 7개월부터 1년8개월까지 남아 있었다.

그의 이야기는 이어졌다.

“모두가 우리 같은 소모품들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냐고 묻습니다. 저희가 나간다고 해서 바뀌는 게 있을까 수없이 고민도 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당장 먹고살 생각에 막막하기도 합니다. 앞으로 MBC가 정상화됐을 때 저희는 이곳에 돌아올 수 없겠지만, MBC가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는 데 저희의 용기가 미약하게나마 도움이 된다면 그걸로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습니다.”

나는 누구 못지않게 김장겸 퇴진과 MBC 정상화를 위한 노동조합의 투쟁을 응원한다. 그러나 저항해야 하는 현실은 권력의 방송 사유화와 농단만이 아님을 부인할 수 없다. 당장 원하지 않았지만 파업 집회를 통해 나는 방송국의 부끄러운 속살을 보고 말았다.

2000년대 이후 방송국의 외주화·하청화를 통한 비정규직 확산은 보편화됐으며, 조합원이 아닌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은 너무나 열악했다. 오죽하면 방송국이 ‘비정규직 백화점’으로 불렸겠나.

MBC 한 PD는 얼마 전 SNS에 여행용 대형가방을 들고 모여 있는 사람들의 사진을 올린 뒤 “공항 출국장 같지만 회사 로비”라며 “일 끝내고 퇴근하는 우리 비정규직 혹은 프리랜서 동료”라고 적었다. 그는 “방송 일주일 정도 앞두고는 거의 밤새며 일해야 하기 때문에 아예 짐을 싸들고 나온다”고 말한 뒤 “최저임금을 겨우 넘는 수준의 급여에 시간외수당은 아예 없다. 진정한 정상화는 까마득하다”고 말했다.

동료에 대한 개인의 애잔함이 집단인 노조의 처우개선 요구로 이어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현실을 인정하고 방치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방송뿐인가. 얼마 전 발표된 ‘교육 분야 비정규직 개선방안’은 4만1천77명 중 1천34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내용이다.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표방한 대통령 발언을 무색하게 만든다. 이러한 결과 뒤에 정규직 교사들의 지속적인 반대가 있었다는 것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여성노동자 5명의 동영상을 본 뒤 내 마음에 계속 맴돌았던 단어는 ‘선배’였다. 이들은 “선배들께서 제작거부에 들어가고 나서 자괴감과 회의감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얘기하며 ‘지금 울고 있는 선배’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선배들’의 이름을 부르며 “너무 감사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저희, 기억해 주세요”라고 울먹였다.

비단 방송과 교육 현장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는 비정규직 ‘후배’ 혹은 ‘동료’에게 ‘선배’로 혹은 ‘동료’로 불리는 수많은 정규직 노동자(조합원)가 있다(물론 그 호칭마저 허락되지 않은 비정규직도 많다).

그러하기에 이 여성노동자들의 영상은 머릿속에 수많은 질문을 채운다. 노동자는 하나인가. 우리는 동료인가. 그리고 우리는 그들을 기억하는가.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 국장 (labor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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