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4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한국 사회 기득권층에게 금기어를 언급했다. 미국의 경제사상가 ‘헨리 조지’를 들먹여서다.

다음날 조선일보는 <부동산 보유세 강화? 15년 만에 또 꺼낸 ‘헨리 조지 처방’>이란 제목의 2면 톱기사로 반격했다. 대통령과 경제부총리가 “부동산(토지) 보유세 인상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했지만 조선일보는 개발연대에 묶인 이들의 입을 빌려 가차 없이 추 대표를 몰아세웠다.

“개인 토지를 몰수하는 혁명을 하자는 말이냐”(한 부동산 전문가), “사유재산제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면 조지를 언급한 것 자체가 실수”(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 “부동산 정책은 정의로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 듯하다”(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교수), “결국 종부세를 강화하겠다는 것”(대다수 부동산 전문가), 이런 식이다.

혹시 있을지 모를 부동산 세금인상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대다수 부동산 전문가’라는 복수의 화자(話者)의 발언이 하나의 쌍따옴표 안에 등장하는 웃기는 상황까지 연출하면서.

조선일보 기사는 부동산학과 교수의 입을 빌려 “조지는 사실상 토지를 국유화하자는 것”이라며 사유재산제를 부정하는 공산주의 사상과 연결시킨다. 도대체 헨리 조지가 뭐하는 사람이기에 이 난리인지.

헨리 조지(1839~1897)는 미국에서 태어나 죽은 지 120년이나 된 인물이다. 그는 생산력 증가를 ‘진보’로 여기는 순진한 사람이었다. 생산력이 미친 듯이 커졌던 시기에 미국에서 살았다. 그런데도 왜 이웃 사람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는지 궁금했다. 궁금증은 그가 마흔에 완성한 <진보와 빈곤>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열네 살도 안 돼 학교 교육을 그만둔 헨리 조지는 도자기 가게 점원으로 일하다가 열여섯 살에 배를 탔다. 여객선 선원으로 호주와 인도를 다녀왔다. 가스검침원 생활도 했다. 새크라멘토의 한 신문사에서 인쇄공으로 일하며 노조에도 가입했다. 헨리 조지가 25세 때 링컨 대통령이 암살당했다. 자기가 일하던 신문 <알타 캘리포니아>에 추도문을 기고했는데 필력이 괜찮았는지 여러 신문에서 기고를 요청해 왔다. 2년 뒤엔 기자가 됐다. 그는 기자 생활을 하면서 사회문제에 깊이 파고들었다. 지방자치제도와 연방보조금 문제, 자유무역, 화폐제도, 비례대표제, 선거제도 개혁, 여성권 확대 같은 문제를 주로 다뤘다.

그가 월간 <오버랜드>에 쓴 ‘철도가 우리에게 미칠 영향’이란 글은 미국 동부와 서부 캘리포니아를 연결하는 철도건설 열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진보와 빈곤>의 문제의식은 여기서 출발한다. “철도가 완성되면 모두에게 좋은 것이 아니라 몇몇 사람만 좋아지고, 대부분 사람들은 더 가난해지고 살기 어려워진다”는 취지였다. 눈앞에서 본 ‘젠트리피케이션’을 있는 그대로 썼다. 요즘 우리 신문도 젠트리피케이션을 자주 보도한다.

그는 주류경제학자들이 수학에 미쳐 그래프나 그리고 있을 때 조지 오웰처럼 위건부두로 갔다. 가스검침원 생활이 가난한 시민들의 실생활을 있는 그대로 분석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그래서 그의 책에는 딱딱한 수학공식이 없는 대신 시와 철학, 심지어 힌두교 명구가 가득하다.

그의 결론은 간단하다. 모든 세금을 없애고 ‘토지단일세’를 매기자는 거다. 토지 공유뿐만 아니라 모든 생산도구까지 국유화하자는 마르크스와는 다르다. 이 때문에 헨리 조지는 영국 사회주의 지도부로부터 왕따를 당했다.

주류경제학은 그를 이단으로 밀어냈지만, 톨스토이는 그에게 열광했고, 중국의 쑨원은 삼민주의를 그의 토지정책으로 채웠다. 뉴질랜드의 조지 그레이 수상은 그의 얘기대로 지대세 도입에 초석을 닦았다. 물론 140년이 지난 지금 토지단일세는 하나의 동기는 줄지 몰라도 완벽하진 않다.

헨리 조지의 주장은 마르크스보다는 리카도의 지대론에 더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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